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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May 23. 2019

나의 뉴질랜드 동네는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

매일 마주하는 시골 살이의 정겨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있는데 남편이 급하게 흔들어 깨운다.


"자기야, 이것 좀 들어봐 봐. 내가 정확히 다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 같이 좀 들어봐 줘 봐."


왠 자다 깨서 봉창 두드리는 소리? 눈도 못 뜬 채, 귀에 들이밀어진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릴 듣자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그리고 영어다. 아침부터 웬 영어 전화? 이 시간에 영어로 전화할 사람이 누가 있더라? 어? 이 목소리는? 알 것 같다. 그녀다.


3년 가까이 뉴질랜드에 살다 보니 같은 영어라도 각 사람마다 고유의 억양, 발음, 어미처리 등, 특징이 있다는 걸 알겠다. 처음엔 영어는 그냥 다 같은 영어,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로다. 안 들리는 건 어차피 매한가지라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몇몇 사람들의 습관을 흉내 낼 수 있을 정도로 영어가 아닌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느낌이 들린다. 여전히 그 내용은 백 프로 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그래도 말이 말처럼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화의 주인공은 젬마라는 여자로, 요즘 다섯 살 둘째 딸내미가 시작한 동네 럭비 리그팀의 코치이자 같은 팀 소속 또래 아이의 엄마이다. 이번에 럭비팀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된 사람인데 어딜 가도 아는 사람을 꼭 만나게 되는, 활동 반경이 빤한 이 시골 마을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한 초면이었다. 지역 럭비 리그가 시작된 게 이제 막 3주쯤 되었나? 그 말인즉슨 그녀와 얼굴을 마주친 것도 딱 세 번, 것도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도 겨우 두 번 밖에 안 되었단 말이다. 그런 그녀가 이 이른 아침부터 생뚱맞게 우리에게 전화를 할 일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어리둥절해 수화기에 귀를 대고 있으니 그녀 특유의 약간 장난기 많은 십 대 소년 같은 목소리로 의외의 말을 전한다.


"안녕, 나 젬마야. 럭비팀 코치. 지난주에 네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단 말 했었잖아. 그래서 내가 일하는 사무실 동료들한테 좀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요 근처 도시에 있는 회사에서 네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자리가 있단 말을 들었어. 나한테 이메일 줄래? 회사 정보 보내줄게. 한 번 연락해봐."


남편과 나는 동시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저 첫인사를 나누며 지나가는 말로, 요즘 남편이 새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던 걸, 기억했다가 본인 지인들에게 물어봐준 것이다. 


"와. 대박. 우리 그 날 첫 만남이었잖아? 친한 사이도 아니잖아? 그걸 기억한 게 더 신기하다. 와. 이 동네 대체 뭐야? 이 동네 사람들 대체 뭐야? 이게 정말 시골인심이란 거야? 사람들이 이렇게 착해도 되는 거야?"



우리 동네 운동장. 아이들 럭비 경기 중에. @Taranaki, NZ


어제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아침에 유치원에 등원하며 오후에는 꼭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와 뒷자리 간이 좌석에 자기를 태워달라던 딸내미의 요청에, 애들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아이의 하원을 책임지는 길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를 뒤에 앉히고 팔을 아빠 허리에 감으라고 외치며 자전거를 출발시키는데 '아야-'하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아이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울음을 토해냈다. 한쪽 발이 자전거 뒷바퀴의 체인에 끼어 버린 것이었다. 신발을 잘 갖춰신었는데도 어찌나 자전거 바퀴의 힘이 셌는지, 그 연약한 발 피부가 많이 벗겨지고 멍이 들었다. 다행히 피가 줄줄 흐를 만큼의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시퍼렇게 터진 핏줄이 눈에 보이는 게 여간 아파 보였다. 아이의 울음에 애들 아빠는 정신이 혼미해졌고 어쩔 줄을 몰라 나에게 전화를 하다가 때마침 주변을 지나가던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깜짝 놀라 아이를 안고 진정시켰다. 아이들 아빠는 그 틈을 타 아이의 발에 약을 발라주고 커다란 밴드를 붙여주었다. 다행히 뼈에 문제가 있다거나 살이 찢어졌다거나 하진 않은 것 같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저녁 즈음 띵똥 하고 메신저가 울렸다.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엄마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너희 딸 괜찮아? 나 아까 유치원에서 하원 할 때 바빠서 도와주질 못하고 그냥 지나쳐 온 게 맘에 걸려서. 너희 남편 봤거든. 미안해. 너희 남편에게도 내가 미안하다고 좀 전해줘." 


그래. 왠지 내가 누군가는 한 명쯤 이럴 것 같더라. 내가 사는 이 시골 동네는 이런 곳이니까. 안 그래도 남편에게 주변에 다른 학부모들이 놀라지 않았냐고 물어봤던 터였다. 남편은 본인도 너무 정신없어서 사람들이 어땠는지는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냥 애가 집에 가기 싫어서 우는 걸로 보지 않았겠냐고. '그래? 그런가?'하고 넘겼는데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우릴 아는 누군가는 그 장면을 보았을 것 같았고 신경을 썼을 것 같았다. 


"헤이~ 고마워. 우리 딸 괜찮아. 그냥 좀 크게 상처 나고 긁히긴 했는데 지금은 잘 놀아. 신경 써줘서 고마워. 나 지금 뭔가 따뜻하네." 


하고 답장을 써서 그녀에게 전했다. 아이들이 괜찮은 틈을 타 나는 평소처럼 운동복을 꺼내 입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한 시간 정도 동네 구석구석을 걷는 길, 몇 대 되지 않는 지나가는 차들이 나를 볼 때마다 손을 살짝 들어올려 보이거나 눈 맞춰 웃음을 짓는다.  직접 마주치는 사람과 '하이'하며 인사하는 건 물론이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 부족의 인사말인 '키아 오라'를 외친다. 마주치는 사람들 중엔 아이 유치원 선생님도 있고 나는 미처 기억 못 하지만 언젠가 분명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있었지 않았을까?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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