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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Oct 10. 2024

 야 C!  내 뼈 걱정 마! 내 뼈 멀쩡해. E C!

지. 인. 지. 조 스텝 2!

자격증 시험 일정으로 진입하자마자

나는 폭풍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필기는 걱정 1도 없이 시험을 치렀다.

진짜 문제는 실기였다.

학교에서 친절하게 모든 준비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앞서 이야기했던바대로,

생각지 못했던 학교 분위기 때문에

실기 시험 준비는 망했네. 생각했다.


학교에서 자격증 실기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실습 마장 하루 일과에

자격증 대비반이라는 이름이 더해져서

몇 배나 더 많은 말똥 삽질들과 스트레스를 겪어내야 한다는 걸 뜻 했다.




단순한 승마 체험장과

체육 시설에 포함되는 승마장은 다르다.

승마 체험장이 아니라 승마 교육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체육 시설인 승마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법적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지도자 자격증들을 따야 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고

남편에게 자격증은 내가 따마. 선언했으니

오롯이 자격증에 관한 고민들은

이제 내 몫이었다.


세 개의 자격증 실기는 시험 코스나 과정과 내용이 모두 달랐다.

첫 번째 자격증은 실기 1차만 보고 결정되었고

두 번째 자격증은

마장 마술 실기 1차를 치르고

재활 승마 수업을 시연하는 

ㅡ장애인 재활을 돕는 승마  수업ㅡ

실기 2차 시험을 봐야 했다.


내게 최대 난관이었던 세 번째 지도자 자격증은

자격증이 가진 네임드만큼

가장 따기 어려운 것이었다.

보통 도전자들이 몇 년간 몇 수를 거듭하며 재도전하는 게 보통인 자격증이었다.


그 자격증은 실기 1차 때 마장 마술 시험 코스 안에

1미터 10센티 높이의 장애물 점핑이

2개나 섞여 있었다.

ㅡ장애물 점핑이라니.ㅡ


이 자격증 시험은

실기 1차를 시험 보면 바로 심사점수가 나오고

1차 당락이 결정된다.

1차를 패스한 이들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헐떡이면서 5명 심사위원 앞에서

자격증 마지막 관문 구술시험을 치러야 했다.


구술시험은  필기시험 모든 과목 이론 내용 중

렌덤으로 문제를 뽑아서

서술식으로 구술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이는 실기 1차를 패스해야만 시험 자격이 주어졌다.



장애물 1미터 10센티 높이를 말을 타고 뛰어넘어야 하다니!

그것도 두 번씩이나!

나는 그때까지 장애물 점핑을 배운 적 없었다.

개코도 안 배웠다.


학교 장애물 점핑수업은

2학년 때 기초 장애물부터 배우기 시작해

부지런히 연습해야만 삼. 사 학년쯤 되어

1미터 10센티 높이를 겨우 몇 명

넘을까 말까했다. 

더군다나 나는 오십 줄 나이 든 학생이었다.


학교 장애물 점핑 수업땐 특히

교수들이 나이 든 학생들을 부담스러워했다.

장애물을 뛰어넘다가

말에서 날아가거나

말과 함께 넘어지거나

말에서 떨어져서 뼈가 부러지거나

어딘가 크게 다칠 상황은

늘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나조차 걱정하지 않는 내 뼈 골다공증을

교수들이나 어린 학생들은 걱정했다.

 나이엔  부러지면 잘 안 붙어요. 하면서.


학교 교수들이나 조교나 학생들은

시험을 앞둔 나에게 말했다.

ㅇㅇ지도자 자격증 실기 시험은

그냥 내년이나 내 후년에 봐요.

11월 시험 때까지

절. 대.로!

1미터 10센티 높이 장애물은 못 넘어요.

장난이 아니라고요.


야. 시꺄!

언제는 시험 접수  당장하래매에!

그리고! 내가 그걸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너네가 어떻게 알아. 시꺄!

(라고, 냅다 퍼붓고 싶었으나 내 품격을 위해 참고!)




사실 그러긴 했다.

마장 마술 코스 그리는 건 어찌해보겠는데

망할 놈의 장애물 점핑이 문제였다.


장애물 점핑 두 개가 코스 중간에

만리장성처럼 버티고 있었다.

시험 치는 도중 장애물 지지대를 향해

말을 타고 달려드는 내 선택은

둘 중 하나여야 했다.


하나.

사 개월 만에 죽어라 연습해서

나비처럼 말을 타고 아름답게 넘어가거나,

ㅡ장애물 1자 무식이 3개월 만에 할 수 있을까.ㅡ

둘.

비겁하게 장애물을 피해서 뱅 돌아 나오거나.

ㅡ이건 그냥 탈락이고.ㅡ


선택이 아니라 비선택적인 옵션은

장애물 앞, 달리는 위에서

나 혼자 슈우웅 공중으로 날아가거나

말이랑 같이 바닥에 넘어지거나. 였다.

ㅡ제발. 이 옵션은 피하자.




다른 학생들은 자격증 한 개

많으면 두 개 시험 준비를 할 때.

나는 내 인생 내가 조지고야 말겠어. 작정하듯이

자격증 시험 세 개를 신청해 놓고

사실은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빼짝 빼짝 맘이 타들어갔다.


두 개 자격증 실기 시험은

땡볕 오지게 내려 찌는

8월 초에 예정되어 있었고,

어렵다는 ㅇㅇ지도자 자격증 일정은

한 달 한 달 미뤄지다가

11월에 일정이 잡혔다.

덕분에 준비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었다.

ㅡ보통은 7월에 시험 본다. ㅡ


남편 생각하기에도 내 마눌이

전속결, 자격증을 따야 할 텐데 생각했는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당신. ㅇㅇ승마장 ㅇ감독한테

개인 레슨 받아볼래?

ㅇ감독은 국가대표 장애물 선수출신이었다.


내 친구가 실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사설 승마장으로 도망가버렸듯이

나 역시 사설 승마장 ㅇ감독에게 개인 과외로

레슨 받으면서 실기를 준비하는 게 어떠냐는

남편 권유였다.




남편이 비싼 개인 레슨비를 지원해 준다니

남편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그 길로 당장 짐을 싸들고 ㅇ감독을 찾아갔다.


감독님 저 ㅇㅇ 지도자 자격증 시험 봐야 돼요.

저 좀 가르쳐주세요.

저 장애물 점핑 1도 몰라요.

근데 열심히 할게요.

시험 당일,

멋지게 두 개 장애물 다 넘게 만들어주세요.

ㅡ지. 인. 지. 조(지 인생 지가 조지는) 스텝 2!ㅡ


ㅇ감독은 내 진지한 눈빛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네! 한번 해 봅시다. 했다.

실기시험 4개월 전이었다.


만학도들도 다들 자격증 시험 접수하라고

학교에선 몇 번이고 재촉하며 그 난리를 치더니,

막상 필기를 패스하니

자격증들 실기 시험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지도해 주는 이는 없었다.

ㅡ이래서 학생들은 사설 학원을 다닌다.ㅡ


공교육에서 교육을 잘 받아도

학생들은 사교육에 눈깔을 돌린다.

하물며,

나는 공교육에서 교육받지 못해서

비싼 사교육에 눈깔을 돌렸다.


학교에서 내가 겪고 있는 어려운 사정들이해한

ㅇ감독은 나를 잘 지도해 주었다.

돈이라는 건 참 좋은 친구여서,

학교에서처럼 자존감 깨부수는 지적질도 없었고

체력이 부족한 나를 잘 배려해 주며

한 단계씩 차근차근 내 실력을 끌어올려줬다.




낮에는 학교에서

전투적인 삽질을 몇 시간 한 후에

역시나 말 위에 앉아

모욕감이 드는 온갖 지적질을 당했다.

그러한 모욕감을 견딘 건 그 와중에라도

내가 그들에게 뭐라도 배우겠지.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오후엔 다시 고급 회원님 승마로 돌아간 나는

돈이 주는 자유함과 고급짐을 느끼며

지적질 없는 굉장히 존중받는 레슨을 받았다.


내 남편이 돈 궤짝을 차고앉은 만수르도 아닌데

남편은 마누라를 위해서

매달 정말 럽게 비싼

개인 레슨비를 지원해야 했다.

전문 교육 산실인 대학교에서 배워보겠다고

입학을 했으면서 멀쩡한 학교 놔두고

이거 웬 돈지랄인가. 생각했다.


남편은 내 가족과 내 말 13마리와

개와 고양이 세 마리를 먹여 살리는 것도 모자라

마누라의 개인 레슨비까지 벌여야 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

난 목마른 학생이었다.

온몸이 삐그덕 소리가 나는

늙어가는 오십 줄 중년 아줌마였으나

그건 그냥 핑계일 뿐 나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한번 한다면 하는,

꼴똥 기질이 아주 다분한 늙다리 만학도였다.

화력이 겁나 센 인간이기도 했다.


넌 이거 절대로 못할걸.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난,

야. 너님. 

어디 한번 지켜봐라.

내가 하나 못하나. 시꺄.

생각한다.


딱 이런 상황이면

나는 곧바로 태세전환에 들어간다.

그렇지 않아도 멀티가 안 되는

무한 몰입형 인간이

눈에 뵈는 게 없이

미친개처럼 달려드는 인간모드로의 전환말이다.




내가 사설 승마장 ㅇ감독에게서

개인 레슨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내 친구들 빼곤 학교 관계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몰라도

학교 교수들이나 조교는

만학도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 이상으로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학생이

사설 승마장에서 개인적으로 레슨 받는 건

 싫어했다.

ㅡ아니 그럼. 자기가 잘 가르쳐주던 가아.ㅡ


나는 이제 그들에게

미운털이 하나 더 박힐 예정이었다.

나의 원죄는

나이 먹어서 배우겠다고 대학을 기어 들어온 죄요.

사교육에 눈깔 돌려서

사설 승마장에서 고급 레슨을 받는 죄였다.


나를 미워하고 자시고는 당신들 사정이고!

나는 시험을 패스하건 아니 건간에

당신은 절대 이걸 못한다. 고

무시하고 외면이들을

시험 당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진심 그랬다.


시험직전 워밍업하는 시험장 연습 마장,

그들 눈앞에서

내가 나비처럼 

수직 장애물과 쌍둥이 옥사 장애물 세트 위로

 우아하고 멋지게 날아가는 걸  보여주리라.


너네 거기서  기다려라!




은 절대로

올해 실기 시험 장애물 점핑 못해요.

점핑하다 낙마하면 선생님 뼈 부러져요.

했던 교수들.

조교야.

어리고 늙은 학생들아.


야 C!

내 뼈  걱정 마!

내 뼈 완전 멀쩡해. E C!


나는 ㅇ감독에게서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는 걸 비밀에 부친 채

학교  마장에서 일과가 끝나면

ㅇ감독 마장으로 가서 말을 탔다.


내 친구는 사설 승마장에서 시험준비하겠다고

말똥 삽질 지옥 학교에서 도망쳤으나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다만 ㅇ감독 수업을 추가로 들었을 뿐이었다.

이를 갈면서.


ㅇㅇ감독 레슨을 들으며

낮은 장애물 X자형 지지대를 넘는 것부터

점핑을 시작한 나는,

차근차근 장애물 높이를 올려갔다.


장애물 X자형 30cm. 45cm

다시 수직 장애물로 변형시켜서

수직 장애물 30cm. 45cm. 60cm. 90cm....


복수의 그날을 위해

검객이 매일 칼을 갈며 내공을 쌓듯이

나는 단계적으로

장애물 높이를 씹어 먹으며 하나씩 뛰어넘었다.





오전엔 학교 가서 말똥 치우기 365일 전투를 하고

말을 탔고 오후엔 ㅇ감독 수업을 듣느라 또 말을 탔다.

그날 배운 걸 잊지 않기 위해

ㅡ내가 배운 걸 내 새끼들(내 말)에게  가르쳐주고 싶어서ㅡ

다시 우리 마장으로 돌아와 내 말들을 가르치며 말을 탔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하루에 말 타는 말은 7.8마리가 되었고

하루동안 내가 말 위에서 운동한 시간을 보면

8시간 정도였다. 

-말똥 삽질 서너 시간은 빼고!-

이건 진짜 미친 일정이었다.

마지막 말을 타고 말에서 내리면

우리 마장주위는 늘 깜깜했다.


손이 후둘리고

다리가 후둘리면서

어깨가 삐걱대고

토가 쏠렸다.


이러한 하루 루틴은 아무리 봐도

50줄 아줌마의 평범한 하루 일과가 아니었다.

나를 등 떠밀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남편을 탓할 정신적  여유조차 없었다.


마침내 8월 초 일년중 가장 더웠던 날.

첫 번째 자격증 실기 시험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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