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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Yu Jan 20. 2024

성과평가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더 강하게

성과평가. 하위고과자 한 명을 회사에서 내보내기로 했다. (내가 이런 살벌한 조직에 살고 있다...)


1점, 기대에 훨씬 못 미침  /  2점. 기대에 못 미침

3점. 기대만큼 업무 완료

4점. 기대보다 잘 함  /  5점. 기대보다 훨씬 잘 함

(점수에 대한 한 페이지짜리 정의가 있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성과평가는 10:10문제다. 찬성하는 이유 10가지를 만들 수 있고, 반대하는 이유 10가지도 만들 수 있기에 결국 선택의 문제와 선택 후의 사후 관리만 남는 문제이다. 음... 쉽게 얘기해서 '답이 없는 문제'다. 오로지 '실험'과 이를 보완하는 또 다른 '실험'만 있을 뿐이다. 절차에 불만이 있어서, 과정이 공정하지 못해서, 주관적이고 형식적이라서. 흠... 상위고과자는 아무런 말이 없다. 


    성과평가 시즌이 끝났다. 평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꼭 해야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매년 하면서도 그 의구심도 반복된다. 물론 회사의 정책이고 평가가 없는 회사가 어디 있겠냐만은 이걸 거부할 방법은 내가 지금의 자리를 그만두는 것 밖에 없지만 다른 매니저들도 다들 하는 평가를 나라고 못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다만, 평가를 어떻게 하는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평가자 스스로 만족할 만한 평가를 했는지만이 서로 다를 것이다. 다들 쉽게 쉽게 하던데, 나만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 테고.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서 평가는 왜 하나? 좋은 평가는 기분 좋으라고 주는 건 분명 아닐 게다. 물론 비교우위의 만족감을 느끼는 인간 본능이 있다. 놀랍게도 실제로 20명 중에 한 두 명 정도는 높은 평가 즉, 남들로부터 혹은 상사로부터의 인정(Recognition) 그 자체만으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건 분명 고성과자가 얻는 보람 중 하나이고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사실 만족감을 위해 일한다기보다는 무슨 일을 해도 열심히 하는 타고난 DNA 가진 사람들이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를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계속 모르는 것도 회사 생활의 세계이다. 고성과는 그 사람에게 더 많은 성장기회, 교육기회와 구체적으로는 승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되고, 승진하면 더 많은 연봉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다만, 피라미드 구조에서 승진과 업무 스트레스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될 것도 분명하고.


    경영전반이 어려워지면 성과평가에 더욱 민감해진다. 입사 이후부터 기록된 평가 결과는 줄을 세우는 훌륭한 데이터가 되었을 테고 인력감축을 해야 하는 인사팀의 고민을 쉽게 덜어주는 수단이 되어버린다. 회사 서류 면접을 통과하는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당신만 아는 비밀일 것이다. 상위 고과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하위 고과자에게는 역량을 개발할 기회를 준다는 지침도 인사 매뉴얼 어딘가에 있겠지만 과연 개발할 기회를 주기는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거리도 없다. 그걸 챙겨야 하는 건 매니저들이 몫이고, 그 번거로운 일을 해 내는 것으로 또 평가를 할 테니까. 회사 생활은 시키는 것만 하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그래서 돈을 준다는 얘기는 제발 하지 말아라. 맞는 얘기라 반박할 게 없거든)


    저성과자에게 이렇게 얘기해 본다. 비록 올해 성과가 낮지만 그건 상대적일 점수일 뿐이고 이미 이 회사에 들어온 것 자체가 서류와 몇 차례의 면접을 통과한 우수한 인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아~ 그렇구나. 깨달음! 이라며 쿨하게 인정할까? 물론 씨알도 안 먹히고 전혀 위로도 안 되는 얘기다. 저성과자는 다음 해에도 성과가 그리 탐탁지 않다는 것도 고민 중 하나다. 작년에 못 했다 하여 올해도 못할 것이라는 건 위험한 편향이기에 주의해야 하지만 성과를 내기 위해 난이도 있는 업무를 주는 것은 또 다른 리스크를 안게 되는 상황이 되고, 그걸 계속 모니터링해야 하는 부담도 생긴다. 마운드에 올려주는 기회를 줘야지 맨날 벤치에만 앉아서 어떻게 실력을 보여줄 수 있겠냐 하지만 현실은 그만큼 녹록지 않다.




    극단적인 가정을 했다. 최하위고과자 1명은 내년에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가정. (정확히 말하면 옆 조직에서 해고통지를 했고, 그걸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순서라는게 있으니까.) 자 이제, 최하위고과자 1명을 어떻게 선별될 것인가? 내 기준으로는 아무도 5점을 주고 싶지 않아도 줘야 하고, 모두 다 업무를 완수하여 잘했으니 1, 2점을 주고 싶지 않지만 회사가 정한 비율이 있기 때문에 하위고과는 누군가 반드시 가져가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분명 이건 상대적인 평가라는 의미인데 어느 선으로 올라가면 절대적으로 해석해 버린다. 그렇게 누군가가 하위고과를 받았고, 그는 본인은 최선을 다 했기에 이해할 수 없다는 강력한 항의를 해 온다. 해고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필사적일 것이고 설령 점수가 뒤바뀌게 되면 뒤바뀜 당한 당사자의 더 강력한 항의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은 공격 포인트들이 평가표 곳곳에 지뢰밭처럼 흐드러져있다.  


1. 기대(Expectation)는 무엇인가요? 기대가 무엇인지 저와 협의가 잘 안되었습니다.

기대값을 정의하는 문제 또한 10:10 문제이다. 내가 정의한 기댓값이 맞다고 할 이유 10가지를 들을 수 있고, 잘못되었다고 할 10가지 이유도 들을 수 있다. 분명한 건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평가자의 기대를 팀원들이 맞춰야만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기댓값은 기본적으로 팀의 목표에서 온다. (참고로 우리 팀원들은 엔지니어들이다!) 목표의 기본값이 세팅되어 있지만 새로운 목표는 끊임없이 나오기에 그 '목표'라는 것도 매 분기별 개정해 나가면서 점검한다. 목표를 명확히 공유하지 않으면 매니져의 잘못이긴 하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목표를 공유해야한다. 그리고 문자로 공유되는 기댓값은 계속해서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는 기댓값도 반드시 필요하다.


2. 변하지 않는 나의 기댓값은 "시키지도 않은 걸 찾아서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다. 시킨 걸 잘하면 4점이다. 시킨 걸 남들만큼 하면 3점이고, 시킨 것도 제대로 못 하면 2점, 1점이다. (요걸 원래의 평가기준과 적절히 섞어야 한다) 물론 하고자 하는 일이 회사의 방향과 맞아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음이다. 그 일은 본인 이름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되기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 나는 그 일의 성패를 떠나서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본점수 3점은 먹고 시작한다고 격려한다. 남이 이끄는 일을 열심히 지원해서 그 과제가 성공해도 우리는 지원자의 이름으로 남을 뿐이다. 결코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찾는 건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3. 이런 문제가 생긴다. 난이도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 사람은 역량이 출중하여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는데도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성과는 이뤘지만 박수는 치지 못하겠다. 반대로 어떤 팀원은 사람들과의 협업을 어려워하는데 이번에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작은 성과를 이뤄냈다. 성과의 크기로만 보면 누가 잘했는지 분명하기에 머리로는 가차 없이 평가하고 싶지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4. 성과평가를 스스로 해 보라고 하면(Self-Evaluation) 모두 5점 만점에 4.5 이상은 줄 것이다. 저는 올해 일을 잘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못 봤다. 일이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어도 그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일이 많고 적지만 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난이도가 같지는 않다. 혼자서 한 달간 뚝딱 하면 되는 일. 작은 조직을 꾸리고 다른 팀과 협업하고 설득하고 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하는 일.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경기에서 트리플 악셀 하다 조금 미끌 했던 선수와 그런 고난이도 시도는 하지 않고 평범한 것으로 안전하게 끝낸 선수. 누구에게 점수를 줘야 할까? - 난이도가 무엇인지를 인식시켜야 한다.


5. 축구 경기에서 한 명이 잘못해서 승리하지 못하면 그 선수를 교체하면 된다. 그런데 팀 전체가 어수선하고 우와 좌왕하여 승리하지 못했다면... 감독을 교체해야 한다. 감독이 잘못한 상황이라고 선수는 주장한다. 시킨 일은 다 완수했는데 점수가 낮으면 어떡하라는 건지요? 감독이 한 게 무엇이냐는 아찔한 질문이 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 난 히딩크가 아니야(?)


6. 이건 교과서에도 없는 나만의 벽이다. 나의 팀원은 아시아 4개국에 나눠져 있다. 일 년 내내 얼굴 한 번 못 보고, 밥 한 끼 같이 먹지 못하는 팀원도 있다. 반대로 한국에 있는 팀원들은 언제 출근하고, 언제 퇴근하는지를 알고, 커피타임이 있고 가끔 술자리 벙개도 있는데 과연 팔이 안으로 굽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끔찍한 문제가 비집고 들어온다. 팔에 기브스를 하고 다녀야 하나. 팀원은 해당 국적의 노동법을 따르니 하위고과를 받더라도 해고에 둔감한 국가가 분명 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동법을 이용하려 짱구를 굴린다면 팀원들 간의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럴 땐 원칙대로 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 원칙이또 무엇인가? 하...


    회사밥을 먹고 있는 나 또한 평가를 받는 직원이다. 내가 팀원들을 평가하는 잣대로 나를 평가한다면 결코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하겠다. 나의 평가기준을 가져와서 나도 하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해내라고 하는 모순을 직면할 때 스스로 세뇌를 하는 수밖에 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었고 모든 것을 잘할 수 없다고. 나 스스로는 시키지 않은 걸 찾아서 훌륭하게 잘할 자신은 없지만 시키지 않은 걸 찾도록 격려하고 지원하고 때로는 희생하는 게 나의 DNA에 새겨진 천성이라고. 그리고 나의 상사의 평가기준은 나와 다르다고.


    올해 평가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니 일기장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쏟아내고 나니 홀가분하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인적자원관리. 2015년 출판. 조직관리로 고민할 때마다 들춰본다. 매번 새로운 영감을 받는다.

*대문 사진 출처: 잡코리아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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