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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Oct 04. 2024

매미는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되었나.

매미의 최후를 바라보다.

마당 주위에 서있는 꾸지뽕나무 끄트머리와

고 아래 풀숲 사이에

대각선으로 크게 가로질러진

호랑거미 거미줄에

유지매미가 걸렸다.


넓은 공간에 자리 잡고

촘촘하게 쳐둔 거미줄 구석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던 호랑거미는

공들여 거미줄을 친 보람을 느끼며

매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거미줄에 덜컥 걸려버린 운 나쁜 매미.

조심성 없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까.


매미 일생을 생각해 보자니

탄탄한 거미줄에 거꾸로 매달려

이젠 움직임조차 없는

매미에게 번뜩 강한 연민이 느껴진다.


5년 7년 아니면 13년 17년


매미는 나무껍질사이 알에서 몇 주 만에 부화하여

땅속으로 기어들어가 성충이 될 때까지

그리도 긴 시간을 보낸다.


5년 7년 아니면 13년 17년.

매미가 땅속에서 지내다

성충이 되어 땅 위로 올라오는 기간은

대충 이렇다 하는데

거미줄에 걸린 저 녀석은

땅속에서 몇 년을 견디다

땅 위로 올라왔을까.


흙속에서 몇 번을 탈피하며

긴 유년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성충이 되어 땅 위로 올라

자유롭게 날아갈 날만 인내하며 기다렸을 터다.


땅을 헤집고 나와

나무 위로 기어오른 후

흙을 뒤집어쓴 채로 마지막 탈피를 하기까지

또 인내의 시간.


등껍질이 찢어지고 드디어 온전한 성충이 되어

세상으로 나온 후에도

힘 있고 멋진 날개를 가지기 위해선

온갖 천적의 위험을 피해 가며

쨍한 햇볕과 바람에 날개를 말려야만

아름다운 하늘을 날 수가 있다.


마침내 매미는 우렁찬 목소리로

열정을 폭발시키듯

길게는 한 달 짧게는 몇 주 동안

세상을 향해 운다.


매미는 한 달 동안

열정적인 울음으로 짝을 찾아야 하고

짝짓기를 하여 알을 낳은 후

미련 없이 생애를 마친다

그렇게 살아야 마땅할 매미가

호랑거미줄에 거꾸로 걸려버렸다.


짧지만 화려한 성충의 삶을 위해

흙속에서 몇 번이고 살이 터지는 탈피과정을

인내해 냈

이제 당당히 성충이 되어 세상에 날아오르다

걸려버린 거미줄.


그 매미는 이제

모든 게 부질없이 끝나버렸다.


매미의 사연을 알 리 없는 거미는

자기 몸통보다도 몇 배는 더 커다란

그 매미에게 다가가

가장 부드러운 연질을 찾아

침을 꽂아 넣고 성대한 식사를 한다.


화려한 세상을 향해 꿈을 키우며

매미가 인내하고 희망하던 시간의 끝이

이리도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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