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뇌 약간 고쳤다!
도망간 송아지 찾아 초원 십만평 뒤집니다.
팔자에도 없는 송아지 찾아
네 시간 초원을 헤맸다.
릴리가 우리 집 돌담 돌덩이 몇 개 허물고 나가
집 근처 소 축사로 마실 나간 통에
ㅡ19년 묵은 할머니 진돗개 릴리는
시골 모든 할머니들이 그렇듯
밤새 동네 친구 소들 안죽고 살았능가 궁금해
아침 인사 나누러
동네 마실을 나간것일 뿐!ㅡ
갑작스러운 릴리 방문에
그 집 어린 송아지 두 마리가 기겁을 했나 보다.
송아지 두 마리가 놀래 날뛰다가
한 마리는 울타리를 벗어나 도망가버려서
초원 어딘가로 실종 중이고,
나머지 한 마리는
쇠 울타리에 끼어서
거대한 기계를 동원한 후에야
겨우 겨우 끄집어냈다.
잘 자고 일어나 새벽부터 날벼락을 맞은
송아지 주인아저씨는 분노했고
ㅡ당연하다. 왜 아니겠는가!ㅡ
남편과 나는 축사를 찾아가
고개를 수십 번 조아려 사과를 했다.
송아지 주인아저씨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우리를 보더니
목소리가 아주 쪼끔 가라앉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아주 낮고 굵은 목소리로
반복적으로 겁을 주며 말했다.
송아지 실종.
송아지 값.
휜 울타리 수리.
송아지 다리 골절.
송아지 정신피해 예상..... 등등.
우리는
송아지 주인아저씨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박자를 맞춰 고개를 조아리며
수십 번 대답했다.
죄송하다.
미안하다.
죽을 죄를 졌다.
당연히 우리가 책임을 진다.
또 죄송하다.
또 미안하다.
또 미안하고 죄송하다.
진짜로 미안했고 죄송했고
지금도 미안하고 죄송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미안할것이고 죄송할것이다.
암만 생각해봐도 우린 죽을 죄를 졌다.
하아.
진짜 이 일을 어쩐다냐...
졸지에 천하의 몹쓸 죄인이 된 남편과 나는
실종된 송아지를 찾아
그렇게 네 시간 넘게 초원을 뒤졌으나
수만 평 광활한 초원 어디에서
송아지를 찾을 것인가.
쪼끄만 녀석이 초원에 들어가 웅크려 앉아있으면
보일 턱도 없었다.
송아지 주인아저씨는 우리더러
일단 집에 가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수십 번 죄송하고 미안하다.가 효과가 있었는지
아까 반복적으로 겁을 주며 말할 때보다는
주인아저씨 목소리는
힘이 살짝 빠지고
한층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이미 죄인이 되어버린 우리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스스로 속죄하는 심정으로다가!
남편이랑 둘이서 송아지를 찾으러 초원을 뒤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턱이 없는
우리 집 할머니 릴리는
마당에서 벌을 섰다.
어린 송아지가
어미 떨어져 멀리 갔을 리는 없을 텐데
주변 초원이 너무 넓다 보니
찾을 길이 막막했다.
어미 찾아 제 발로 돌아오면 좋으련만!
송아지가 사라진 초원은 십만 평 규모라
사람이 돌아다녀도
길을 잃었다고 뉴스에 나올판에,
어린 송아지가 어찌 혼자 어미를 찾아오겠나!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 송아지는 이제 막 어미젖을 떼고
이유식을 하고 있다 했다.
ㅡ릴리 이 망할 놈!ㅡ
좀 전에
송아지 주인 아저씨가 찾아 와서
송아지를 찾았다고 했다.
휴우우우
할렐루우야!
다행이다.
다행이야.
송아지는 그새
저 너머 초원 어딘가를 혼자 헤매고 다니다가
근처 농장 주인이 발견하고는
아저씨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한다.
다친데도 없고.
(어..., 그래도 정신적인 피해는 입었게ㅆ..ㅜㅜ.)
진짜 천만다행이다.
#소 #잃고 #뇌 #약간 #고친다
#송아지
#실종
#송아지값
#울타리
#탈출
#죄인
#초원
#십만평
#뒤집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