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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Sep 28. 2021

임신이 되었다. 과배란 3회차 만에

인간은 역시 삼세 번 시도해야...

결혼식을 치르자마자 난임전문 산부인과를 찾아간 것이 지난 11월이다. 


12월 첫 번째 임신 시도는 '실패'였다. 

병원에서 정해준 날짜에 숙제를 해야 한다는 나의 압박과 이로 인한 남편의 긴장감으로 인해 한 달간의 병원비를 고스란히 날렸다. 


남편은 이때 혹시 본인 몸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비뇨기과까지 찾아가 약을 처방 받았다. 다음 번 숙제 때 쓰기 위해서. 


그리고 찾아온 1월. 두 번째에는 겨우겨우 '숙제'를 해서 피검사를 통한 임신확인까지 받았다. 그러나 세포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아기집도 보지 못한 채 2월 설 연휴를 맞았다.  양가에 명절 선물로 '임신 소식'을 알리고 싶었던 나는 크게 절망했다. 


이렇게까지 굳이 해야 하나? 그냥 한 달만 쉬었다가 할까? 



하지만 노산으로 분류되는 30대 중반 여성에게 '시간이 금이었다'.  

이번에 한 달을 쉬고 나면 임신 계획은 또 저만치 멀리 달아나는 것이기에 세 번째 임신을 시도했다. 


"이번에 안 되면 진짜 바로 인공수정 해 버릴 거야"라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몇 배는 커진 과배란 주사를 주었다. 용량을 늘렸다는 것이다. 


일반 펜보다 더 두꺼워진 과배란 주사를 받아오면서 남편에게 "허허, 주사 크기 좀 봐"라고 했다. 

과배란을 시도할 때마다 점점 커지는 주사 크기만큼 '이번엔 좀, 제발, 성공해라'라는 마음이 커졌다. 


두꺼운 형광펜처럼 생긴 과배란주사 (출처: 한국 머크 홈페이지) 




임신 시도를 겨우 두 번했을 뿐인데 시간상으로 병원을 다닌지는 5개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간 쓴 돈만 해도 몇 십만원은 훌쩍 넘긴 터였다.  


주변 친한 지인들에게는 병원을 다니며 적극적으로 임신을 시도중이라고 알렸다. 


그러면 다들 하나같이 "다낭성 난소증후군이었으면 바로 인공수정 하지 그랬어" , "뭐하러 과배란을 세 번씩이나 해. 그냥 바로 인공수정 해 버려"라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더더욱 '내가 병원 상술에 놀아난 건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삼 세 번' 정말 딱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임했다. 


나처럼 엽산을 이렇게 임신 전부터 열심히 먹은 사람이 있나 싶다. 병원을 방문하면서부터 당근마켓, 주변 지인들을 통해 받은 엽산을 줄기차게 먹어댔다. 그렇게 비운 엽산이 벌써 세 통째다. 


남편과 나 둘 다 엽산을 열심히 먹었는데 운동을 열심히 안 해서 지난 번 임신이 제대로 안 됐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세 번째 임신 숙제를 하고난 후 임신테스트기를 해보기까지의 2주는 너무 길었다. 2주가 다 되어가자 임신테스트기를 하루라도 먼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은 더 강렬해졌다. 


2주를 꽉 채워서 기다리지 못하고 13일째에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해보았는데 결과는 '실패'. 


"내 이럴 줄 알았다" 


테스트기의 한 줄을 남편에게 보여주며 속상해하자 남편은 내 기분을 달래주겠다며 태국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와 남편은 똠양꿍 마니아다) 


똠양꿍, 팟타이, 쏨땀을 앞에 놓고도 나는 허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야. 나는 왜 진짜 안 되는 걸까" 


남편은 그런 나에게 "휴직해버리면 안 돼? 아무리 봐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 휴직 한 번 알아봐요"라고 말했다. 


휴직하란 얘기를 남편만 한 건 아니었다. '임신 계속 시도해도 안 되다가 휴직 첫 달에 한방에 됐다더라'하는 이야기는 주변 지인을 통해서나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여성에게 해롭다는 이야기이리라. 


나만 해도 얼마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집으로까지 가져와 괴로워했던가. 밤에 잠을 못 이루는 건 기본이요, 잠을 자고 싶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다음날 업무 생각에 새벽 3, 4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세 번째 임신시도까지 실패했으니 맥주 정도는 마셔도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태국 맥주 chang을 시켰다. 남편과 맥주를 주고 받는 와중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잔에서 그쳤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이 되어도 생리는 시작하지 않았다. 생리혈이 나와야 하는데 피가 보이지 않자 나는 다시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해보았다. 


'어랏..' 


어제까지만 해도 한 줄이었던 임신테스트기에 희미한 오른쪽 줄이 추가됐다. 이게 그 '두 줄' 맞나 싶을 정도로 흐릿한 두 줄이었다. 착시 현상인가 싶어 임신테스트기를 계속 형광등 불빛에 비추며 위 아래로 뒤집어가며 다시 봤다. 


이걸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또다시 임신테스트기를 꺼냈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 중 오른쪽 선은 어제보다 확연히 짙어졌다. 희미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어제처럼 내 눈을 의심할 정도는 아니였다. 나는 남편에게 얘기하지 않고 다음 날 한 번 더 테스트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이 나를 불렀다. 


"자기 임신테스트기 했어?" 


두 줄이 뚜렷하게 보일 때까지 남편에게 비밀로 하려고 했었으나 내 뒷정리 습관이 문제였다. 임신테스트기의 비닐 껍질을 화장실에 그대로 버려둔 것이 남편 눈에 띈 것이다. 


"으응. 확인해보니 두 줄이더라고. 근데 아직 희미하긴 해" 


남편은 "거봐, 내가 뭐랬어. 우리 이상없다니깐"라면서 나를 안아줬다. 어서 병원에 연락해보라는 남편의 조언에 따라 병원에 전화를 걸어 '임신 두 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통화를 하던 간호사는 내 지난 진료기록을 봤기 때문인지 지난번처럼 바로 피검사하러 병원으로 오라하지 않았다. "한 주 더 있다가 오셔서 초음파 보시겠어요?". 


피검사 수치로 임신을 확인했다가 저번처럼 임신이 아닌 걸로 되버릴까봐 '그러겠다'고 했다. 




대망의 병원 방문날. 남편과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했다. 병원을 다닌지 6개월만의 일이었다. 


임신을 확인받고나자 얼떨떨했다. 남편의 말에 따라 과배란 시도를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임신이 잘 되지 않았다고해서 바로 포기했더라면 이 아이를 만나는 일은 한참 더 뒤로 미뤄졌을 거다. 


병원에서 받은 분홍색 산모수첩에 초음파 사진을 붙였다. 


아기야, 엄마가 포기하려 할 때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 

엄마가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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