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최근에 저는 카페 테이블의 흠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동네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다가
나무 테이블 표면에 묻은 손때와
오래된 기름기 같은 흔적이
갑자기 존재론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글이 잘 안 써져서
현실 도피를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스벅 테이블은 이상하게 말이 많다.
표면 전체가 타인의 시간으로 코팅돼 있다.
‘이직 고민을 몇 달째 하는 사람’의 팔꿈치 기름도 묻어 있고,
‘과제 마감 3시간 남기고 커피만 마신 대학생’의 절망도 눌려 있을 것이다.
그 흔적들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인류의 역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그 역사는 주로 카페인으로 유지된 것이지만.
가끔은 이 흠집들을 보며
“이 자리는 과연 지금까지 몇 번의 연애 상담을 견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이 나무 테이블은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을 매일 흡수하느라
은근히 번아웃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많은 것들을 지나치면서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조차 잊고 산다.
마시는 커피 한 잔,
두드린 키보드 소리,
잠깐 올려둔 손목의 무게까지.
각자의 하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몰라도
그 무게는 어딘가에는 남는다.
철학자 베냐민은
‘사물에는 과거의 잔향이 남는다’고 했는데,
그의 말을 빌리면
카페 테이블은 사실 일종의
목재형 블랙박스인지도 모른다.
무슨 말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럴 듯해서 가져왔다.
문득 생각했다.
혹시 오늘 내가 마신 아아 컵에 맺힌 물방울도
테이블에 스며들어 흔적이 된다면,
그걸 본 누군가의 사유를
살짝 건드릴 수 있을까?
“이 자리엔 또 어떤 인간이 와서 고민을 흘리고 갔네...”
이런 식으로.
그렇다면 이 흠집들은
일상의 사유를 촉발하는 작은 장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물건에 흔적을 남기고,
물건은 우리에게 질문을 돌려준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카페 테이블의 기름기가 신경 쓰이면
그냥 닦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