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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Apr 03. 2019

용기 내서 말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널 몰랐을 거야.

뉴질랜드에서 '함께' 살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권리.

사람이 어울려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이었고 부모님은 맞벌이셨다. 그나마 친척들은 많았지만 가까이 모여 살지 못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나는 자연스레 일찍부터 숙제와 밥 챙겨 먹기 등의 평범한 일과를 많은 부분 스스로 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엄마가 내게 일찍부터 길러주고 싶었던 독립심 훈련이기도 했다. 형제가 많은 엄마완 달리 평생을 기댈 곳 없이 살아갈 내가 걱정이셨다고.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으로 자라난 내게 때로 그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주변이들의 신뢰는 자신감과 안정감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 내 안의 불안과 고민을 꺼내놓을 기회는 점점 사라져 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던 걸까? 그것은 넓은 방 한편 텅 비어있는 붙박이장 같은, 숨겨진 외로움이었다. 




얼마 전 남편이 내게는 아무런 언질도 없이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나는 한국에서 온 이민자 누구누구야. 나는 지금 사람을 찾고 있어. 우리 아내가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데 혹시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그녀와 대화하며 영어를 가르쳐줄 사람 있니? 우리 아내는 몇 살이고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 그래서 비슷한 관심사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소정의 금액은 지불할 생각이야. 생각 있음 메시지 줘. 

나는 듣자마자 얼굴이 화끈거려 신랑에게 쏘아붙였다. 


“내가 언제 내 허락도 없이 그런 거 페이스북에 올려 달라 그랬어? 지나가는 말로 한 이야길 나한테 상의도 없이 맘대로 올리면 어떡해. 적어도 하기 전에 말은 해줄 수 있잖아. 오빠가 그런 거 올리면 아는 사람들도 다 볼 거고 그럼 내가 영어공부하려는 거, 대화 상대 찾는 거 주변 사람들도 다 알게 되는 거 아니야~ 그게 뭐냐고. 난 싫다고~”


그것은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자기 방어였다. 신랑은 그런 내 반응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당최 뭐가 문제인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새해를 맞아 서로의 소망을 나눌 때, 분명 내가 내 입으로 튜터를 구해서 영어 공부를 할 테니 마땅한 사람 알면 추천해달라고 말해둔 터였다. 그의 입장에선 내 말을 잊지 않고 신경 써준 거고 그러니 외려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선 이 급작스런 전개가 너무 불편했다. 준비되지 않은 채 갑자기 내 개인적인 속내가 확 드러난 그 상황이 부끄러웠다. 왜? 그래 왜? 지금 쓰면서도 대체 그게 왜?라고 다시 한번 묻고 싶은데 웃긴 건, 그 순간에도 이미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단 것이다. 쪽팔린 감정이 분명 존재하는데 합리적으로 납득할만한 이유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그게 나의 못난 구석 중 하나인 걸 인정할 수밖에.  


지금이라도 그 글 지울까라고 묻는 신랑에게 그게 더 사람 우스워지는 거 아니냐며 한 번 더 비굴하게 쏘아붙이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감정이 그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데,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글엔 부지부식 간 댓글이 줄줄이 사탕이었다. 


- 안녕하세요. 이렇게 쓰는 거 맞지? 하하. 나는 한국말을 배우는 중이야. K-pop에 관심이 많거든.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연락 줘.
- 내가 도와줄게! 사례비는 김치로 대신 받을 수 없니? 나 제대로 된 김치가 너무 그리워서 말이야. 
- 나도 너희 와이프랑 비슷한 나이에 아이가 둘이야. 혹시 너희 아내 운전할 수 있음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나랑 이야기 나누고 가도 괜찮을 것 같아. 사례비는 안 받을게. 
- 이 근처에서 매주 여성 이민자 모임이 있어. 거기 나가보는 건 어때?
- 뉴질랜드 정부에서 운영하는 영어교육 서비스도 있는데 그건 알고 있니?
- 나는 영어가 모국어인 남아프리카 출신 이민자고 딸 셋을 키우고 있어. 뉴질랜드에 온 지는 얼마 안 됐어. 영어가 문제라면 내가 사례비 안 받고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연락 줄래?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오고 누군가는 내가 도움받을 수 있을만한 사모임이나 공기관 등의 정보를 상세하게 쫙 정리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응원한다, 멋지다, 잘하고 있다’는 격려의 메시지가 한 됫박 달렸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누군가는 이것이 바로 커뮤니티의 힘 아니겠냐며 감동적이라 말했다.


나는 며칠 전 경험했던 다른 일이 하나 더 떠올랐다. 내가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플레이센터(뉴질랜드에만 있는 일종의 지역별 공동육아 시스템)에서 계획 미팅(Planning meeting)을 하던 때였다. 아이의 현재 관심사와 주요 활동들, 겪고 있는 어려운 점 등을 다 같이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중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뻔한 이야기는 대충 끝내고 평소 생각해왔던 고민 하나를 이때다 싶어 꺼내 놓았다. 


“근데 나 한 가지 어려운 점(difficulty)이 있어. 요즘.” 


분명 편하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말하는 목소리가 떨려왔다.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 인지 사람들의 주목 때문인 지, 이야기의 내용 때문인 지 아니면 BYO(Bring your own drink; 각자 마실 음료를 챙겨 오는 것)로 들고 간 맥주 때문인지 모를 갑작스러운 울렁임이었다. 


“사실 요즘 플레이센터에서 우리 딸의 사회성이 좀 부족한 것 같아서 걱정이야. 다른 친구들이나 부모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나랑만 놀려고 해. 그래서 내가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물어봤거든. 너는 같이 놀고 싶은 친구들 없냐고. 그랬더니 없다고 하더라고. 이유를 물으니 어쩔 땐 자기 귀가 친구들의 말을 잘 듣지만 어떨 땐 듣지 않는대. 혹시 전에는 여기에 외국인이 한 번도 없었니? 우리 딸이 처음이야?” 


나의 고백에 모두 조금은 놀란 듯했다. 평소 우리 딸이 워낙 밝은 표정으로 잘 놀아서 그런 고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한 엄마는 자신이 우리 아이와 소통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야기해주었고 또 다른 한 엄마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발음이 부정확해 영어를 더욱 알아듣기 힘들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의견과 해결방안 등이 오갔고 회의를 진행하던 플레이센터 협회 직원은 안건을 마무리하기 전 내게 고맙다고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 이렇게 공개적으로 너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네가 용기 내서 말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런 어려움을 몰랐을 거야. 네가 말했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은 벙찐 기분이었다. 내가 나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는데 왜 자기들이 고맙다는 거지? 말하기 쉽지 않았을 내 맘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그 자체로 맘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그다음 날 아이와 플레이센터를 찾았을 때는 정말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가 갑자기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주변 엄마들이 내 S.O.S에 성실하게 반응해준 덕이었다. 아이의 작은 장난도 지나치지 않고 신경 써 받아주며 아이에게 살갑게 대해주었다. 평소에도 나를 잘 챙겨주던 우리 센터의 현 대표 S가 잊지 않고 내게 말했다. 


“오늘 너희 딸, 정말 다른 사람 같지 않니? 엄청 자신감 있게 사람들이랑 어울리잖아. 봤어?”

“응 정말 그래. 신기해. 다 너희들이 잘 챙겨준 덕분이야. 고마워.”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어쩌면 네가 어제 그렇게 사람들한테 털어놓고 나니 너의 맘이 편해져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어.”


그렇게 S는 내게 마음의 부담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함께 나눠질 수 있단 사실을 돌아보게 했다. 그녀의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때로는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된 경험이었다. 


S는 도움이 필요할 때 쿨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소목장 일이 바빠 아이들을 픽업하기 힘들 때 거리낌 없이 내게 도와줄 수 있냐고 메시지를 보내온다. 사실 언어 때문에 대화가 어려운 나와 그녀 사이를 친하다고 느끼기엔 그녀 역시 무리가 있을 텐데도 먼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어온 것이 외려 내겐 따뜻했다. 우리 가족을 신뢰하고 있다는 신호라 기분 좋기도 하고, 서로 필요할 때 돕고 사는 사이라는 그 느낌이 나를 한 뼘 더 커뮤니티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여기 엄마들에겐 그저 평범하고 또 평범한 그 일상이 내게도 있다는 게 이렇게 특별하다니. 이민생활이란 게 가끔은 이렇게 참 우습다. 




뉴질랜드에서 1년 반째 공동육아를 하며 듣는 말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두 문장이 있다.


Many hands, light work. (손이 많을수록 일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No question is a silly question. (질문이 없는 것이야 말로 우스운 질문이다.) 


어려울 때 어렵다고 말하는 것,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두려움 없이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평범한 인간다움일지도 모르겠다. 묻고 물어주고, 말하고 들어주고, 손 내밀고 잡아주는 것. 그 모든 것이 어쩌면 인간이기에 반드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는 아닐까. 이제라도 그 권리 앞에서 조금 더 당당해지면 어떨까 싶다. 더 이상 내 삶이 Silly 하지 않게. Light 하게.  



함께 바라볼 때 세상은 더욱 따뜻한 곳. photo by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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