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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Oct 09. 2024

마당을 나온 늙은 암탉씨. 알을 낳다

자연은 늙은 암탉씨와 수탉씨를 회춘시킨다.

처음 시골 생활을 시작했던 남도 깡촌 마을에서

우리는 사실,

닭과 오리를 어디에서사야 하는지 알턱이 없었다.

어디서  사야하는지 또

먹이는 무얼주어야 하는지

가두어 길러야 하는지 아니면

마당에 그냥 내버려 두고 길러도 되는지

한마디로 가축에 대해 아는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사한지 몇주가 흘렀을까

닭과 오리를 어디서 사야 할까. 고민하는데

마을 근처 양계장에서 나온 폐계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파는 닭장수가 나타났다.

닭 팝니다. 닭 팝니다. 세마리에 만워언!


트럭위 칸칸이 철장으로 짜진 좁은 닭장안에서

닭들은 토종닭 백숙이 되거나

이제 곧 닭도리탕이 될 팔자였다.


시골 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트럭안에서

이리 저리 흔들리는 트럭에 리듬을 맞춰

이리 저리 흔들리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는 참이었다.

 

마이크 소리를 듣자마자

슬리퍼를 대강 끼워 신고는 달려 나가서

만원에 세마리인 폐계 3마리를 사들였다.

 그 닭들이 어찌나 볼품이 없던지

얘네는 양계장에서 갇혀 살면서

아주 호된 살이를 한 모양이었다.


머리 밑으로 몸통까지 털들은

볼품없이 숭숭 빠져있고

온전해 보이던 닭벼슬마저도

어떤놈이 쪼아댔는지 여기 저기 찍혀서

군데 군데 벌겋게 피가 베어 나왔다.

겔겔겔겔거리는 것이

오늘 내일 오늘 내일,하면서

몇일안에 유명을 달리 할것 같았다.

 

우리집 마당에는

집주인이 만들어둔 닭장이 있었다.

그 구조는 베니아 판으로 뚝딱지었어도

구조는 이층집 양옥 닭장이었다.

일층은 공간을 충분이 띄워 올렸고

닭들은 이층 공간에서 지낼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었다.

 

새로 지푸라기를 깔아주고

볼품없는 암탉2마리와 수탉 한마리를 들여 놓았다.

암탉이야 양계장에서 죽어라 달걀을 낳아댔으니 그렇다쳐도

멀쩡해야할 수탉도 어찌나 모양새가 볼품이 없던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었다.


그 날은 유난히 더웠는데

닭장에서 골골 거리는 소리가 나서 들여다보았다.

머리통 밑으로 목살이 훤히 내다 보일정도로 털이 숭숭 빠진 암탉 한마리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15도 각도로 젖히고

허옇게 눈꺼풀을 뒤집어 쓰고는

두 다리를 쭈우욱 뻗고 바닥에 일자로 누워있었다.


순진한 우리는

닭이 누워서 그렇게 자나부다 생각했다.

진짜다.

점심무렵에 나가보니 그 닭은 그대로 였다. 죽은거다.

동네 어르신이 지나가다 그걸 보고 하시는 말씀이

닭은 더위에 약해서 너무 더우면

저렇게 밤새 안녕 한다.는것이다.


나머지 두마리도 겔겔 거리는것이

왠지 밤새 유명을 달리 할것 처럼 보이길래

일단 닭장문을 열고서

마당으로 나오도록 풀어 두었다.

한마디로

황선미 작가의 작품처럼

'마당을 나온 수탉과 암탉'이 된것이다.

 

황선미 선생님 작품속 주인공 '잎싹'마냥 우리집 암탉은 자립적이진 못했지만

암탉은 수탉의 보호를 받으며

마당 잔디밭에 지천인

지렁이며 메뚜기 여치 귀뚜라미등을 잡아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날 마당에 닭이 보이질 않길래

구구~ 거리며 불러 봤더니

마당 잡초를 뽑고 쌓아둔 두엄더미 위에 자리를 잡고는 그 안에 살고있는 지렁이며 온갖 벌레를 잡아 먹느라 두발로 두엄더미 속을 파헤치기 바빴다.


양계장에서 몇 년을 보냈는지 모를

이 불쌍한 닭들은

난생 처음 자연속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그렇게 한달쯤 지나자

숭숭빠졌던 목 주위의 털들이 꽉차 오르고

털에 윤기가 돌며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골골 거리다가도 우리가 장난삼아 와락 하고 달려들면 꾸왜액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붕 날았다.

한마디로 건강하고 멋진 닭들이 된것이다.


수탉도 그렇게 대략 한달을 보내니

털에 윤기가 돌고 품새가 멋지고 당당해졌다.

그 수탉의 꽁지털을 보면

이게 과연 닭인가 꿩인가 헷갈릴정도로

아주 화려하고 멋졌다.


멋진 외모는 거만함을 부른다.

수탉도 그렇다.

점점 멋지고 화려한 외양을 갖추자

수탉은 거만해졌다.


살짝 발을 딛었다가 냉큼 들어올려 한발짝 나가고

또 살짝 발을 딛었다가 냉큼 들어올리면서

한발짝 나가며

마당을 춤을 추듯이 절도있게 걸었다.

난 여기서 최고로 멋져.하듯이!


오일장에서 암탉 2마리를 추가로 사다 주었더니

암탉 3마리를 이끌고

유럽 성주처럼 마당을 휘젖고 다녔다.

걸음은 더 거만해졌고 꽁지털은 더 빛났다.

수탉의 건강 회복은

암탉의 건강 회복으로 이어졌다.


어느날 아침에 암탉이 시끄럽게 울어대길래

개가 또 닭들을 괴롭히나.하면

마당에 나가보았더니만

암탉 한마리가 대문쪽 커다란 나무밑에

몸을 착! 땅에 대고 앉아서

고올 고올 고올 소리를 냈다.


아이고! 개한테 물렸구나.하고 다가갔더니

닭이 놀라서 자리에서 퍼득 일어나 튀어나가는데

이게 왠일인가.

잡초덤불을 둥지삼아 앉아있던 자리에

동글하고 따끈따끈한 달걀 하나가 놓여있었다.


트럭에서 폐계라고 팔던 그 암탉이었다.

그때 그 닭을 팔던 닭장수 말이,

이 닭은 양계장에서 달걀을 계속 낳다가

이제 달걀도 못 낳고 골골거려 폐계로 나온것이니

아주 운이 좋으면 이 닭이 알을 낳을지도모르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마시라.하고

우리에게 일러 둔 적이 있었다.

폐계 암탉에게는 달걀은 기대도 안했던지라

정말 난 깜짝 놀랐다.


마당으로 나온 닭들이 건강해지고

털에 윤기가 돌긴 했지만

폐계가 다시 건강하게 알을 낳게 된다는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가.

그날 이후 그 암탉과

시장에서 사온 암탉 2마리는

서로 경쟁하듯이 마당 여기저기 알들을 낳기 시작했다.


수탉이라는 녀석은 모습은 화려해지고

당당하기 그지없긴 한데

수탉도 새 과라서

머리가 무척 나쁜 녀석이었다.


녀석은

거실 통창 앞 에어컨 외부기계위에서 앉아서

마당을 내려다보며

거기서 잠을 잤다.


매일 아침

내가 막대기를 들고

이놈의 닭 !내가 여기에 똥 싸지 말랬지? 하면서 위협하며 혼을 내도

그날 저녁에 보면 보란듯이 그자리위에 올라갔다.


마당을 훤히 내다 보면서

암탉들 보초를 서고

밑으로는 허연 닭똥을 내뿜으며

나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그런 존재였다.


주인인 내가 아무리 막대기를 들고

위협하면서 성화를 부려도

수탉은 암탉들을 밤새 지키고 보호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수탉은 수탉으로서 암탉을 지키는 본능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중이었다.


양계장에서 더 이상 쓸모없다고

닭장수에게 내쳐진 암탉과 수탉은

닭장수 트럭속에서 이제 곧 고기용도로

팔릴 운명이었으나

폐계가 무슨 뜻인지 몰랐던 나를 만났다.


덕분에

양계장에서 개인 집 고급 닭장으로 이사를 왔고

다시 닭장보다 더 멋진 마당으로 나와서

자유롭게 살았다.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자연에서 맘껏 자유롭게 살게하니

암탉은 암탉으로서 본능에 충실하여

다시 건강한 알을 낳았고

수탉은 수탉으로서 본능에 충실하여

암탉들을 지키며 다시 당당해졌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연의 치유력이 진짜 있긴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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