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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Sep 20. 2021

노산은 여유부릴 시간도 없다

만 35세 이상 예비 임산부에겐 걱정하는 시간도 사치

아기집까지 보지 못한 나의 임신은 실패였다. 

피검사로 임신을 확인했어도 아기집까지 보지 못하면 그건 임신이 아니었다. 


첫 번째 피검사 수치보다 전혀 오르지 않은 두 번째 피검사 결과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은 착잡함이었다. 

바로 며칠 전에 '임신이네요'라는 확인을 해 준 병원에서 이제는 '임신이 아니다'라고 하자 더 이상 병원에 다니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었다. 


지난번 피검사 때 받았던 착상을 도와주는 약도 얼른 끊어야했다. 먹는 약이 아니라 질에 삽입해야 했던 그 약. 매일 쭈구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질에 꾸욱꾸욱 밀어넣었던 그 약 때문에 임신이 실패했음에도 피가 나오지 않는 거였다. 


병원에서 시킨 대로 약을 중단하자 며칠 후 핏빛 덩어리같은 것이 휴지에 묻어나왔다. 단백질 덩어리같은 그것을 손으로 눌러보았다. 남편에게도 보여주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피가 나왔어요"라고 하자 간호사는 "예약을 잡아 드릴까요?"라며 물어왔다. 나는 간호사에게 "보통 실패한 직후에도 바로 다시 시도를 하나요?"라고 묻자 간호사는 "바로 연이어 해도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며 대게 그렇다고들 했다. 


과배란 시도를 더 하느냐 아니면 여기서 그만두고 그냥 자연의 순리에 맡기느냐의 선택이었다. 

임신 실패에 실망한 나는 병원을 더 가고싶지가 않았다. 병원이 놓아주는 과배란 주사를 맡고 정해진 날짜에 집에서 셀프 주사를 몇 차례 놓은 후에 다시 배란 크기를 확인하기 위해 질 초음파를 하는 이 과정이 지난하게 여겨졌다. 마치 어딘가의 면접에 떨어진 후에 다시 자기소개서를 쓰고 필기시험을 본 후 실무 면접, 최종면접까지 봐야 하는 느낌이랄까. 


예약을 차일피일 미루는 내게 남편은 시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올해 안에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지금 다시 시도하는 게 맞아. 여기서 우리가 멈춰버리면 내년으로 넘어갈 거고, 임신 시점은 점점 더 미뤄질 거야"


내 나이 36세, 노산, 임신에 필요한 기간 10개월. 


남편의 말대로 지금 여기서 멈춰버리면 까딱하다간 내년으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병원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한국인이 좋아한다는 삼 세 번. 딱 이번까지만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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