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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by 봄날


다큐멘터리 3일 ‘광주 518번 버스’를 보다가 너무 마음이 아프고 울컥해서 채널을 돌렸다. 나는 해가 갈수록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아픔은 더 공감하지만, 세상은 오월 광주의 기억에서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4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가해자는 반성과 사죄를 하기는커녕 헬기 사격에 대한 부정과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모욕 혐의로 재판정을 오고 가며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다. 그 고통과 슬픔은 오롯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1980년의 봄날, 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학내 데모와 경찰 진압으로 라일락꽃이 향기롭던 대학 교정은 매캐한 최루가스와 운동가요 소리만 울려 퍼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나 역시 그 해 4월 초에 벌어진 대학생 군사훈련 입소를 거부하며 총장실을 점거하고 빵과 우유로 끼니를 해결하며 며칠을 버티던 중이었다. 지금처럼 모바일폰이 없던 시절이라 집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며칠을 지내다 짬을 내서 옷도 갈아입을 겸 집에 들렀다. 그날 이후 부모님께 강제로 연행되어 택시를 타고 남한산성 밑에 있는 군사학교로 혼자 뻘쭘하게 입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함께 며칠밤을 세우며 최후통첩에도 학생군사훈련 입소를 거부하고 있던 동료학생들에게 안부도 못하고 나는 조용히 사라졌다. 이미 사오일 전에 미리 입소해있던 학생들과 그렇게 학생군사 훈련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나는 더 이상 그들과 함께 데모에 참여할 명분이 없었다. 굳이 변명하기도 싫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학교를 다닌 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쯤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그날로 대학교 교문 앞에 장갑차와 함께 휴교령이 내려졌다.


오월, 푸르름이 빛나던 계절의 한 복판에서 갑자기 학교 친구들과 안부도 없이 헤어지게 된 나는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갔다. 친구가 세상과 단절된 채 재수를 하고 있던 그 산사로 다른 친구 몇 명과 함께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금강운수의 인제 용대리행 시외버스를 타고 백담사로 향했다. 하루 이틀 재수를 하고 있던 그 친구를 위로하고 오겠다던 당초 계획은 허물어지고, 백담사에서 처사 비슷하게 텃밭도 가꾸고 산사의 잡일을 도우며 밥값을 하고는 공짜 공양을 하며 가을 학기 개학을 할 때까지 거의 세 달을 내설악의 아름다움에 빠져 생활하고 있었다. 재수를 하던 그 친구는 결국 중요한 시기에 함께 놀며 지낸 탓에 삼수를 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 친구의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이다.


백담사

그렇게 80년 광주의 오월을 외면하고 난 후 가을학기 개학을 하고서야 여기저기 학내에 붙여놓은 대자보와 선전지, 영화 ‘1987’처럼 몰래몰래 본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해외 언론에 소개된 뉴스를 비디오로 보게 되었다. 백담사에서 전해 들은 얘기로는 폭도들의 폭동인 줄만 알았는데 그 진실을 알게 된 후 무척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알고 난 후에는 그때 군부 독재에 맞섰던 민주화 운동과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희생을 치른 그들에게 늘 빚진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지금의 한국은 세계 속의 여러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과 함께 선진국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청산이 끝나지 않은 적폐가 많아 개혁과 청산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할 분야도 많이 있다. 개혁의 속도는 더디지만 분명히 앞으로 전진하고 있고 결국에는 적폐는 청산되고 개혁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면 그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리고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민주화와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동권’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만큼은 동의할 수 없다. 참혹한 군부 독재에 신음할 때 그 운동권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때 당시에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선량한 이웃이 당했던 불법 부당함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냈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 민주화 운동의 그들이 자신들을 비난하지 않는 만큼, 그들도 운동권을 비난하지 않는 최소한의 예의와 품격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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