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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1Q 2025

1월, 2월, 3월 스쳐간 책들

by KayYu

1월, 2월, 3월

정성들인 서평을 남기지 못해 미안한 책들


2025년 1월 11일 / 이 중 하나는 거짓말 / 김애란 / 2024


나는 너희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나는 너랑 살게 돼 기쁘다.




2025년 1월 29일 /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 로얼드 호프만 / 1996

묘령의 여인이 나올 듯한 소설 제목 같지만 화학을 다룬 과학서적이다. 화학분자식으로 양념 친 화학에세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로얼드 호프만이 1996년 출간한 화학분야의 스테디셀러인데 여기저기 기고한 글을 엮다 보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꼽기는 어렵고 조금은 단편적이고 이리저리 생각의 흐름이 튀는 점은 감안해야겠다. 복잡한 화학이야기보다 예술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문학, 심리학, 심지어 민주주의와 그리스 철학자 이름도 등장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화학의 스펙트럼이 순수과학의 학문을 넘어 인간의 삶과 연결고리가 있는 부분이라면 인문학적 지식과 융합하여 그의 사유를 공유하고 있다. 그의 지혜의 깊이가 얼마나 깊을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과학자에 의한 과학서임에도 화학분자식이 친근하고 부드럽게 소화된다.




2025년 3월 9일 / Wonder / R, J 팔라시오 / 2013

국내에서 '아름다운 아이'로 소개되었다가 나중에 '원더'는 원서 이름으로 그대로 개정되었다.

안면기형장애로 태어나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쳤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편안히 다가가기 힘든 외모를 가진 어기(Auggie, August)의 학교생활이다. 주변의 시선이 두렵고 마음을 힘들게 하지만 친구들도 서서히 어기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 되면서 마음과 우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아이들이다. 서로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배려하며,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아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깊은 마음에 놀라기도 하면서 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십 대 아이들의 이야기다. August 부모의 노력이었을까? August 또한 남들과 다른 외모에 울음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모습, 용기를 잃지 않는 참 대견한 아이, Wonder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p308. "You really are a wonder, Auggie. You are a wonder."


PS. 학교에서 일어난 아이들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선생님들, 어른들이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자녀교육 측면에서도 몇 가지 배워간다. 예를 들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고 다시 대화를 이어가는 것. 이런 것들.




2025년 3월 21일 /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 1987

열아홉 청소년 시절 나는 무엇을 꿈꾸었고, 무엇을 즐거움으로, 무엇을 쫓아가며 살았을까? 남자 고등학교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야간 자율학습에, 심지어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그러했듯이 그 시간이 힘든 건 분명하지만 나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점은 분명히 깨달았기에 나름 성실히 공부도 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소수 친구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열등감에 둘러싸여 있었고 이성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도 친구와 깊은 우정을 맺은 기억은 없다. 와타나베와는 완전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성숙한 길이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60년대 일본이라는 다른 시대, 개방적인 성문화 등 완전히 다른 문화에 사는 한 청소년의 단편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기기에는 어쩐지 내가 초라해 보인다.


친구의 자살이라는 사건은 황망함을 넘어 분명 충격적인 상황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은 있다. 고등학교시절 어느 저녁. 이름은 알고 지냈던 친구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숙사에서 불과 이 삼일 전 내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오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수 없이 많은 저녁 식사를 했지만 기억에 남은 식사는 그게 유일하다는 점은 나에게도 분명 충격적인 날이었다는 증거이다. 그 이후로 그 충격이 오래가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더 충격이었지만. 나는 그토록 주변에 무심했던 심장이 얼어붙어 있었던 사람이었을까?


p351. 와타나베와 나는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 있는 인간이야. 오만하고 그렇지 않고의 차이야 있겠지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거기에 대한 것 말고는 어디에도 관심이 없어. 그래서 자신과 타인을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어.


마흔 중반에 넘어서 접한 청춘의 고민들이 옛 기억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 많던 고민들도 세월 앞에서는 그 생명이 그다지 길지 않음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죽음의 소식들이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성숙하게 만든다. 열렬한 팬이었던 뮤지션부터 건너 건너 아는 사람, 회사 동료 그리고 부모님. 죽음이 어린 시절에는 공포의 대상, 철학적 고민의 대상으로 다가왔지만 성인이 된 지금 눈앞의 공깃밥만큼이나 가벼이 느껴지기도 한다. 쇼펜하우어의 '죽음은 삶의 목적'이라는 의미가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할 즈음일까. 이제 더 늙게 되면 어쩌면 죽음을 갈망하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와타나베는 그 시절을 겪었고 그렇게 성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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