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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23. 2024

뒷산 나무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태풍을 이긴다

풀벌레들은 태풍속에서도 서로 괜찮은지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다.

태풍이 온다더니

바람은 점점 더 미쳐 날뛰고

비는  거세게 쏟아졌다.


놀라운 건

이 난리 중에도

풀숲에선 풀벌레들이 운다는 것이다.

놀라운 생명력들이다.


태풍에 괜찮은지 전화로 안부를 물어온 육지친구에게

그래도 우리 집 마당 풀숲에선 풀벌레가 울어. 하고 말했더니

친구가 답하길,

풀벌레들이 서로 괜찮은지 안부를 나누나 보다.라고 했다


아!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예쁜 말이다.

태풍에 서로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풀벌레들이라니!


몇 년 전 태풍엔

마당 한쪽에 서있는 커다란 편백나무가

옆집 마당 쪽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


편백나무를 끌어올려 다시 세우고

그 나무 밑으로 다닥다닥 동백과 뽕나무들을 심었는데

이제는 풀숲더미까지 어우러져

그 자리에 나무들은 밀도 있게 빽빽하다

그 덕인지

올해 태풍에 나무는 쓰러지지 않았다.


주방 유리창 너머

사방을 휘저어대는 바람에 맞서

버티고 있는 뒷산 숲 속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외따로이 혼자 버티고 있었더라면

낭패를 당했을 터인데

나무들은 서로 의지하여 기대면서

끝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을 견뎌냈


큰 나무 밑

빽빽하게 버티는 중간 크기 나무들

그 나무들 밑으로

몸을 바싹 낮춘 무성한 풀숲


혼자는 못 견뎌낼

저 냉정한 바람을

풀들은 풀대로

가는 나무는 그들대로

큰 나무는 그들대로

서로 어깨를 내주고 기대며 이겨냈.


밤새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거짓말처럼 그치고

달무리를 끼고 맑은 달이 하늘에 떠 있을 때

여러 종이 섞인 풀벌레 소리를 듣다가 생각했다.

그 험한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저 생명들은 어디에서 비와 바람을 피한 걸까.


태풍이 지난 다음날 아침에 듣는

딱따구리 소리

꺼우꺼우 거리는 노루소리에도

너희들도 간 밤 태풍 속을 어떻게 용케도 잘 견뎠구나

간밤 태풍 속에서

어디에 몸을 숨기고 피했니?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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