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말리는 밤
밤 10시 18분.
핸드폰 화면을 켰다.
말풍선이 여섯 개 떠 있었다.
그중 하나를 눌렀다가,
화면을 껐다.
잠깐 진동이 울렸고,
다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을 끄고, 거실에 앉았다.
물컵은 비어 있었고,
창밖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고
감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건
마음인지, 눈동자인지, 손가락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거나 끓이려고 찬장을 열었지만
커피는 지금 상태엔 너무 선명했고
보리차는 냄새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앉았다.
한참 뒤에야 보였다.
탁자 위, 찻잔 하나.
김이 거의 다 사라진 상태.
찻잔 옆엔 작은 태그가 붙어 있었고,
초승달 문양이 흐릿하게 보였다.
색은 라벤더 그레이.
말없이 존재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색.
나는 조심스럽게 잔을 들었다.
향은 포도 같기도 하고,
차 같기도 했다.
전에 맡은 적 있는 것 같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한 모금.
적정 온도.
뜨겁지 않고, 식지도 않고,
위로도 하지 않는 맛.
그게 좋았다.
메시지들은
모두 상냥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더
적당한 답변의 말을 찾기가 어렵다.
찻잔에는 그런 문장이 없었다.
침묵이었고, 향이었고, 온도였다.
두 번째 모금을 마셨다.
이번엔 부드럽게 넘어갔다.
감정을 데우지 않고,
감각만 아주 살짝 건드렸다.
찻잔은 말이 없었고,
나는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차를 마시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부담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압박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어떤 말에도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던 차는
끝까지 다 마실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떤 위로는 말이 없고, 냄새로 온다. 그리고 말 없는 위로가 필요한 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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