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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09. 2024

접신한 무당처럼 까마귀는 궁시렁댔다.

(feat.너도 한번 당해봐라)

너그럽고 평화주의자 같은  릴리에게도

싫어하는 존재가 있다.


그건 늘 릴리를 찾아와

귀찮게 하거나 살살 약을 올리는 까마귀들인데,

이것들은 일단 덩치가

너무 시끄럽고 예의가 없다.


예를 들어

릴리가 마당에서 뭔가 먹고 있을 때

그걸 확인한 까마귀들은

릴리에게서 일 미터 간격에 내려앉는다.

그다음

몸을 약간 15도 정도 오른쪽으로 비튼 후,

두 발이 타닥타닥 엇박자 나게 땅을 튕기면서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릴리에게 다가간다.


할머니 릴리는 잔디 위에서 편안히 앉아 있다가

까마귀가 다가오면 그르렁 하고 일단 경고를 한다.


아이고오.  이놈아.

귀찮으니까 가까이 오지 마라! 


할머니 릴리의 점잖은 경고에도

버르장머리 없는 까마귀들은 상관치 않는다.

경고를 무시하고 더 다가가서는

릴리가 먹다가 남긴 간식 부스러기를

낼룽 주워 삼키고 폴짝 날아오른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슬슬 약이 오르는 거다.


. 쫓아내면

까마귀들은 한번 날아올랐다가

다시 릴리 주위로 내려앉는다.

다시 릴리가 컹 컹.하고 점프하며 짖어대면

 잡아봐~라. 하면서 날아간다.


까마귀들은 릴리 코 앞에서 잡힐 듯 말 듯 하면서

늙어서 관절이 성하지 못한 데다

날개도 없어서 쫓아 날아오르지 못하는

할머니 처지를 약 올리는 것이다.

ㅡ못 잡지롱. 못 잡지롱.

   못 날지롱. 못 날지롱.ㅡ


이런 장면은 늘상 벌어졌다.


하루는 릴리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까마귀를 보고 정말 미친 듯이 짖어댔다.

그러자 웃긴 게

 까마귀가 이번에는

릴리 짖어대는 소리를 흉내를 내는 것이다.


릴리가

컹 컹 월 월 르르르르.하니

나무 위에 앉아서

릴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까마귀가

억 억 악 악 르르르르.했다.


남편과 나는 커피 한잔씩을 타 가지고

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나란히 앉아

장면을 구경을 했는데

남편이 말했다.


허! 저놈 봐라.

릴리 짖는걸 그대로 흉내를 내내.

에에설마아.

아니야. 잘 들어봐.

호오오.

음절도 똑같이 흉내 낸다.


자세히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릴리가 컹 컹 하면 그놈은 웍 웍 하고

릴리가 월월 어르르르.하면

그놈은  억 억 아르르르.하는거다.


진짜네.

 녀석이 진짜 릴리 짖는 소리를 흉내내고 있네.

그래서 릴리가 저렇게 더 화가 나서  미친 듯이 짖는 거구나.


컹 컹 월월월 워르르르르 하니

조금 있다가 까마귀가

 억 얼얼얼 아르르르르 다.

그러니 릴리가 까마귀들을 좋아할 리가 있겠나?


얼마 전엔 릴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기기 위해 마당에 나갔더니 까마귀 한 마리가

마당옆 편백나무 위에서 큰 소리로

아악 아악 억억 어르르르르~ 하면서

짖.었.!


맞다.

까마귀가 울었다. 가 아니라 짖었다!다.


보통 우리는 새가 울었다.라고 표현하지만

이 까마귀라는 생명들은

도무지 조용한 법이 없다.

늘 시끄럽다.

그러니 까마귀가 울었다.라는 표현보다는

개처럼 시끄럽게 짖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까마귀는 우리를 따라 이동하여

우리 대문 옆 가로등 위에 옮겨 앉아서

내려다보며

(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와 함께 걷고 있는 릴리를 경계하며)

아주우 시끄러운 목소리로

아악 아악 가르르르르.

억 억 가르르르르.다.


번뜩 저번 릴리가 까마귀에게 당한 일이 생각이 나

 가로등 밑에서 까마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디 너도 한번 당해봐라.


까마귀가 릴리 짖는 소릴 따라 했듯이

나도 그 까마귀가 소리를 내는 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깍 까악 까악 까르르르르.하면

나도  아악 아악 아악 아르르르르.하고

가르르르르 .하면

나도 가르르르르 했다.


그렇게 내가 그 까마귀가 내는 음절과

목소리의 톤도 똑같이 따라 하니

이놈은 이게 무슨 상황 인가 하면서 당황했다.


어떤 괘씸한 까마귀가 나를 그대로 따라 하나.


주위를 살피려고 다급하게 왼쪽으로 이십 센티

톡 튀어 옮겨 앉더니

주둥이와 목을 쭈욱 내밀며

우리가 있는 자리를 한번 내려다보고,

다시 오른쪽으로 삼십 센티

튕겨 앉아 

우리 있는 곳을 다시 내려다봤다.


하늘 한번 쳐다봤다가

우리가 서있는 곳을 내려다봤다가 다.

상. 하. 좌. 우

올려다봤다가 내려 봤다가 했다.


어디서 나를 따라 하는 거야.

어떤 건방진 까마귀야? 하면서 말이다.

멍텅구리 까마귀가 당황한 꼴을 보고 있으니

풋! 웃음이 나왔다.


이번엔 까마귀가 목청컷 소리 지르면서

까악 까악 까악 까르르르르르 .하길래

나도 그놈처럼 목소리를 크게 키워서

아악 아악 아악  아르르르르르.했다.


까마귀는 내가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 나는 우리 쪽을 향해서

목을 쭈욱 내밀고 주둥이를 쭈우우우 뽑아서 다시 또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작고 가는 목소리로 아아르르르르. 하길래

나도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작고 가는 소리로 아아르르르.했다.


마귀가 나를 시험해 보듯이

억.하고 짧게 소리를 내길래

나도

억.하고 짧게 소리를 냈다.


까마귀는  상황을 이해해 보려다 실패했는지

신경질 부리듯이

다시 큰소리로

까아! 까아아! 까아악! 했는데

이번엔

내가 까마귀보다 더 큰소리로 악을 쓰며

까아아아! 까아아!! 까아앜!!!! 했다.


까마귀는 그 소리에 충격을 받아버렸는

언덕 쪽으로 후다닥 날아가면서

혼자 욕을 내뱉듯이

(ㅌ호ㅋㅌㅃㅇㅎ! ㅜxx!!! ㅋㄴㅊ!!!!!!)

까악! 까앜! 까아앜!

카아아아악 퉤!!!!!!!!!!! 하며 날아갔다.


동네 까마귀를 멘붕 시켜놓고

아주 만족스러워서

키득키득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왔다.


까마귀는 저 언덕으로 날아가 나무 위에 앉아서도

아직도 이해하 못한

이 이상한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며

접신한 무당마냥

혼자 궁시렁 궁시렁

...아까..  까아아앜  아르르ㄹㄹ...했다.

(ㅅㄱㅅㅂㄹ????ㅎㅋㅊㄱ?!!?!?!ㄱㅊ.....)


릴리야 엄마가 너 복수해줬다.라고 내가 말할 때

마당 멀구슬나무에 앉아서

까마귀와 나의 뻘 짓을 구경하고 있었던

직박구리 한 마리가 째 째 째 째액.

큰소리로 웃으면서 내 머리 위로 날아갔다.

그 새가 보기에도 내 모양새가 웃기긴 했나 보다.


나도 차암 이런 거 보면 할 일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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