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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Jun 28. 2019

사상과 이념을 넘어선 아름다운 삶.

영화 <타인의 삶> 리뷰

출연: 울리히 뮈헤세바스티안 코치마티나 게덱울리히 터커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영화의 배경은 1984년 동독의 독재정치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 국가보안부는 문화계 인사들에도 24시간 감시를 붙이고 체제에 반대하는 인사는 블랙리스트에 올려 더 이상의 창작 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영화는 비즐러가 강의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을 효과적으로 취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는 그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한 학생의 이름에 X 표를 하는데 그의 눈빛은 냉정하고 빈틈이 없다.  


그는 우연히 보게 된 연극에서 작가인 드라이만을 발견하고 그를 위심하게 된다. 

드라이만의 연인인 크리스타를 차지할 욕심에 드라이만을 제거하려는 햄프 장관, 그리고 장관의 눈에 들고 자 하는 그루비치의 야욕이 맞물려,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가 감시를 하는 공간은 드라이만의 집 위층. 아래층에서 드라이만이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동안 그는 오직 감시만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차갑고 무미건조한 공간에서 드라이만을 관찰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장관과 크리스타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드라이만에게 이를 알려서 둘의 관계를 파괴하고자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크리스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 드라이만의 모습을 보고 늘 꼿꼿하기만 했던 그의 마음이 서서히 그들에게로 기울어진다. 그렇게 그의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이다.


비즐러가 사는 집은 그가 종일 감시를 위해 앉아 있던 공간과 마찬가지로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돈으로 여자를 사서 조금이라도 온기를 느껴보려고 하지만, 그런 것으로는 그의 마음을 채울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드라이만의 집으로 들어가 그곳의 온기를 느껴보려고 한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책상을 바라보던 비즐러는 그들이 사랑을 나누던 침대에 가만히 손을 올려 온기를 느껴보려 한다. 그는 드라이만의 시집을 몰래 가지고 나와 읽기 시작하는데, 그제야 비로소 그의 표정은 충만한 행복감으로 가득 차 보인다. 그의 얼어붙었던 마음속에서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드라이만은 평소 존경하던 연출가 예르스카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듣고,  예르스카가 선물한 악보,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이 연주를 들은 비즐러는 큰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비즐러는 이제 더 이상 냉정한 비밀경찰이길 포기한다. 이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공을 들고 있는 소년과의 대화가 이를 잘 드러낸다. 그는 비밀경찰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한 아이에게 습관처럼 이름을 묻고는, 누구 이름을 묻냐는 아이의 질문에는 엉뚱하게도 ‘그 공’이라고 대답한다. 


그 뒤 장관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선  크리스타를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그는 그녀에게 용기를 준다. “무대 위의 당신을 봤어요. 제겐 그때 모습이 더 당신다웠어요”라고 말하는 비즐러.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무대란 그녀가 공연을 하던 무대보다는 그가 감시하고 있는 그들의 일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비즐러는 더 이상 감시자의 역할에 머무르지 못한다. 그는 드라이만의 행복하고 따뜻한 생활이 계속될 수 있도록 가짜 보고서를 쓰는 작가이며, 그들의 사랑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연출가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드라이만을 감시하고 우리는 그의 모습을 관찰한다. 우리는 그가 변화하는 순간을 감지하고, 드라이만의 진실한 모습이 이끌어 낸 그의 인간미를 발견한다. 이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도 새롭게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아마도 드라이만의 아름다운 삶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감춰져 있던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구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의문이 든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어떻게 결정하는 것일까?

오래도록 지속되어 이미 뼛속 깊이 각인되었으며 그것이 처음부터 나의 생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모를 만큼 익숙해진 사상과 신념을 넘어설 수 있는, 그만큼이나  아름다운 삶이란 과연 존재할까?  

비즐러가 자신이 평생 지켜온 신념을 저버리면서까지 드라이만의 행복을 지켜주려고 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맨 처음 비즐러가 감시하는 드라이만의 삶은 ‘타인의 삶’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타인의 삶” 이 될 수는 없었다.  그가 갖고 싶었으나 가질 수 없었던 일상의 따뜻함을 공유한 순간 비즐러에게 드라이만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었기에…


아마도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행복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지키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나를 위한 책’이라고 말하는 담담하면서도 뿌듯해 보이는 비즐러의 표정이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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