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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Oct 17. 2024

당신은 순진한 거요. 멍청한 거요?

말을 키운다는 것.

마장에는 아침.점심 저녁으로

먹고 마시고 싸는

고집세고 예민한 덩치 큰 말이 있고

그 말들이 먹고 마시고 싸는

세가지 기본적인 생리현상은

마장 일의 가장 기본이며 가장 고된

데일리 노동 루틴을 만들었다.


잠시도 생략할수 없어서 집요하고!

까 말까 선택의 여지가 없어 필수적이며!

죽으나 사나 맨날 맨날 해야하는!

노동 루틴 말이다.


살아있는 동물을 건사하며

이고 돌보고 누울 자리를 살펴주며

함께 산다는것은 그런거다.


덩치가 착한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집사라 하잖은가.

집사! 얼마나 귀여운 단어인가.

근데 말은 개나 고양이가 아니다.


말을 키운다는 것은

개나 고양이보다 수백배 큰 동물을 돌보는 것이어서

동물을 돌보는 노동 강도를 비교해보자면

이건 집사의 수준이 아니라

말 노예라 칭해야 합당했다.


잘 하고 있던 학원을 제 손으로 때리친

순진하고 착했던 학원장은

말과 살림을 차린 그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충실한 말노예가 되었다.

셀프로다가!



남편은 새벽부터 저녁녘까지

말들 밥과 물을 챙기고

누울 자리를 살펴 똥을 치웠고

말들에게 신선한 풀을 먹이고 싶어서 예초기로 풀을 베어다 먹이며

잠시도 쉴 틈없이 이어지는 마장 일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교육을 하고 체험 승마를 하며

회원들을 이끌고 근처 초원으로 외승을 나가 말을 탔.


남편은 말과 함께 산다는것이

이 정도 강도의 노동을 동반할 것임을 짐작조차 못했던것 같았다.

하긴, 예전엔 이런 일은 듣도 보도 경험하지도 못했었으니

그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말이랑 살란다.

마눌에게 호기롭게 선언했던 그 말은

실은,

나 이제부턴 말 노예로 살란다.와 같은 의미인걸

그때 그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남편은 진심으로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말을 힘으로 제압하며 본인 의지와 고집으로 말을 교육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 아이를 대하듯이 하나 하나 사랑으로 다가갔고 말의 행동과 심리를 더 세심하게 이해하고자 늘 노력했다.


내가 정신없이 학교에서 좌충우돌 살아남고자 몸부림 칠 때,

남편은 말을 씻기고 먹이고 돌보면서 성실하게 마장 살림을 꾸려나갔다.

말똥 삽질 지옥 학교 생활하면서 점 점 예민해지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말을 키우고 살면서 아주 소소한 순간에도

기어이 행복을 찾아 내는 사람이었다.




말을 키우려면 우린

금고에 금괴 몇 짝은 쌓아두고 있었어야 했다.

마장 일은 애초에 남편의 기대처럼

장미빛으로 가득한 일이 아니라

점점 은행빚으로 충만해지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우리가 중동 만수르씨처럼

돈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여서

축구장 크기의 집 정원에다

사자나 호랑이 몇 마리쯤 강아지처럼

거뜬히 풀어 키울수 있는 여건이라면 모를까.

우린 보란듯이 마장을 지을만한

가늠할 수없는 크기의 땅을 가진것도 아니었고

얼마든지 말들을 배불리 먹이고 관리해줄 충분한 돈도, 말을 전담으로 관리해 줄 관리사도 없었다.


말들을 돌보며 함께 산다는것은

마장 일이 망하든 흥하든,

끝없는 노동력과 끝없이 들어가는 유지비를 지출해야 하는 것이었.

망해도 유지비가 계속 들어가고

( 살아있는 말을 굶길수는 없는것이니)

흥해도 유지비는 계속 들어갔다.


돈을 버는것이

인생 2막 삶의 방향 전부는 아니었으나

막상 제대로 판을 벌려보니

돈은 1도 안되는 일 시작한거나 다름 없었다.


돈은 안되고 육체적인 노동은 늘 있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말과 함께 지내는 삶속에 숨어있는

작은 행복들을 사랑했고

그것이 고된 마장 일에 지친 그를 살게 했다.




남편과 내가 승마 전공을 위해서

대학에 다시 막 입학했을때,

전공 교수(남편과 나이가 같은)가 우리 면전에서 거만하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교수와 대화도중에 남편이 말했다.

는 말이 좋고 말을 키워보고 싶어서 마장을 차렸습니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교수가 즉각 그렇게 말했다.

마장을 차렸다고요?

당신 순진한 거요.멍청한 거요?


그 교수는 워낙 말을 거침없이 한다는 평이 많아서

학생들도 동료교수들도 기피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만학도 신입생 제자인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입학하자마자 그런 말을 들으니 상당히 불쾌했다.


명색이 전공 교수라는 사람이

중년에 뭐라도 배우겠다고 찾아온

나이 많은 만학도 제자들한테

품위없이 말하는 꼬라지 좀 보라지!

생각하며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남편과 나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학교 생활은 해야하니까 말이다.


 후 수년간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어보니

당신은 순진한거요. 멍청한거요.

눈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 깔아보면서

무시하듯 말하던 전공 교수의 말 뜻을 조금 알것 같았다.

그 말은 무례하고 거친 말이었지만 팩트였다.


유둘 유둘하고 말랑거렸던 남편과 내 성격과 삶

말을 키우면서 ( 마장을 운영하면서)

남편 기대처럼 점점 행복해지는것이 아니라 ,

말들과 기를 쓰고 살아남고자 애쓰느라

거칠고 예민해졌다.

교수 말마나따나

어쩌면 우린 순진하거나 멍청한 일을 벌이고 있는게 분명했다.




입안에 질겅질겅 씹고 있던 껌을 뱉듯이

교수가 툭! 내 뱉은

당신 순진한거요.멍청한거요? 그 말은

시간이 더 지날수록

마장 실무 경험치가 쌓여갈수록

거친 일이 손에 익혀갈수록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새록 새록 내 머리 뇌 세포마다 느낌표를 남기며 빼곡하게 박혔다.


행복해지기위해서 선택한 인생 2막의 삶인데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그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생각보다 힘든 마장 일을 감당하

그 와중에도 행복을 찾아내는 남편은 순진했고,

남편 마장 운영에 도움이 되어 보겠다고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위해

말 위에서 수십번 낙마를 하며

한의원과 정형외과 신세를 지면서도

죽기 살기로 될 때까지 집중해 있는

오십줄 나이든 만학도인 나는

진짜 아주 멍청했다.


학교와 마장에서 지내는 하루가 힘이 들때마다

기분 나빴던 그 교수 말은 지친 나를 따라 다녔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우린 순진하거나 멍청한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러나

설사 우리가 순진하거나 멍청한 일을 하고 있다해도 남편과 나는

우리가 선택한 이 삶에 대해

우리 힘이 닿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 보기로 다.


남들이 모두 다 우리의 삶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부정적으로 말할 때

남편은 일말의 흔들림없이 자기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았고

나는 내 체력과 정신적인 한계를 느끼면서도

내가 어찌 해내는지 지켜봐라.오기를 부리며 말을 탔다.


ㅇㅇ 지도자 자격증 실기 시험이 있는 11월이

이제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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