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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27. 2024

쓰러진 해바라기가 기어이 꽃을 피우듯이.

꽃망울을 단 해바라기,태풍을 만나다!

몇년전

친구에게서 해바라기씨를 얻어다가

마당 한 귀퉁이에

졸졸하게 씨를 뿌려 놓고는

언제쯤 꽃이 피어 오르나

안달이나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았다


안개낀 봄날 아침 들여다보니

떡잎을 단 새싹이 오르고,

쨍한 햇빛이 내리쬐던 날 들여다보니

꽃대가 튼실하니 당당해지고,

바람이 기분좋게 불어대던 날

들여다 보니

올망 졸망 꽃망울은

아이의 입술마냥 앙다물고 있었다


바람 한번

쨍한 햇빛 한번이면 피겠구나 기다릴때

엄청난 바람과 거센 비를 몰고온 태풍이

마당을 휘저어댔다.


비는 몇날이고 퍼부었고

잔뜩 화가 난 것같은  미 바람은

여지없이

꽃망울을 묵직히 단

해바라기들 사이사이를 폭군마냥 헤집고 다녔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잦아들자

내가 마당에 나가 보았을때

해바라기들은 고개가 꺽인채

흙바닥에 널부러져

온몸이 처참했다.


바람 한번

쨍한 햇빛 한번이면

화사하게 피어 났으련만.

그렇다고

거세고 매정한 태풍을 탓할수는 없었다


이제 막

절정 시기에 이르러

화사하게 피어날 꽃망울을 단 해바라기가

이리 저리 목이 꺽이고 부러져

흙바닥에 엉망인 모습을 보다가

나는 우리 삶을 생각했다.


그건 그저

지나가는 생의 과정이고

그건 그저

생의 찰라에

휘몰아 때리고 지나가는 

잠시 아픈 불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꽃대가 꺾여 바닥에 누운 해바라기를

하나 하나에 지지대를 묶어 세우다가

흙투성이 해바라기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


넌 반드시 꽃을 피울꺼야. 걱정마.


지지대도 못 미더워

주먹만한 돌멩이들과

크고 작은 자갈들을 주워다가

꽃대마다 든든하게 보두어 주었다.


지나가야 할 거센 바람이 다 지나가고

맞이해야 할 쨍한 햇볕이

몇일 내려 쬐더니

온몸이 꺾인 꽃들은

그래도

뜨고지는 해를 따라

몸을 틀어

기어이 기어이 꽃을 피워 올렸다.


비록

잎사귀는 상처 투성이였고

영광스러워야 할 꽃 봉우리에는

이미 흙으로 엉망이되어

본디 아름다운 모양새는 잃었지만,

그래도 마침내  피어 난

그 꽃이 참 자랑스러웠다.


태풍에 쓰러진 해바라기는

절망스러운 그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흙바닥에 누워서

온몸은 엉망일지라도

해를 따라

꺽이고 처박힌 무거운 고개를

애써 치켜들었고,

바람때문에 뽑혀 나가

허옇게 땅위로 드러난 뿌리는

기를 쓰고

땅을 켜쥐고 기어이 뿌리를 내렸다.


그렇게 일으킨 머리요

그렇게 내린 뿌리요

그렇게 피워 올린 꽃이었으니

그 꽃하나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수 있을까.


역시나 올해도 나는 해바라기를 심었다


바람이 거센 이 땅이니

마른 땅에 씨를 심으면서도

나는 벌써부터

휘저어 댈 바람과 비를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올해는 바람은 적당했고

햇볕은 부드러웠다.


지나가는 태풍 먼자락에

오늘 많은 비가 내렸는데

무심코

거실에서 내다 보았더니

언제 피워올렸는지

해바라기 하나가 환하다.


예기치않은 선물마냥 느껴져

얼릉 나가 둘러보니

고 옆에 고만 고만한 다른 해바라기들도

이제 곧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해바라기를 들여다보다가

지난 시간 내 기억속에 묻혔던,

해바라기가 떠올라

몇자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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