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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Mar 30. 2019

내가 알던 세상엔 이런 장면은 없었는데

허름한 시골펍에서 형편없는 라이브 공연을 보다가 문득, 편지를 썼다.

차를 타고 달리다 우연히 동네 작은 펍 앞에 놓인 간판을 보게 되었다. 


BAND

LIVE

TONIGHT

9:30


 가끔 그 펍에서 라이브 밴드 공연이 있단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혈혈단신 이민 와 있는 처지에 주변에 아이들 맡길 곳 하나 없으니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좀 달랐다. 나의 베스트 프렌드 하나가 방문자로 와있는지라 친구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신랑과 동행해 가보든 신랑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친구와 동행해 가보든 어떻게든 ‘나’는 ‘갈’수 있는 상황인 것. (오예!)


 신랑에게 살짝 운을 띄우니 그동안 뉴질랜드 사는 2년 동안 우리 둘이 함께 밤 데이트를 나가 본 적 한 번도 없으니 이번 기회에 나와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 좋아. 친구에게도 살짝 귀띔하니 흔쾌히 잠든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맡아주겠다고. (두 번째 오예!)


 그렇게 방학맞이, 취침 시각이 자꾸만 더 늦어지는 중인 아이들을 현기증 나는 맘으로 잠들길 기다렸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겨우 신랑과 손을 잡고 집을 나설 수 있었는데 코딱지만 한 동네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펍이니 설렁설렁 야밤 산책 겸 걷는다. 


“이 동네에서 깜깜할 때 걸어서 밖에 나온 건 또 첨이다. 그지?”

“그러게. 또 새롭네.”


 설레는 맘을 안고 들어선 촌스런 펍, 시골 동네 들어와 산 지 어느덧 1년이니 대강 어떤 분위기일지 예상은 했으나 피부로 직접 맞이한 첫인상은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생각보다 더 허름한 내부, 더 나이 든 밴드 멤버들과 역시나 더 나이 든 손님들, 그리고 그 모두의 더 신경 쓰지 않은 옷차림들…… 게다가 갑자기 등장한 젊은 동아시안 커플에 모든 손님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한순간 쏠린다. 외국생활 연차가 늘수록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어김없는 그 뻘쭘함이란…… 


 자, 우선 펍에 왔으니 그동안 소원이었던 생맥주를 한 잔 해야지. 바로 걸어가 신랑은 뉴질랜드산 인디언 페일 에일을 나는 흑맥주를 한 잔씩 주문해 받아 든다. 공연 수준이야 어떻거나 말거나 우린 어쨌든 음악을 ‘즐기러’ 왔으니 밴드 가까운 자리에 착석. 맥주를 몇 모금 들이키며 신랑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피시식 웃음이 난다. 


“우와, 이런 기분 또 오랜만이다.”

“응. 그렇지?”

“우리 진짜 진짜 진짜 어어어어엄청 시골에 여행 온 것 같아.”

“응. 우리 10년 전에 라오스 오지 배낭여행할 때 만약 펍에 들어가 봤다면 거기가 꼭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아.”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90년대 웨스턴 영화.”

“아냐, 난 그냥 요즘 나오는 인디 블랙 코미디 영화.”

“크흐흐. 아무튼 또 새롭네.”


 맥주를 반잔쯤 들이켜니 긴장됐던 몸도 마음도 살짝 녹아들며 그제야 멜랑꼴리 하게만 느껴지던 주변 풍경이 편안하게 마주 다가온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저마다 음악과 오늘을 즐기는 총천연색의 사람들. 나이, 인종, 외모, 차림새 그렇게 제각각일 수가 없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까 싶은 귀여운 아가씨가 엄마 나이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테이블에 다가가 입 맞추며 인사를 하곤 다시 친구들에게로 쪼르르 돌아가 수다를 떤다. 입맞춤의 상대는 정말 엄마였을까? 엄마도 딸도 각자 친구들과 일행이 되어 따로 놀러 온 걸까? 내가 평소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러 왔다 갔다 할 때 보았던 동네의 다른 엄마도 보인다. 나처럼 애들 맡기고 친구들과 놀러 왔나 보다. 한편 밴드 코앞 메인 스테이지 아래에는 서서히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춤판이 벌어지는데 그중 가장 먼저 나서 끝까지 제일 열심히 춤을 추는 사람은 지적장애인이다. 춤을 실컷 추다 말고 할아버지로 보이는 백발의 노신사와 어깨동무를 하고 엄지를 치켜든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두 사람의 상기된 얼굴을  떠올리는 지금 나는 왜 갑자기 울컥하는 걸까.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내가 그동안 보아오던 세상에는 이런 장면이 분명히 없었다. 대체 그 어떤 밴드 공연에 한껏 들뜬 얼굴로 설렌 걸음을 끌고 나온 꽃 같은 청춘들과 그보다 더 설레었을 맘으로 아이를 맡기고 탈출에 성공한 엄마들과 그리고 또 그 엄마의 엄마 아빠들과 그리고 그 아빠들의 장애를 가진 손자까지 한데 어울려 음악에 몸을 맡기고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춤을 출 수 있을까? 그동안 내가 만나던 좁디좁은 세상은 이렇게 또 한 번 와장창 무너지고 만다. 가장 야하고 비싸 보이는 스커트와 가방을 걸치고 어울리지도 않는 화장품 따위를 뒤집어쓴 뒤 ‘난 춤이나 실컷 출거야.’라고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지껄이며 음악에만 몸을 맡기는 척, 열심히 골반을 튕겨 보이던 20대 시절, 홍대 클럽이 왜 생각났을까? 그 사방에서 쏟아지던 계산적인 시선이 영 불편해서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나는 나중에 노인들을 위한 커피숍을 차리고 싶어. 우리 할아버지 커피 좋아하시는데 카페는 죄다 젊은 사람들만 가니까 할아버지가 갈 곳이 없으신 것 같더라고. 그게 나는 너무 안타까웠어.”


라고 조잘거리던 스물몇 살 어느 즈음에 있던 내 귀여운 친구 J도 문득 떠오르고, 며칠 전 뉴질랜드에 아기 쌍둥이를 품에 안고도 씩씩하게 여행 온 모습에, 갑작스레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진 친구 S와의 대화도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랑 애들을 하나씩 아기띠에 매고 와이토모 동굴에 반딧불이를 보는데 말이야. 칠흑 같은 그곳에 들어가 작은 배안에 앉아있던 그 순간, 고요한 정적 속에서 마오리족 가이드가 갑자기 Ama~~ zing Gra~~ ce~ 하며 묵직하고 통 넓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거야. 그 순간 소름이 쫙 돋았지.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 가이드의 재능은 그동안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그런 곳에 쓰이진 못했지만 이렇게 어디서든 누군가에게라도 감동을 주는데 쓰이고 있구나. 그것도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겠다. 이런 생각.”


.

.

.


끝내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 곳에서 나는 이렇게 매일매일 건강해지고 있어. 그동안 고여있다 못해 썩어가던 내 마음도 가끔 이렇게 새로운 충격요법으로 생기를 잃은 피가 싹 빠져나가곤 해. 그리곤 신선하고 맑은 빛깔로 다시 채워지지. 나는 문득 너희들을 생각하고 또 문득 나를 생각해. 오늘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 지금 이 순간, 밴드의 노래가 무르익는다. 내가 좋아하는 밥 말리의 곡들로 선곡이 바뀌었어. 오예! 함께 소리 질러 No woman no cry를 외치고 Everythings gonna be alright을 흥얼거리는 중야. 물론 이미 몸은 무대 코앞에 바짝 붙어 서서 실컷 팔다리를 마구마구 흔들고 있지. 지금 여기는 내 세상이야.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 동시에 그들의 세상이야. 우리는 모두 함께 ‘진짜’ 춤을 추는 중야. 몇몇 사람들이 그런 내게 다가와 진심으로 나를 꼭 안아주며 축복해줬어. 네가 오늘을 정말 즐겼기를 바란다고. 즐겁고 또 즐겁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정확히 알아듣진 못했지만 내게서 빛이 난다고도 했던 것 같아. 그렇게 나와 남편을 몇 번이고 꼭 안아주고 볼에 입 맞추어 주었어.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어. 보고 싶은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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