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새 대가리겠는가.
수퀑씨는 새 대가리다!(욕 아님)
아침 설거지를 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부엌 창문밖을 내다보니 멋진 수컹씨가 기다란 꽁지를 들었다놨다 하면서
풀속에 있는 뭔가를 주워 삼키기 바쁘다.
수퀑씨는 화려한 깃털 옷을 입고서
날개는 몸통에 바싹 붙이고
양반 걸음으로 슬렁 슬렁 걸었다.
그러다 먹을 만한 걸 발견했는지
부리 살짝 벌려 바닥에 떨어진 먹이를 한 입 물고
주둥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목이 불룩해지도록
꿀꺽 삼켰다.
동물원에 있는 화려한 새들을 빼고
생활속에서 볼수 있는 새들 가운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단연코 수퀑씨가 으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렵한 머리에서 시작되서
유선형으로 빠진 몸통을 지나.
기다랗게 쭈우욱 뻗친 꿩 꽁지를 보고있노라면
색채와 무늬의 조화는 참 감탄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눈 주위에 쌔까만 털들 하며
몸 전체를 두르는 알록거리는 검은 반점 무늬들과
머리통 어디쯤에서 단연 돋보이는
번쩍이는 초록색 털들은
수컹씨 자태를 더욱 빛낸다.
수퀑씨그 자태 자체는
암꿩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만치 화려하고 또 화려하다.
아침에 본 수컹씨 역시 아름답고 고상하다.
이렇듯 화려한 자태와는 다르게
그 녀석들의 위기에 처한 처세술은
알려진 바대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언젠가 내가 홀로 샤려니 숲길을 거닐때였다.
그때의 사려니 숲길은
지금처럼 관광객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는
그런 길이었으므로 그 산책 길은 늘 고요하고 고즈넉했다.
아무도 걷지 않는 깊은 숲길을 홀로 거닐때였다.
나보다 약 스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수꿩 한마리가 길가 덤불에서
날개를 몸통에 딱 붙여서 뒷 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러다 뭔가를 발견했는지
고개를 쭈욱 뽑아서
바닥에 있는 먹이를 찾아 주워 삼키고 있었다.
나는 수퀑씨 식사를 방해하고 싶질 않아서
최대한 조용히 다가갔으나
새가슴을 지닌 그 수퀑씨는
ㅡ새니까 새가슴 가진게 당연하다ㅡ
아주 작은 내 움직임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며 당황했다.
주둥이를 가위처럼 벌여서 물고 있던 빨강 열매를 이제 막 삼키려고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다가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빨강 열매를 퉤.뱉고
덤불속으로 부랴부랴 뛰어 들어갔다.
숲길에서는
나는 낯선 방문자요 이방인인지라
숲속 주인인 수퀑씨를 놀라게 한것이 미안해서
조용 조용히 그 길을 걸었고
수퀑씨가 몸을 숨긴 그 즈음에 다 달았다.
아이큐 좋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풀숲으로 들어가 어디론가 멀리 도망가고 없겠지.
아이큐 나쁜 수퀑씨는 이렇게 생각했다.
길가 덤불속에 머리만 쳐박고
길가 쪽으로 몸통과 긴 꽁지를 삐죽 내보이고서
나 어없다. 가라.인간아.
수퀑은 어서 바삐 내가 그냥 지나가주길 바랬다.
그 수퀑씨를 보니
참.나.원!
어이가 없었다.
그 모습에 푹!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웃음을 꾸욱 참다가 그 덤불을 약 스무발자국 정도 더 지나온 후에 샥 뒤돌아 보았다.
하나.둘.셋.
홱!!
그때까지도 수퀑씨는
덤불속에 머리를 쳐박고 몸을 벌벌 떨면서
나 어없다. 나 어어없다. 진짜로 나 어어업따. 하면서 숨 죽이고 있었다.
우수꽝스러운 수퀑의 위기 대처방법을 보니
어이가 없어서 수퀑 있던 곳을
혼자 킥킥대며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 봤다.
내 발자국이 다소 먼거리까지 멀어지자,
그제서야 그 안심한 수퀑은
푸드덕 거리면서 산책길 삼나무 숲속으로 날아올랐다.
그때 난 알았다.
화려한 빛깔, 번쩍이는 외관에도
어쩔수 없이 극복할수 없는
수퀑씨 한계는 아이큐의 부족이란 사실이다.
이건 참 점잖은 표현이지만
좀 속되게 표현하자면
달리 새 대가리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