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빠에게 가르쳐 준 세 가지

육아휴직 아빠가 풀타임 육아를 하며 깨달은 것들

by 로니부


첫 번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였다.

속세의 여러 관계를 거치며 찌들고 치이고 이리저리 배신당하거나 상처받으며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오염되고 왜곡된 사랑에 익숙해져 있다.


대개 타인이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 나를 즐겁게 해주거나 나에게 메리트를 주는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사랑을 한다.


어떤 인간이 가진 매력, 재력, 성격, 권위, 소속감, 명예 등을 바라보고 특출난 점을 바라보고 그를 사랑한다.


조건부의 사랑, 계산하는 사랑에 길들여져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통해 비로소 어떠한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법을 배웠다.


이는 그 사람이 가진 장점에 대한 감탄이나 경외심이 아니라, 약하디 약한 연약한 존재에 대해 조건 없이 우러나오는 진심의 사랑이다.


그 연약함은 인류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며, 한때는 나 자신도 역시 그랬었음을 비춰줬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아이라는 이 무기력한 존재는 끊임없이 자율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는 스스로 내가 잘났네 하고 살지만, 결국 모두 서로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나는 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모님이나 심지어 아내에게조차 베풀지 못하였다.


우리는 보상받을 가능성을 맹렬히 계산하며 앞뒤를 재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아이를 향해서는 그런 계산을 망각한 채 무조건적으로 주기만 하는 사랑을 행하게 된다.


아이는 내가 경험한 최고의 자애롭고 이타적인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줬다.



두번째, 불쾌한 행동을 넘어 사랑하려는 시도


아이를 통해 깨달은 사랑은 불쾌한 행동 이면에 놓여 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경험이다.


아이의 짜증, 한밤중의 울음,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동, 소리를 꽥 지르는것은 그저 불쾌한 행동이 아니라, 그 이면에 아이가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알아내려는 노력을 요구한다.


만약 나는 평범한 성인들과의 관계에서라면 나에게 불쾌한 행동을 하는 이에게 화를 내거나 손절하거나 거리를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인내하고 이해해보려하며 자애심을 기른다.


말을 못하는 이 아이가 왜 이럴까?


아이가 겁을 먹었는지, 배가 고픈지, 소화가 안 되는지, 잠이 오는지 등을 알아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한다.


만약 이 노력을 성인 관계에 티끌만큼이라도 반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 될까.


타인의 심술궂음과 잔인함 뒤에 깔려 있는 두려움, 혼란, 피로를 감지해낼 수 있다면, 나는 인류를 사랑하는 성인 군자가 될 것이다.


아이는 나에게 성인군자가 행하는 관대함이라는 사랑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었다.


세 번째, 속박과 의무가 주는 자유

아이를 돌보고 돌봄에 묶이는 것은 나에 대한 구속으로 인한 굴욕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왜곡되고 만족을 모르는 본성에 끊임없이 응해야 하는 피곤한 의무에서 나를 해방시켜주는 자유가 되었다.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목표를 부여받았다는 위안과 특권을 알게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 그리고 내 욕심과 욕망들이 얼마나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들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아기의 순전한 무능력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못하는 것들을 하나씩 가르쳐주며 이 세상에 기능하는 존재로 만든다는 고귀한 경험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아들이 하나씩 손가락을 쥐는 법, 밥을 먹는 법, 세상의 모든 것을 배워야 하는 존재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아들이 유아기라는 터널을 지나 독립된 의식체로 깨어날 때,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24시간 7일간 붙어있으며 함께한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꼭 안겼던 따뜻한 가슴팍과 아빠의 다정한 목소리 같은 감각 기억은 세상이 기본적으로 편안하고 신뢰할 만한 곳이라는 느낌으로 남기를 바란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며 아이의 무의식 속에 조건없이 존재할 권리와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으며 삶의 희망을 이어갈 이유가 있다는 근원적인 느낌을 심어준 것에 의의가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내가 주는 사랑을 통해 아이가 세상을 향한 믿음을 불멸의 유산으로 지니게 하는 특별한 축복이다.

마치며


아들은 사랑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가르쳐주었다.


계산하지 않고, 조건을 달지 않고, 그저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방법을.


관대하게 해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마음을.


그리고 진정한 자유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기꺼이 얽매이는 것임을.


이 작은 존재 앞에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들이 자라서 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아빠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네가 나를 얼마나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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