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전주곡"으로 알려진 쇼팽의 전주곡, 작품번호 15번이다. 바흐의 영향을 받아 Well-Tempered Clavier와 유사하게 모든 조성을 이용하여 총 24곡의 전주곡을 만들었다. 전주곡이라는 게 주로 푸가나 왈츠의 Major 곡을 연주하기 전에 분위기를 몰입시키기 위해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연주했던 곡인데 쇼팽은 이를 하나의 작품집으로 만들었다. 곡의 길이로 보며 가장 짧은 13마디짜리부터 90마디까지 다양하고 절반 이상의 곡이 1분 미만의 연주 시간을 갖는다. 전체 다 연주한다면 대략 45분 정도 걸리는데 그중 이 곡 Raindrop이 대략 7분 ~ 7분 30초 사이로 가장 긴 곡이 되겠다. 이런 정성 덕분인지 쇼팽 이후의 프렐류드는 그 이전의 목적 (이름 그대로의 전주곡)과 달리 독립적인 하나의 장르로도 발전되었다고 보고 있다.
쇼팽은 이 곡을 폐결핵 악화로 그의 연인 조르드 상드와 함께 요양을 위해 마요르카로 도피하듯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작곡한 곡이다. 쇼팽은 왜 신은 당장 나를 한 번에 해치우지 않고 서서히 죽여가는지라고 저주를 품었을 만큼 건강상태가 최악인 상황이었지만 전주곡과 더불어 발라드 2번, 녹턴 11번, 스케르초 3번 등의 명곡들이 탄생된 장소이기도 하다. 그 지역은 여름에 비가 많은 지방이기에 정황상 항상 빗소리에 젖어 있었을 것이며 그런 분위기에서 전주곡 대부분의 곡이 작곡했을 것이라 추정하긴 하지만 정확한 건 없다. 특히 이 15번 곡은 조르드 상드의 저서를 통해 '폭우가 내린 날 강물이 범람하고 다리가 끊겨 몇 시간 동안 혼자 걸어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 쇼팽은 울면서 이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개인적으론 이 부분에서 쇼팽이라는 사람의 음악을 끊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있을 것 같은 상황이라면 일반적으로 뛰어나가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게 정상 아닐까?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도 피아노를 칠 정신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쇼팽이 이 시대를 살고 있다면 사이코패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예인으로 뉴스에 오르고 비난의 댓글에 싫어요 수 천 건은 훌쩍 넘기지 않았을까? 이제 곧 쓰러질 듯 몸도 가눌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였을 거다 혹은 출판업자의 욕심이 빗어낸 과장이거나 혹은 쇼팽의 폐결핵과 우울증 증세의 악화 등으로 절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상황 등몇 가지 합리적인 이유로 어리둥절하지만 대신 변호를 해본다.
Raindrop이라는 이름에도 살짝 불만 섞인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Raindrop이라는 이름은 쇼팽이 살던 당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한스 폰 뵐로 Hans Von Bulow (1830-1894)가 붙인 이름이다. 뵐로는 프렐류드 24곡 전곡에 이름을 붙였다. 각각의 이름들을 붙인 이유를 들어보면 곡을 들었을 때 느낀 감흥만으로 붙인 건 아니며 곡을 연주하는데 필요한 테크닉 등도 함께 고려되어서 붙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되었건 중요한 건 쇼팽은 그가 붙인 이름을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각각의 이름은 이렇다.
1. C major - Agitato (Reunion)
2. A minor - Lento (Presentiment of Death)
3. G major - Vivace (Thou Art So Like a Flower)
4. E minor - Largo (Suffocation)
5. D major - Molto allegro (Uncertainty)
6. B minor - Lento assai (Tolling Bells)
7. A major - Andantino (The Polish Dancer)
8. F sharp minor - Molto agitato (Desperation)
9. E major - Largo (Vision)
10. C sharp minor - Molto allegro (The Night Moth)
11. B major - Vivace (The Dragonfly)
12. G sharp minor - Presto (The Duel)
13. F sharp major - Lento (Loss)
14. E flat minor - Allegro (Fear)
15. D flat major - Sostenuto (Raindrop)
16. B flat minor - Presto con fuoco (Hades)
17. A flat major - Allegretto (A Scene on the Place do Notre-Dame de Paris)
18. F minor - Molto allegro (Suicide)
19. E-flat major - Vivace (Heartfelt Happiness)
20. C minor - Largo – C minor (Funeral March)
21. B flat major - Cantabile (Sunday)
22. G minor - Molto agitato (Impatience)
23. F major - Moderato – F major (A Pleasure Boat)
24. D minor - Allegro appassionato (The Storm)
사실 여기 닉네임 중에 마음에 와닿는 이름이 거의 없다는 게 대단히 아쉽다. 음울함의 강도를 붙일 수 있다면 빗방울이 떨어지는 정도로는 그 깊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인 듯하다. 게다가 빗방울에는 청량감의 이미지마저 있지 않은가! 쇼팽은 천지를 흔드는 폭우 앞에서 그의 연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비탄과 절망감, 공포에 빠져 있었다면 빗방울이 아닌 '지옥의 문'이 더 어울릴 법하다. 닉네임은 자유로운 상상의 영혼을 붙잡고 이름에서 고정관념을 갖게 하기에 그런 이유로 인한 불편한 심기는 유명한 클래식 작품 곳곳에 살아있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하여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그 이름이 그 작품을 널리 사랑받도록 해준다는 아이러니함에 있을 것이다. 쇼팽의 Prelude에 관심을 갖게 해 준 건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이름 덕분이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하고 쉽게 기억되도록 하는 것만큼에는 Hans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닉네임에 대해서는 또 다른 피아니스트 Alfred Cortot (1877-1962) 버전도 있다. 여기저기 해외 사이트의 Chopin Prelude 작품 해설, Nickname에 대한 의견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Hans 별명보다 Cortot에게 좀 더 공감한다는 의견들이 많고 나도 이 부분을 지지하고 싶다.
1. C major - Fieverish awaiting of the beloved
2. A minor - sad meditation, the lonely sea in the distance...
3. G major - the singing of the brook
4. E minor - on a tombe
5. D Major - the tree full of songs
6. B minor - homesickness
7. A Major - happy memories flow like a perfume through memory
8. F sharp minor - the snow is falling, the wind is howling, the storm is angry; but in my sad heart, the storm is even worse
9. E Major - End of Poland
10. C sharp minor - Rockets falling down
11. B major - young maiden's wish
12. G sharp minor - hellride trough the night
13. F sharp major - on foreign ground, in a starlit night, thinking of the faraway beloved
14. E flat minor - stormy seas
15. D flat major -... but death is overthere, in those shadows...
16. B flat minor - the ride to heck
17. A flat major - I love thee
18. F minor - reproaches
19. E-flat major - wings, wings to fly to you, my beloved
20. C minor - funeral
21. B flat major - lonely return to the place of where we once spoke our love
22. G minor - revolt
23. F major - Najades playing
24. D minor - blood, lust, death
곡은 ABA+Coda로 총 88마디로 구성되어 있다. A - D flat major / 27 bars, B - C# minor / 47 bars, A - D flat major / 8 bars, Coda / 6 bars. C#과 Db 은 Enharmonic 이명 동음 조성을 가지고 있다. A Section의 밝고 상큼한 분위기를 B Section의 음울한 분위기로 바꾸는 힘은 역시 # 과 b의 조성 차이의 힘으로 보인다.
Section B, C# minor
손 끝으로 화음을 느끼는 재미가 '솔솔'하다.사람은 일정하게 반복되는 소리에서 안정감을 찾고 변하고 움직이는 사물과 소리에서 그 안정감이 깨지기 시작하니 본능적으로 훨씬 더 빨리 캐치해 내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 귀는 반주소리보다 선율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쇼팽은 반복되는 음으로 안정감을 깨뜨렸고 전체 분위기를 이끌도록 유도한 독특한 곡이라 할 수 있다. 화음은 복잡하지만 속도는 빠르지 않으니 집중해서 따라가 본다. 솔#음의 일정한 간격이 빗방울을 표현한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지만 빗방울보다는 휘몰아치는 폭우 속에서 집안 어디론가 새어 들어오는 불길한 바람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분위기가 반전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솔#이 큰 줄기처럼 전체를 관통하고 있고 이렇게 작품에서 전체를 꿰뚫고 있는 선율이 있다면 그 작품에 대한 인상과 기억은 상당히 오래 지속된다. 동일한 음을 계속 누르다 보면 약기운에 취한 듯 몽롱한 기분마저 느껴지는데 그 점이 바로 혹시 쇼팽의 불안한 마음 상태가 아닐까라는 해석도 해본다. Section A로 돌아오니 비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듯하다. 그렇게 영화의 해피엔딩처럼 상드는 살아 돌아왔다. 연주를 서둘러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