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안 Oct 10. 2024

준비됐지? 가자. 페라리.

인생은 극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첫 실기 시험을 치른 시험 장소는

그 해 특별히 시험 장소가 바뀌어서

타 학교 운동장에서 치러졌다.

전년도까지는 내가 다니는 학교가 시험장이었으나

 해부터 격년제로 장소를 바꾼다고 했다.

젠장!


시험 전날,

시험장소로 시험에 출전할 학교 말 20마리를

운송차에 미리 실어 보냈다.

우린 안장, 말 탈 때 필요한 마장용구들과

말 사료와 건초. 심지어 먹이통과 바닥에 깔아줄

톱밥까지 챙겨서 대규모 군단이 이사를 가듯이

짐을 꾸렸다.


말똥 삽질은 시험장에서도 해야 할 일이었다.

전날 시험장 마사에 말을 집어넣고

전날부터 그곳에서 말 마사지를 해주고

먹이를 주며  말 관리를 했다.


시험자는 시험 짝꿍이 될 말을

한 달 전에 정해서 시험 연습을 한다.

그리고 시험 당일은 물론이고

시험을 보고 시험 후 일주일까지

사후 말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것 역시 학교룰이었다.


기능 좋고 실력 좋은 시험말들은 4학년 위주로

배정되고 아래 학년으로 내려갈수록

시험말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폭은 았다.

내가 한 달 전에 시험말로 정한 말은

성품이 차분하고 평소 나와 호흡이 잘 맞았던

만순이와 평소 나를 잘 따르던 페라리라는 말이었다.


연일 이어서 자격증 두 개 실기 시험이 이어졌으므로

나는 먼저 만순이랑 첫 번째 시험을 치르고

다음날 페라리와 두 번째 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다.




첫 번째 시험을 치르던 날,

유일하게 나와 함께 필기시험 패스를 했던

나보다 10살 많은 친구를 시험장에서 만났다.

친구야. 살아서 시험장에서 만나자. 하며

손을 흔들며 학교를 도망친 친구였다.


친구는 학교 말똥 삽질 지옥 시스템을 못 견디고 학교를 도망쳐 나와

사설 승마장에서 그 승마장 코치 수업을 들으며

그 승마장 말을 타고 연습을 했다.

시험당일 내 친구는 그 말을 데리고 시험장에 왔다.


시험장 학교 실내 마장에서는

시험 직전 말 워밍업시키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는 아. 내가 이 학교 소속  학생이구나. 를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시험 직전 말을 워밍업 하는 시간에

지도교수와 조교가 이제 곧 시험 치를 말들을

직접 한 번씩 타서 시험  시험코스를 그리는데 초집중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평소에 만학도로서

지적질이나 무관심한 수업을 들었다 해도

그날만큼은 나 역시 학교 소속 학생이었기에

어린 시험자 학생들 대하듯

교수가 내 시험말을 타 주었다.

평소에 무관심에 익숙해지면

이러한 것도 고마워진다.


교수가 연습 마장에서 내 시험말을 타주고 있을 때

내 친구도 사설 승마장 말을 끌고 연습마장으로 들어왔다.

친구는 사설 승마장에서 시험준비하겠다고 도망치긴 했으나 자퇴를 한건 아니어서 여전히

학교 학생이었다.

교수도 조교도 모두 연습 마장에

들어서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그날만큼은 사설 승마장 소속 시험자였다.

교수와 조교에겐 상관없는 시험 자였던 거다.

그녀는 홀로 연습 마장에서 워밍업을 했다.

바로 옆에선 교수가 학교 말을 탔고 그녀에게

조언이라곤 1도 하지 않았고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이 굉장히 기묘했고 이상했다.

 친구도 학교 소속인데 이건 뭐 완전 투명인간 취급이네!




그날 내 첫 번째 자격증 실기 시험에서

내 시험말 만순이는 우리가 그동안 연습해 왔던 대로

실수 없이 완벽하게 시험 코스를 그렸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날 시험 코스를 그리는 동안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아마도 내 시험말 만순이를 믿고 의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만순이는 내가 평소 좋아하는 말 친구였다.


말은 자기 등위에 앉은 사람의 미세한 감정상태를 금세 알아챈다.

내가 불안하거나 성급하거나

자신 없거나 주눅이 들면, 말은 금방 눈치챈다.

때로는 말도 사람을 의지한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낯선 자극들이 들어와

불안함을 느낄 때 등 위에 앉은 사람이 요동치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면 말도 금세 평안해진다.

아. 별일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사실 시험장은 말에게 온통 낯선 자극들 투성이다.

낯선 장소 널따란 운동장에

낮고 하얀 울타리를 쳐서 20*60미터 규격으로 만든 시험장 사각 아레나에서

말과 시험자만 들어가 외롭게 시험을 치른다.

이런 상황이니 말도 분위기에 쫀다.

 인간이 나를 타고 뭐 심각한 걸 하긴 하는 거 같은데 하면서

어쨌든 긴장을 하는 거다.




다음 날 두 번째 자격증 실기 시험을 볼 때

평소에 예민한 기질이 있는 페라리. 는

평소 우리가 연습한 대로만 했으면 좋았으련만

사각 아레나 시험장에 입장하는 순간

시험 치를 나를 위해서 과하게 잘하려고

욕심을 부렸다.


언니. 이거 시험 보는 거 맞지?

다 내가 알아서 할게.

언니 너는 고삐만 잡고 그냥 편안하게 앉아 있어.

페라리는 나를 위한답시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야. 페라리.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니 맘대로가 아니고!


페라리와 나는 이제 사각 시험장으로  입장했다.

시험 코스대로라면 우린,

정면 중앙에 앉아 있는 심사 위원들을 향해서

활달한 걸음으로 30미터를 통 통 통 뛰어들어가

시험장 딱 중간에서 멈춘 다음,

나는 양쪽 고삐를 왼손에 옮겨 잡고

접힌 오른팔을 사선 아래쪽으로 쭉 뻗어서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해야 했다.

ㅡ우리가 수십 번 연습한 대로!ㅡ


내가 우리 언니 꼭 합격시켜불꺼야. 하면서

페라리는 혼자 부릉부릉 과하게 발동을 걸고 있었다. 

내가 시험장 입구에서

긴장된 페라리 목덜미를 쓰다듬어 준 뒤

준비됐지? 가자. 페라리. 하면서

종아리로 슬쩍 신호를 줬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부릉부릉  발동이 걸린 페라리는 내가 신호를 주자

어? 지금 가라고?

좋아!

알아쒀어.

언니야. 고삐 딱 잡아라이. 하며

통 통 뛰면서 입장해야 하는 걸 까먹어버렸고,

페라리는 나를 태우고 심사위원을 향해

다그닥 다그닥(젠장!) 달려서 입장해 버렸다.

난 망한 것이다.


오뭬. 세상에나.

아니이.

우리가 수십 번 연습도 했고만.

미친놈도 아니고 거기서 달려서 입장해불다니!




잠시 방심한 사이에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자

나는 최대한 체중으로 앉아 버티며 고삐를 당겨

인사할 지점에서 정확히 멈추려고 애를 썼다.

워. 워. 페라리.

여기는 달리는 구간이 아니야. 바보야.

멈춰서 인사하는 구간이잖아!


페라리는

어? 달리는 거 아니야?.미안해.

하더니 다행히 멈췄다.

난 심사위원들 앞에서 오른팔을 아래로 뻗어

고개를 까딱 숙이며

페라리가 움직이기전에 얼릉 인사를 했다.

츙셩! 잘 봐 주십시요오.


내가 인사를 하는 중간에도 

페라리는 네 발을 버티고 인사를 끝날 때까지

딱. 버티고 서 있어야 했는데

여전히 부릉부릉했다.

언니야. 빨리 가자. 코스 그려야지.ㅡ

야. 아직 아니라고.

기다라고 쫌.


그날 페라리랑 나의 호흡은 엉망이었다.

내가 달리라고 하면 페라리는 멈추고

내가 멈추라고 하면 페라리는 계속 달리고 싶어 했다.

ㅡ아. 왜 멈추라고 해애? 그냥 달리자아.ㅡ


엉망진창 코스를 그리고 있는데

그 와중에 갑작스러운 돌풍까지 불어서

사각 시험장 쪽 바로 옆에 걸린 현수막들이

펄럭 펄럭였다.

망할!


페라리는 다그닥 다그닥 이쁘게 달리면서

코스를 그리다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두 앞발을 들어 올리더니

여차하면 사각 아레나 밖으로 내달릴뻔했다.

그랬더라면 우린 그 자리에서 그냥 실격이었다.


워. 워. 괜찮아. 페라리.

이건 그냥 바람이야. 바람소리라고.

진정해. 집중하라고. 집중해.


페라리를 겨우 달래고 얼러서

다시 집중을 시킨 다음에

진땀을 흘리면서 엉망진창이긴 했지만

어찌 어찌 코스를 완주했다.


나는 그날 느낄 수 있었다.

페라리는 집중을 못해서 엉망이었던 게 아니고

오늘 이 날이 자기 등위에 앉은 언니한테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알고 있었다.


자기가 오늘 잘해야 된다고

스스로 느꼈음이 분명했고

그래서  평소에 안 하던

부릉부릉 내가 다 할게. 짓을 한 거였다.

어쨌거나 나는 최선을 다해준 페라리가 고마웠다.


나는 수월하게 첫 번째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두 번째 자격증은 1차에 원하던 점수보다 못 미치긴 했으나

2차 재활 승마 수업을 시연하는 시험이 10월에 기다리고 있으므로

2차에 집중해 볼 참이었다.

학교에서 도망친 내 친구는

시험말이 시험 코스 중간에 달리다가

아레나를 벗어나버린 바람에 실격됐다.


전쟁 같던 8월이 지나가고

이제 진짜 중요한

세 번째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ㅇ감독에게 장애물 점핑 레슨을 받으면서,

우리 마장에서 연습하면서

수십 번 낙마를 했다.


장애물을 뛰어오르다가

또는 장애물을 넘고 바닥에 착지를 하다가

이렇게 저렇게 각각 다른 모양으로 날아가거나

튕겨져서 바닥에 그대로 쳐 박혔다.

그러나

낙마를 하자마자 5초도 지나지 않아

어깨. 엉덩이. 골반. 팔꿈치에 묻은

툭툭 모래를 털어내고

바로 다시 말위에 올라가 다시 말을 달려  장애물로 뛰어들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영화 속 주인공 도전 모습같다.


이건 뭐.

이젠 진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이전 10화 야 C! 내 뼈 걱정 마! 내 뼈 멀쩡해. E C!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