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일어나 라테. 일어나!
겨울비 오는 밤. 라테와 나는 사투를 벌였다.
며칠 내린 비 때문에 질척해진 울타리 안에 서서
말들이 젖은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게 딱해
대마장 주변 폭신한 풀 위에 풀어놓았다.
평소 예민하고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라테는
그제야 몸 누일 편안한 자리를 찾은 듯
네 다리를 접고 폭신한 풀 자리에 앉았다.
한두 시간 지나고
밥 먹을 시간이 되어도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기에
뭔가 잘못되었구나. 느끼며 생각했다.
아.이거 녀석에게 산통이 온 거면 큰 일인데!
말에게 산통은 흔한 질병이면서도
응급처치를 즉각적으로 대처해주지 못하면
사망할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쉽게 말하자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소화가 안돼서 배에 가스가 차고
배변이 원활하지 않아서 고통이 심해질수록
말은 자꾸 자리에 드러눕는다.
이렇게 말에게 산통이 올 땐
무기력하게 드러눕는 말을 살리려면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말이 딱하지만
무조건 일으켜 세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가볍게 걷기를 시키거나. 천천히 뛰는 걸음으로 운동을 시키며
장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줘야 했다.
가능한 한 빨리 가스와 배변이 되게 해야
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리에 눕는 말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을 땐
말이 산통을 앓다가 몇 시간 후 바로 죽을 수도 있는 응급 상황인 것이다.
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은 라테는
저녁밥이 배식되었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아 이런.
라테한테 진짜 산통이 왔구나.
나는 자리에 누워서 꿈쩍하지 않는 라테를 일으켜
작은 원형 마장으로 끌고 나와서 천천히 걷게 했다.
이제 더 활발한 움직임이 도움이 될 듯해서
긴 끈이 달린 기다란 채찍을 가져다가 공중에 휘둘러서 탁 탁 소리를 내며
라테를 강제로 가벼운 걸음으로 뛰게 했다.
한 시간쯤 뛰었을 때,
라테가 뛰면서 가스와 배변을 하기에 다행이다. 생각했다.
라테야. 가스도 나오고 똥도 눴으니깐
이제 통증이 좀 가라앉을 거야.
한시름 마음을 놓고 라테와 연결된 로프를 끌어서
다시 천천히 걷기를 시켰는데
녀석이 다시 자리에 철퍼덕하니 드러누웠다.
어! 왜 이러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이제 라테와 내가 있는 마장 주위는 이미 깜깜해졌다.
해질 무렵부터 보슬비로 시작된 차가운 겨울비는
어둠 속에서 서 있던 라테와 내 머리 위로 거세게 쏟아졌다.
배앓이가 극심한 라테는
움직임 자체가 고통이라 자꾸만 자리에 드러누웠고
나는 무조건 라테를 살려야 했다.
드러누워서 꿈쩍하지 않는 라테를 낑낑거리며
억지로 힘을 써 로프를 끌어 말을 기어이 일으켜 세운 후
다시 원형 마장을 뛰게 만들었다.
세 시간이 지나 저녁 8시,
이미 마장은 어둠으로 가득 차서
한 치 앞도 보이질 않고 비는 더 세게 쏟아졌다.
라테는 여전히 눕고 싶어 했다.
기력조차 떨어졌는지 이젠 몇 걸음 겨우 겨우 마지못해 걷다
다시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나는 채찍을 써서 모질게 라테를 일으켜 세웠다.
안돼. 일어나 라테. 일어나!
처음엔 내 손에 잡힌 로프의 끌림대로
마지못해 일어나던 녀석이 모질게 채찍으로 몰아세워도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녀석도 지친 것이다.
가스도 나왔고 똥도 몇 번 누었고
세 시간이나 뛰고 걸었는데도
왜 상태가 좋아지질 않고 왜 자꾸 더 누우려고 하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작년에 우리는 똑같은 증상으로 나오미라는 말을 잃은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말에게 산통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몇 시간이 지나고 이렇게 밤을 새워서라도
라테가 자리에 눕지 않고 움직이도록
일으켜 세워야 했다.
라테는 정말 힘이 다 빠진 모양이었다.
좁은 원형 마장 공간에서 움직이는 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아서
라테를 끌고 원형 마장을 빠져나왔다.
우린 넓은 20*70 미터 크기의 사각 대마장 테두리를 따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나란히 걸었다.
역시나 녀석은 몇 발걸음 걷다 픽 쓰러졌다.
라테가 쓰러지는 횟수는 더 잦아졌고
아무리 다그쳐 다시 세우려 해도
라테는 난 도저히 못하겠어.라는 듯이 누운 채로 버텼다.
라테를 일으켜 세우는 것조차 점점 힘들었다.
고통이 심해 자꾸만 쓰러지는 라테도 불쌍했고,
얘를 살리겠다고 용을 쓰다가
빗물과 흙탕물로 온 몸이 젖어 험한 몰골이 된 내 모습도 슬펐다.
나는 울음이 터져 나오는 목소리로
안돼.일어나.라테.일어나!
제발 일어나!
하면서 울었다.
시간을 보니
이제 10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라테도 이젠 너무 지쳐있어서 좀 쉬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마방 한 자리에 라테를 들여놓았더니
천천히 한 바퀴 냄새를 맡으며 제자리를 돌더니
다시 자리에 철퍼덕 쓰러졌다.
늦은 시간이라 주치의 수의사와 통화하긴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마찬가지로 늦은 시간이었지만 죄송함을 무릅쓰고
지도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며 급하게 연락을 드렸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운동시켰으니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금식을 시키고
내일 아침 배변이 원활한지 살피라. 조언하셨다.
밤이 길듯 했다.
나는 밤새 라테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다.
밤새 라테 상태를 수시로 살펴야 했다.
라테를 들여다보기 좋도록 마사 근처 컨테이너 안쪽 침상에 잠자리를 펴고서 누워있다가
한 시간에 한 번씩 마방을 들여다 보았다.
여전히 녀석은 일어나질 못하고
네 다리를 접고서 누워 있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마방에 들어가 자리에 누운 라테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라테 얼굴을 쓰다듬어주면서 라테를 안심시켰다.
라테야. 이제 곧 괜찮아질 거야.
내가 너 옆에 있어줄께.
걱정하지 마.
새벽 다섯 시,
겨우 겨우 어거지로 잠을 청하면서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컨테이너 모퉁이를 돌아서 걸어가
라테가 들어가 있는 마방이 보일 때,
어쩌면 라테가 죽어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잠이 깨자 마자 후다닥 마방으로 달려갔더니
마방 안에는 라테가 나를 보며 서 있었다.
두 다리로 튼튼하게,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라테의 두 눈은 초롱초롱했고
입술은 나에게 말을 걸듯 옴질 옴질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나 좀 봐요.
나 이제 정말 괜찮아요.
라테! 괜찮아?
아. 다행이다! 이 녀석아!
라테가 밤새 죽지않고 살아있어서 정말 기뻤다.
날이 밝아지고 점심 무렵이 되자
라테 상태가 좋아진 듯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신선한 풀을 뜯어먹으라고
자유롭게 풀어두었다.
라테는 이곳저곳서 풀을 뜯다가 나를 보면
강아지마냥 하루 종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ㅡ평소 예민하고 까칠했던 라테답지 않게!ㅡ
죽다 살아난 그날 밤.
쏟아지는 비를 함께 맞으며
우리 둘이 사투를 벌인 과정에서 라테는
나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녀석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여느 때와 달랐다.
라테는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지난밤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너무도 잘 아는 듯했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루 종일 내 뒤를 조용히 졸졸 따라다니는 행동이
라테의 그런 마음을 말해주었다.
재작년
울타리에 껴서 죽을뻔하던 엠원을
세 시간 사투를 벌여서 겨우 꺼내 살린 후에
엠원과 나의 관계가 그랬고,
혜성이 와도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함께 겪은 후에
나와 혜성이의 관계가 그랬다.
그럴 때마다 말들은
내가 자기를 살리기 위해,
내가 자기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일을 겪은 후의 녀석들은
나를 더 친밀하게 느끼며 행동했고 날 더욱 신뢰하는 게 느껴졌다.
그건 예민하고 까칠했던 라테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말 인생 가운데에서
라테 이 녀석 하고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쓰네. 생각했다.
하루종일 라테가 건강하게
풀을 뜯어먹으면서 마장을 뚤래 뚤래 돌아다닐 때
뒤뚱거리며 걷는 녀석 궁둥이만 봐도 참 흐뭇했다.
내가 살려놓은 녀석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