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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May 08. 2020

‘신뢰’라는 이름의 무거움.

『연을 쫓는 아이』 서평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이미선 옮김


1970년 후반 아프가니스탄의 불안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아미르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면서 어린 시절 미국으로 망명하여 작가가 된 ‘할레드 호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이다. 2003년 출판된 이후 70여개 국가에서 번역되었으며, 2007년도에는 영화로도 제작된 그의 대표작이다.


아미르는 자신보다 1년 늦게 태어난 하산과 친 동기간처럼 가깝게 지낸다. 부유한 아버지 덕에 좋은 집에 살고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그와 달리 하산은 마당 구석 흙 집에 살면서 아미르의 시중을 들고 있다. 아미르는 아버지인 바바의 사랑과 관심을 원하지만 둘 사이는 냉랭하기만 하다. 그는 자신을 낳다가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미움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연날리기 대회에서 1등을 하는 것만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미르는 결국 연날리기 대회에서 1등을 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끊어낸 파란색 연을 전리품으로 차지하기 위해 하산이 달려간다. 하산은 평소 그를 괴롭히던 아세프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까지 아미르를 위한 연을 지켜낸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본 아미르는 두려움에 하산을 외면하고, 그날 이후 그는 죄책감에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26년 후 아미르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이제 그는 과거를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자 한다.


소설은 ‘신뢰와 배신’을 중심 축으로 구성 되어 있다. 화자인 아미르가 ‘도련님을 위해서는 천 번이나 하고 말고요’ 라고 말하는 하산의 신뢰를 저버리면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배신’은 그보다 훨씬 전 그의 아버지인 바바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아미르는 아버지 바바의 정의로움을 신뢰한다. 그렇기에 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괴로워하고, 정의롭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했다. 그의 아버지는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P32)’라며 죄짓는 삶에 대해 경계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직을 강조하던 그는 실은 형제와 같은 알리에게서 아내를 훔치고 자신의 죄책감을 그의 아들에게 전가 하여, 아들의 삶 또한 고행 길로 이끄는 장본인이었다. 만약 바바가 아미르에 대한 신뢰를 보여 주었다면, 아미르는 하산을 ‘희생양’삼아 아버지의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미르가 느껴온 하산에 대한 경쟁심은 하산의 헌신적은 태도로 인해 늘 죄책감을 유발시켰다. 만약 그들이 형제라는 사실을 더 일찍 알게 되었다면 그들의 관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지점이다.


그는 ‘1975년의 춥고 흐렸던 어느 겨울날, 나는 열두 살 나이에 지금의 내가 되어버렸다. (P9)’고 회상한다. 그리고 그에게 과거는 단지 과거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과거의 잔영으로 인해 그는 26년 동안이나 인적 없는 그 골목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아버지의 친구인 라힘 칸으로부터 하산이 실은 자신의 동생이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부엌에 서서 전화를 받던 나는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이 라힘 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죄 받지 못한 죄들로 얼룩진 내 과거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P10)’ 그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하산의 아들인 소랍을 데리러 위험천만이 아프카니스탄으로 가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의 인생은 다른 측면으로 변화한다. 늘 한발 뒤에서 위험을 피하기만 하던 그가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12살에 멈춰 있던 그가 스스로의 의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소랍을 구하는 과정에서 얼굴에 큰 부상을 입은 아미르의 입술이 언청이였던 하산의 입술처럼 변한 것은 그가 소랍의 아버지가 되기 위한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또한 하산이 새총으로 아미르를 구하고, 아미르가 하산의 아들인 소랍을 구하고, 소랍이 다시 새총으로 아미르를 구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해 보인다. 생존을 위한 약자들의 끈끈한 연대, 그리고 스스로의 부족함과 죄책감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신뢰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쩌면 ‘배신’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 일 수도 있다. 아미르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정의롭게 보였던 아버지 바바가 실은 인생의 큰 과오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즉, 그의 치부를 알게 되는 순간 아미르는 성장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 소년의 성장 소설이지만, 책 속의 사건들은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겁다. 또한 소설이 단지 픽션이 아니라 현재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재현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소설이 해피 앤딩으로 끝나더라도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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