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말리는 밤
오늘 점심은 아무거나였다.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정확히는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밥이었고, 그냥 반찬이었고, 그냥 아무거나였다.
숟가락을 들고 밥을 떴다.
한 술, 두 술, 세 술.
씹었고, 삼켰다.
맛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는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판단할 감정이 작동하지 않았다.
밥은 들어갔다.
위는 채워졌다.
하지만 무언가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마음인지, 감정인지, 아니면 그냥 공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빈 곳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밥은 먹었어?"
좋은 질문이다. 정말.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밥은 먹었는데 감정은?
밥은 먹었는데 의욕은?
밥은 먹었는데 마음은?
밥을 먹는 건 루틴이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아도,
12시가 되면 밥을 한다.
왜냐하면 그게 시스템이니까.
하지만 감정은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다.
설거지를 했다.
그릇을 닦고, 행주를 빨고, 싱크대를 닦았다.
손은 움직였고, 물은 흘렀고, 거품은 사라졌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만 빼고.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배는 부르지만 마음은 텅 빈 기분.
이상한 조합이다.
몸은 작동하는데
감정은 멈춰 있는 상태.
감정 고정 현상.
컴퓨터로 치면 프로그램이 ‘응답 없음’ 상태인 것 같다.
강제 종료를 눌러야 하는데,
어디를 눌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츠키마루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옆에 앉아서, 식탁을 바라봤다.
빈 그릇들, 정리된 반찬통, 깨끗한 행주.
표정은 없었지만,
그 무표정 속에는 확실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잘 먹었네요.”
나는 대답했다.
“응, 밥은 먹었어.”
츠키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는 내 손등을 톡 쳤다.
가볍게.
마치 “그 정도면 됐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밥을 먹는 것과 감정을 느끼는 것은 별개다.
배를 채우는 것과 마음을 채우는 것은 다른 시스템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착각한다.
밥을 먹으면 기분도 나아질 거라고.
루틴을 지키면 감정도 따라올 거라고.
아니다.
감정은 밥처럼 시간 맞춰 나오지 않는다.
12시에 배고프다고 해서
12시에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감정이 언젠가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그때를 위해 몸은 일단 작동시켜야 하니까.
츠키마루는 그걸 안다.
오후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감정은 여전히 고정 상태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 덜 답답했다.
츠키마루가 손등을 톡 친 그 자리가
아직 따뜻한 것 같았다.
밥은 먹었다.
그 정도면 오늘 하루는 충분했다.
아무거나라도, 먹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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