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최근에 저는 칫솔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양치하다가 칫솔 끝이 사방으로 벌어진 걸 발견하는 순간
“이건 왜 항상 이런 형태로 해체되는 걸까?”
하는 질문이 느닷없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그런 의문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칫솔모의 갈라짐은 우발적 손상이 아니다.
처음엔 모든 모가 일렬로 곧게 서 있다.
정렬된 집단, 균일한 방향성.
그러나 사용이 반복되면
앞줄·뒷줄·구석줄이 서로 다른 속도로 피로를 축적한다.
어떤 모는 하루에도 여러 번 압력을 받고,
어떤 모는 그저 스치는 정도의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갈라지는 방향은 늘 제각각이다.
이건 마치 작은 집단의 노동 강도 차이가
구조적으로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칫솔모가 벌어진다는 것은,
그 집단 내부에서 이미
작은 피로의 분배가 이루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겉보기엔 똑같은 플라스틱 기둥이지만
실제로는 각자 다른 강도의 마찰을 경험한다.
결국 갈라짐은 폭발이 아니라
미세한 불만의 누적 끝에 도달한 점진적 해체에 가깝다.
칫솔은 말이 없지만
끝이 벌어지는 방식으로 자신의 수명을 알려준다.
어떤 전자기기도 이런 기묘한 자기 신호 체계를 갖고 있진 않다.
칫솔만이 가진 특유의 비언어적 고장 알림 시스템이다.
스스로 효율이 떨어졌음을
모서리의 이탈로 표현하는 방식.
마치 “나 이제 여정의 끝에 가까워졌다”는
작은 내부 보고서처럼 보인다.
칫솔모의 생애는 또 하나의 사실을 보여준다.
같은 제조 라인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갈라지는 패턴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한쪽만 흐트러지고,
누군가는 끝부분이 포자처럼 사방으로 터지고,
어떤 칫솔은 정수리처럼 가운데만 솟아오른다.
이건 도구에도 경로의존성이 있다는 조용한 증거다.
같은 구조라도
시간의 분배, 압력의 방향, 사용자의 습관이
각자 다른 운명을 만든다.
칫솔모의 갈라짐은 일종의 퇴장 선언이다.
평소에는 묵묵히 기능만 수행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조용히 형태를 바꾸며
사용자에게 말한다.
“여기까지입니다.”
그 짧은 벌어짐은
수많은 날의 반복과 마찰과 수분과 힘이
한 점에 쌓여 나타난 구조적 결과다.
작은 도구의 해체 방식 속에
하루의 사용 기록이 압축돼 있다.
정확히는 왜 이런 장면에서 사회학이 떠오르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칫솔모의 벌어진 형태를 보고 있으면
집단과 피로와 해체와 시간 같은 단어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올라온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칫솔은, 벌어지면 바꾸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