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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May 31. 2024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

옛날 옛적, 임대아파트에 한 아이가 살고 있었어요. 아이는 임대아파트가 어떤 건지도 잘 모르는 철부지였답니다. 사글세 셋방살이를 전전하다 뭔가 그럴듯한 첫 집이라는 생각에 어쩔 줄 모르던, 말 그대로 아이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겨울방학을 앞둔 때였어요. 학교에서 스키캠프를 알리는 가정통신문을 나눠주네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스키캠프에 간다는 거 있죠?


이제 우리도 집이 생겼는데 설마 15만 원이 없겠어?


아이는 엄마를 졸랐어요. 돌아온 것은 꾸지람뿐이었죠.


이런 철딱서니 없는 것아,
임대아파트 사는 주제에 무슨 스키캠프야?!
우리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거 안 보여?!


한껏 시무룩해져 주눅이 든 아이는 밤에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글쎄, 귀신이 흐느껴 우는 게 아니겠어요? 놀라 눈을 떠보니 누가 울긴 울고 있는 거 있죠.


이것도 꿈인가……


아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다시금 잠이 들었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물었어요.


우리 스키캠프 장기자랑 준비해야 하지 않아?


아이는 솔직히 털어놓았어요. 이번 스키캠프는 돈이 없어서 못 갈 것 같다고. 며칠 후, 친구는 아이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친구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지 뭐예요. 방이 네 개나 되는 것도 신기한데 화장실은 또 두 개나 있는 거예요. 아이가 사는 임대아파트와는 차원이 다른 집이었어요.


아이의 엄마는 장사하느라 한 번도 제대로 밥을 차려준 적이 없었는데, 친구 엄마는 팥 말고 피자맛이 나는 호빵을 쪄주었어요. 세상에, 호빵에서 피자맛이 나다니…… 난생처음 맛보는 경험이었어요.


아이는 마냥 좋았어요. 아주 나중에 아이가 말하길, 태어나서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던 때가 그때였대요.


신나게 놀다 집에 가려는데, 막 퇴근한 친구 아빠가 아이를 불렀어요. 할 얘기가 있다면서요.


아이야, 아저씨는 네가 우리 아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공부도 잘한다고 들었어.
이번에 네 얘기를 듣고 마음이 몹시 좋지 않더구나.
부담 갖지 말고 이 돈으로 우리 아들이랑 좋은 추억 쌓고 오지 않겠니?


아이는 이런 돈은 받으면 안 된다고, 엄마에게 혼난다고 말했지만 이번엔 친구 엄마가 나서서 아이 엄마에게 직접 연락해 주겠다며 그냥 주는 돈 아니라고, 아주 나중에 꼭 갚으라고 말해주었지요.


그날밤, 아이는 엄마에게 스키캠프에 갈 수 있다고 해맑게 자랑했어요. 아이는 설레는 마음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그런데 그날밤에도 아이는 울음소리를 듣고 말았어요. 이번엔 확실히 귀신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요.


울음소리를 모른 척한 아이는 다짐했어요. 어떻게든 친구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예요.






훌쩍 시간이 지나, 아이는 나라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대학교에 합격했어요. 아이는 여전히 임대아파트에 살았지만 임대아파트를 벗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한껏 들떴죠.


아이는 그 어렵다는 취업문을 뚫고 남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우연인지, 운명인지 아이를 스키캠프에 보내준 은인과 같은 회사로 들어간 것이었죠.


또다시 시간이 흘러, 아이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요. 아이의 아이에게 가난을 모르게 해주고 싶었던 아이. 남들 하는 거 다 해주다 보니 생각보다 살림은 빠듯했지만 견딜만했어요. 아이의 아이는 아이를 닮아 귀엽고 영특했거든요.


이윽고 아이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어요. 아이의 아내는 심각한 얼굴로 아이에게 말했어요.


여보, 글쎄 우리 애가 갈 학교 있잖아.
거기 임대아파트 애들하고 학군이 겹친대.
어떡해?


아이는 몹시 불편했어요. 착하고 순진한 아이의 아이가 행여나 학교 폭력을 당하면 어쩌지? 불량한 친구들의 꾐에 빠져 이상해지면 어쩌지?


결국 아이는 결심했어요. 아이의 아이를 사립초등학교로 보내기로 말이죠. 어느 정도 돈과 운이 필요했지만 운은 문제가 되질 못했어요. 살면서 행운이 아이를 비껴간 적이 없었거든요.


마침내 아이의 아이는 사립초등학교에 당첨되었어요. 입학 첫 학기를 앞두고 아이와 아내, 그리고 아이의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의 엄마를 찾았어요.


한참을 운전하는 아이에게 아이의 아이가 물었어요.


아빠, 임대아파트가 뭐예요?


아이는 당황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냐며 채근하기 시작했죠. 아이의 아이는 친구들이 임대아파트에 사는 애랑 놀지 말랬다는데, 지금 가는 할머니 집이 임대아파트 아니냐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아빠, 나 할머니랑 놀지마?


아이의 엄마는 여전히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사실 아이는 결혼으로 집을 떠나며 엄마에게 말했거든요.


엄마, 요즘 같이 집값이 이렇게나 비싼데 축복이야 축복!
괜히 이사한다고 큰돈 쓰지 말고
그냥 앞으로 쭉 여기 사셔!






여보! 브레이크!!!


아이는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어요. 저런! 앞차와 부딪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예나 지금이나 차사고가 나면 뒷목부터 잡고 내리나 봐요. 놀란 아이는 차에서 내려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고개를 숙였어요.


나 같이 착한 사람 만난 거 운 좋은 줄 알아요.
나도 보험 부르면 귀찮고, 크게 긁힌 거 아니니
15만 원만 줘요


아이는 모바일 뱅킹으로 즉시 15만 원을 이체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아이에게 불현듯 한 생각이 스쳤어요. 아이를 스키캠프로 보내준 15만 원과 오늘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날린 15만 원. 갑자기 역류성 식도염이 도진 듯, 올라오는 신물에 숨을 참아봐요.


그날 아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크게 다친 곳은 없지만 아내와 아이의 아이가 놀라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라면서요. 




안녕하세요 손님, 대리 부르셨나요?


아이는 퇴근하고 금요일 밤, 토요일 밤에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했어요. 세상에, 사립초등학교만 보내놓으면 끝인 줄 알았지 뭐예요. 오늘의 목표는 언제나 15만 원. 한 달 열심히 일하면 영어 학원비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군요. 아이는 언제쯤 행복해질까요. 어쩌면 곁에 찾아온 행복을 기어코 외면하는 건 아닐까요. 아유 가여워라. 아이가 딱해 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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