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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다 생각이 있구나
16화
뒷산 나무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태풍을 이긴다
풀벌레들은 태풍속에서도 서로 괜찮은지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다.
by
시안
Sep 23. 2024
태풍이 온다더니
바람은 점점 더 미쳐 날뛰고
비는
더 거세게 쏟아졌다.
놀라운 건
이 난리 중에도
풀숲에선 풀벌레들이
운다는 것이다.
놀라운 생명력들이다.
태풍에 괜찮은지
전화로 안부를 물어온
육지
친구에게
그래도
우리 집 마당
풀숲에선 풀벌레가 울어. 하고 말했더니
친구가 답하길,
풀벌레들이 서로 괜찮은지 안부를
나누나 보다.
라고 했다
아!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예쁜 말이다.
태풍에 서로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풀벌레들이라니!
몇 년 전 태풍엔
마당 한쪽에 서있는
커다란 편백나무가
옆집 마당 쪽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
다
.
편백나무를 끌어올려
다시
세우고
그 나무 밑으로
다닥다닥
동백과 뽕나무들을 심었는데
이제는 풀숲더미까지 어우러져
그 자리에
나무들은 밀도 있게 빽빽하다
그 덕인지
올해 태풍에 나무는 쓰러지지 않았다
.
주방 유리창 너머
사방을 휘저어대는 바람에 맞서
버티고 있는 뒷산 숲 속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외따로이 혼자 버티고 있었더라면
낭패를 당했을 터인데
나무들은 서로 의지하여
기대면서
끝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을 견뎌냈다
큰 나무 밑
빽빽하게 버티는 중간 크기 나무들
그 나무들 밑으로
몸을 바싹 낮춘
무성한 풀숲
혼자는 못 견뎌낼
저 냉정한 바람을
풀들은 풀대로
가는 나무는 그들대로
큰 나무는 그들대로
서로 어깨를 내주고 기대며 이겨냈다
.
밤새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거짓말처럼 그치고
달무리를 끼고 맑은 달이 하늘에 떠 있을 때
여러 종이 섞인 풀벌레 소리를 듣다가 생각했다.
그 험한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저 생명들은 어디에서 비와 바람을 피한 걸까.
태풍이 지난 다음날 아침에 듣는
딱따구리 소리
꺼우꺼우 거리는 노루소리에도
너희들도 간 밤 태풍 속을 어떻게 용케도 잘 견뎠구나
간밤 태풍 속에서
어디에 몸을 숨기고 피했니? 묻고
싶었
다.
keyword
태풍
나무
어깨
Brunch Book
너희도 다 생각이 있구나
14
어두운 밤, 집 뒤 동산에서 노루가 운다.
15
여기는 들어가지 마시오.를 무시하고 직진하면!
16
뒷산 나무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태풍을 이긴다
17
쓰러진 해바라기가 기어이 꽃을 피우듯이.
18
안돼. 일어나 라테. 일어나!
너희도 다 생각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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