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아빠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공항으로 간 이유

우리 인생에는 가끔 서프라이즈가 필요하다

by 로니부

세 달 동안 유럽을 배낭여행으로 다녀오신 장인장모님을 마중 나갔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다인실 도미토리와 노지캠핑을 마다하지 않으시며, 수백킬로미터의 폭우와 더위를 뚫고 순례길을 걸으러 떠나신 분들이다.


자주 여행을 즐기시지만 워낙 독립적이고 모험심이 강하셔서 자녀들에게 구체적인 일정을 알려주지 않으신다. 어느날 전화와서 "우리 이탈리아야~" "우리 쿠알라룸푸르야" 갑작스레 소식을 전하시고, 복귀 날짜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으신다. 당연히 누군가 바래다주거나 마중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다.


그런데 그날 아침, 출근하던 아내에게서 "한국에 오늘 오신다네~"라는 말을 얼핏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정말 갑작스럽게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일찍 데려와 준비를 시키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뒷자리에 아내 없이 아이와 둘만 장거리를 가는 것은 무척 위험한 도박이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운전 중인 내가 달래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건 낮잠 시간에 맞춰 출발해서 차 안에서 곯아떨어지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공항으로 가면서 불안해졌다. 터미널 1인지 2인지, 몇 시에 정확히 도착하는지, 어느 항공사를 이용하시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대충 들은 시간만 믿고 간 것이다. 장인장모님이 핸드폰도 켜보지 않으시고 짐만 찾아서 곧장 택시를 타고 가버리면 완전히 헛걸음이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잘 잠들어주었고, 왠지 대한항공을 타고 오실 것 같다는 직감으로 2터미널을 선택한 것이 맞았다.


출국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장인장모님이 나타나셨다. 그 순간 두 분이 보여주신 기쁨은 상상을 초월했다. 두 달 동안 입원도 하시면서 힘드실 때마다 손주 동영상을 보며 힘을 내셨다던 분들이다.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뽀뽀하고 얼싸안으며 난리가 아니었다.아내도 처음엔 힘들까 봐 가지 말라고 했었는데, 내심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큰 고생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모든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니 뿌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무릎에서 잠들었고, 나는 백미러로 조용히 웃고 계신 두 분을 바라보았다. 내게는 그저 몇 시간의 운전이었는데,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할 줄 몰랐다. 아내의 고마워하는 표정, 장인장모님의 깜짝 놀라시는 모습, 손주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는 얼굴들.


사실 나도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 아내가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여러 이유가 뒤섞여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받는 사람들이 주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때로는 계획 없는 충동이, 예상 없는 마중이 우리 일상에 특별한 의미를 더해준다.어쩌면 행복이란 거창한 계획이나 큰 이벤트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런 갑작스러운 충동과 작은 배려에서 피어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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