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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Feb 15. 2021

숙제를 받았는데 왜 하지를 못하니

병원에서 주는 임신 숙제, 부부가 마음이 맞지 않으면..  

결혼식을 한 바로 그 다음달부터 산부인과를 찾아간 이유는 단순했다. 


늦게 낳고 싶지 않다. 한 살이라도 더 빠를 때 낳고 싶다 


나의 원래 계획은 2020년 2월에 결혼해서 그 해에 아이를 가져서 출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찾아온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연기시켰다. 남들이 겨우 두 세 달 미루는 결혼식을 나는 코로나가 가을이면 끝날 줄 알고 무려 8개월이나 미뤘다. 그래서 조급했다. 


2월 첫 주에 결혼한 친구는 벌써 4월에 임신을 하고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같은 2월 결혼식이었지만, 마지막주에 예식이었던 나는 고작 3주 차이로 결혼식도 미루고 출산계획도 지연됐다. (식장을 폐쇄한 삼성, 사랑합니다) 


그래서 남들처럼 "신혼 좀 즐기다 애 가지려고요"는 인생의 사치이자 시간 낭비였다. 무엇보다 2021년은 내 나이 서른 여섯이 되는 해이다. 정확하게 만 35세 이상의 '노산'인 것이다. 


신혼생활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애가 생기기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늦을 것 같았다. 최대한 의학의 힘을 빌리기로 하고 산부인과를 찾아간 것이었다. 




"음, 지금 그냥 하시면 될 것 같은데"


남편 손을 이끌고 병원을 첫 방문한 날, 의사선생님은 지금이 배란 시기이니 오늘 집에 가서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해 보고 생리가 시작되면 바로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서 내원을 하라고 하셨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하늘은 무심했다. 다음 달인 12월에 바로 생리가 터졌다. 


그때부터 병원에 방문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길게는 7일, 짧게는 3일 간격으로 병원에 불려갔다. 


 "환자 들어오세요." -> "초음파를 한 번 볼까요?" -> "아직 덜 자랐네요. 자 주사 맞고 O월 O일 방문하세요" -> 병원 주사실에서 배에다 과배란 주사 맞고 퇴원하기 -> 다음 방문일까지 집에서 셀프로 과배란 주사 놓기 -> 다시 병원 방문 


병원에 내원하기 전에는 반드시 '셀프 배주사'를 놓아야 했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과배란 주사 두 대 정도를 냉장실에 보관해뒀다가 지정해준 날짜 아침마다 주사를 복부에 찔렀다. 


이렇게 과배란 주사를 배에다..(출처:국제신문)


선생님은 "환자는 생각보다 약물 반응이 늦네요. 오늘 주사 맞고 X일에 오세요"


다시 주사 두 대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와 정해진 날짜에 배에다 주사를 놓았다.  


몇 번의 내원 후 드디어 의사 선생님은 "거의 다 자란 것 같네요. 이제 숙제하시면 됩니다"라며 달력의 날짜를 가리켰다. "이 날, 이 날 숙제하시면 됩니다"


나는 숙제날 전날부터 남편을 졸랐다. "병원에서 지정해준 날짜는 내일부터이긴 한데, 인터넷 보니까 한 주 내내 하는 사람들도 있대"


 

남편은 내 말에 이끌려 숙제일 하루 전날부터 '시도'를 했다. 그리고 처참히 실패했다. 


무의식중에 느낀 부담 때문이었는지 남편은 "안 되겠다. 내일 제대로 하자"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다음 날에도 남편은 "미안해. 진짜 안 되겠어"라며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했다.


남편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어 "이번 달 놓치고 한 달 동안 나 또 고생하라고?"라며 투정을 부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편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한 번도 말을 듣지 않은 적이 없었던 '그 녀석'이 힘을 쓰지 못하는 걸 보며 나를 향해 오히려 "나 큰일 난 거면 어떡하지?"라며 걱정에 휩싸였다. 


나는 "그냥 이번 달 없었던 걸로 치자. 자기는 비뇨기과에 가 봐"라며 등을 돌리며 누웠다. 


숙제를 위해 한 달간 고생했던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마음이 크게 상했다. 시간이 아까웠고 이 노력을 또 다시 한 달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다. 


나의 반응에 남편은 남편대로 속상해했다.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몸의 문제인데 내가 "왜 못하는 거야"라고 야속하게 반응하자 남편은 남편대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서로에게 상처만 준 어색한 며칠을 보낸 후 남편이 말했다. "애 없으면 어때, 그냥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살자". 


나도 남편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했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서로에게 부담 주지도 말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 달 병원에 가서 할 말은 뻔했다. 


"선생님 숙제를 못했어요." 




이달의 검진료 


12월 2일 / 6만7020원 

12월 9일 / 18만1300원 (나팔관 조영술 포함) 

12월 12일 / 3만6320원

12월 16일 / 4만5920원


총 330,5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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