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도 매 순간 비보호 좌회전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by 봄날


집 옆 뒷길 사거리 교차로에 기존의 좌회전 신호가 비보호 좌회전 신호로 바뀌었다. 아마도 교차로에서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파트 상가에 진입하기 위해 좌회전을 하려면 이제부터는 맞은편에서 오는 직진 차량을 우선 보낸 후 운전자의 책임하에 안전하게 좌회전을 해야만 한다. 좌회전 시 전방주시 의무를 소홀히 하고 좌회전 신호시 좌회전을 하다 마주오는 차량과 사고가 날 때에는 전적으로 운전자의 책임이 되며 말 그대로 비보호, 보호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비보호 좌회전을 할 때는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방을 주시하며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운전해야만 접촉사고나 큰 사고의 위험을 피해 갈 수 있다. 만약 전방 주시 태만으로 사고가 난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내 책임이 될 뿐 다른 사람 탓을 하거나 또는 부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 비보호 좌회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지원 아래 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보호를 받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부터 모든 일에서 비보호 좌회전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취업과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비보호 좌회전 같은 사회생활에 가끔씩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다.


스스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가지 않을 수 없는 길들, 전방을 주시하며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하에 비보호 좌회전을 해야 할 순간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직장생활과 연애, 결혼, 출산, 임신, 육아, 교육 등등 모두 스스로의 전적인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하고 나머지 주변, 즉 부모님을 포함한 동료, 친구, 선후배들은 필요하면 조언만 할 수 있을 뿐, 그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가지 않을 수 없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 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 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패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는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 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 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도종환 시인



우리들의 삶은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 삶 속에서 자신이 내린 결정이 매우 좋은 결정이 되거나 시의 적절한 판단이었으면 우리는 근거 있는 자신감과 함께 힘과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반대로 스스로 내린 의사결정이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기도 하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있다 하더라도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어떤 의사결정에 있어서 특히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있어 늘 옳기만 한 결정이나 항상 틀리기만 한 의사 결정은 없다.


문제는 스스로 내린 의사결정에 대해 전적으로 존중하며 맞든 틀리든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본인의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진 상황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상황을 수습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상황을 만들어 낸 스스로가 곧 자신이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인생에 맞고 틀린 것은 없다. 옳고 그르고 가 있을 뿐.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슾길


우리들의 삶에서 인생의 고비마다 해야만 하는 비보호 좌회전은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 의례일 수는 있지만, 그냥 우리가 겪고 지나야 할 통과의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냥 통과해서도 안된다. 매 순간순간이 쌓여서 우리들의 삶이 되고 곧 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때그때 우리가 의사 결정한 그 일들, 그 일들의 통과 의례를 통해서 앞으로 우리의 삶과 인생에 있어 힘과 경험과 자신감을 얻어야만 올바른 방향의 목적지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이라면 시간이 걸릴 지라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삶의 목적지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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