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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Mar 29. 2019

뉴질랜드 시골살이, 무엇을 포기했나요?

결코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남편이 최근 마을의 취미 농구팀에 가입해 일주일에 한 번씩 훈련이나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근방 여러 마을의 남녀 성인팀부터 고등학생팀까지 토너먼트 형식으로 경기를 하는데 우리 마을이 나름 개중 큰 마을인지라 커다란 스포츠 콤플렉스를 갖추고 있어(마을의 자랑. 크으.) 저녁마다 경기를 하러, 또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활기가 돈다. 우리 집은 스포츠 콤플렉스와 두 블록 거리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남편 경기가 있는 날엔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설렁설렁 구경을 가곤 한다. 양질의 문화체험에 목마른 시골살이에서 나름 놓칠 수 없는 문화활동인 셈이랄까. 


 조금만 나가면 온 사방이 소나 양으로 가득한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산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언젠가부터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무조건 아는 사람들을 몇 명씩은 꼭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네 슈퍼에만 가도 주인이며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우리 아이들의 친구 부모들이고 내가 취미로 나가는 줌바 클래스에도, 남편이 가입한 농구팀에도 당연히 이런저런 경로로 안면 있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렇게 이웃들과의 거리가 촘촘한 생활환경에서 가장 신나는 건 역시나 아이들, 동네 놀이터를 가건 수영장을 가건 하다못해 아빠 따라 농구 경기 구경을 가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마치 우리 어린 시절 우르르 몰려다니던 골목 놀이 풍경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두 명 이상의 형제자매를 이루고 3,4남매는 예사, 심지어 5형제까지 있을 정도니 모여 어울리게 되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폭넓다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다들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사촌인 경우는 또 왜 이리 많은지, 서로의 사정이 빤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저들끼리 일종의 돌봄 공동체를 이루는 듯 보인다. 성별에 상관없이 큰 아이들은 의젓하게 동생들을 책임지고 그 안정감 안에서 어린아이들은 맘껏 자신을 모험에 내맡기며 자신감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오늘은 한 주 동안 열심히 기다려온 아빠의 경기가 있던 날, 왠지 첫 승리가 올 것 같다는 아빠의 호언장담에 우리도 설레는 맘으로 따라나섰다. 아빠의 예감은 적중했다. 게다가 마지막 골까지 직접 성공시키며 잔뜩 흥분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명경기를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8살인 첫째 아들과 같은 반에 다니는 여자(사람) 친구를 경기장에서 우연히 만났기 때문. 같이 나가 놀지 않겠냐는 친구의 제안에 아이들은 경기 중간 즈음 일찍이 퇴장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 친구 어찌나 재밌고 우리 둘째 아이를 잘 데리고 놀아주는지 멀리 앉아서 보고만 있어도 참 기특한 풍경이었다. 아이들은 장난감이나 놀이시설 하나 없는 빈 운동장에서도 그저 잔디밭을 구르고 울타리를 철봉 삼아 매달리며 지루할 새가 없었다. 계단에서 신나게 까불며 뛰어내리기를 하다가도 어린 우리 집 둘째가 겁이나 주저할 땐, 용기 낼 수 있게 응원해주고 행여나 다치진 않을까 아래에서 기다렸다가 꼬옥 안아주었다. 함께 달리기를 하다 누구라도 넘어지면 너나 할 것 없이 멈춰서 괜찮냐고 서로 물어주는 그 모습에서 나는 절대 잃어선 안 될 인간 본연의 따뜻함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포기한 선택이었지 않냐고 묻는 지금의 삶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결코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되찾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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