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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Oct 13. 2021

임신 후 오줌싸개가 되었다

왜 아무도 나한테 임신하면 오줌싸개 된다고 얘기해주지 않았냐.. 

임신을 하고 생기는 몸의 변화는 여러가지가 있다지만 나를 가장 당혹케 한 것은 기침 후 동반되는 '그것'이었다. 


기침을 하면 오줌싸개가 되었다. 


여느 때처럼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데 기침이 나왔다. 


엣취 


기침만 했을 뿐인데 속옷이 살짝 축축해졌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기침을 하면서 괄약근 조절을 잘 못했나 싶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기침을 동반한 요실금은 계속되었다. 


그저 나는 재채기를 했을 뿐인데 오줌이 새다니. 재채기를 할 때마다 오줌을 싸는 성인이라니. 


속옷을 갈아입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이 서른에 옷에다가 오줌을 다 싸보네" 




임신 관련 책에는 그저 '요실금이 생길 수 있다'라고만 나와있지, 이렇게 수시로 오줌싸개가 된다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책에 나온 임신 7개월차 관련 설명. 오줌을 지리는 임산부들이여. 케겔 운동을 하자! 


임신 이후 입덧도 없고 먹덧도 없던 내게 예고없이 수시로 찾아오는 요실금만큼은 내가 임산부임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세면대 앞에서 양치를 하다가 '에취'하고 재채기 한 번 했을 뿐인데 다리를 타고 오줌이 주르륵 흘러내리면 "에휴, 이번에도 역시군"하면서 주섬주섬 속옷을 갈아입었다. 


재채기할 때 어떻게 하면 요실금을 피할 수 있을까 싶어 재채기를 살살 하는 방법도 고민해보고 나름 방광쪽에 영향이 안 가게 해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처음에는 남편에게도 오줌을 지린다는 걸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그 횟수가 너무 빈번해지고 남편이랑 티비를 보다가도 주섬주섬 욕실로 가는 일이 생기자 남편에게도 터놓았다. 


 "나 기침하면 오줌이 나와". 


임신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곤 하지만 여자들이 이렇게 임신 때문에 오줌싸개가 되기도 한다는 걸 남편에게 알리고 싶었다. 


남편은 덤덤하게 "나는 자기가 가끔 임산부라는 걸 잊어"라고 말했다. 왜냐고 묻자 내가 임신 후 외형상 배만 불렀지 임신 전과 다름 없이 밖에도 잘 돌아다니고, 입덧도 없고, 잠도 잘 자고, 활발해서 때때로 임산부라는 사실을 잊는다는 거였다. 


듣고 보니 그랬다. 

임산부로서 유일하게 겪는 불편함이 '기침할 때 가끔 오줌싸개가 되는 것'이라면 남들에 비해 무탈한 임신기간을 보내는 것 아닌가. 어쩌면 나는 조부모님 세대가 말씀하시던(직접 들어본 적은 없지만) '밭 매다가 애 낳는 여자'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임신은 여성의 몸에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그런데 이 변화가 책으로 습득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여성이 처음 겪는 현상이라는 점,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불안감을 초래한다. 


특히 태아와 연관된 부분이 그렇다. 


임신을 하고 나서 생긴 습관 중의 하나가 음식을 먹기 전 해당 성분이 임산부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검색하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무언가를 먹으려 할 때마다 "그거 검색해봤어?"라고 재차 물었다. 


아무 고민 없이 음식물을 입에 넣으려고 할 때마다 제동을 걸어주는 남편 덕분에 무언가를 먹기 전 포털에 항상 'OOO(음식명) 임산부'로 검색을 한다. 


어느 날은 남편이 회사에서 가져온 콤부차를 마시고 있었다. 남편이 "근데 이거 괜찮나??? 검색 좀 해볼래?"라고 말했다. 


'콤부차 임산부'로 검색하자 알콜 성분 때문에 마시면 안 된다는 의견, 알콜 0%인 제품은 괜찮다는 의견 등등이 나왔다. 


조금이라도 몸에 해로울 것 같은 건 원천차단하는 남편 덕분에 그 이후로 우리집 냉장고에서 콤부차는 사라졌다. 


먹는 것 외에도 임산부에게 적용되는 "~~하면 안 되는"은 생각보다 많았다. 


임신 초반에 호텔 수영장의 자쿠지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야외 수영장에 있는 자쿠지 중 온도가 가장 덜 뜨거운 것 같은 자쿠지를 골라 들어갔다. 처음에는 다리만 담궜는데 상반신만 바깥바람에 노출되는 게 추워서 중간중간 자쿠지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오자 그제서야 걱정이 첩첩이 쌓이기 시작했다. 


임신 중에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던데. 아무리 잠깐 들어갔다 나왔다지만  배 속의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불안에 휩싸여 인터넷 검색을 하자 <임산부가 수영장에 가면 안 되는 이유> <임산부가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안되는 이유>가 줄줄이 나왔다. 


<임산부 수영장>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들. 대부분 절대절대 가지 말라고 한다. 


세균이 감염되어서 안 된다 / 양수가 데워져서 안 된다 / 뜨거운 물은 임신기간 내내 피해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남편은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며 "의사 선생님이 제일 정확해. 다음 번 진료 때 물어보자"라고 했다. 


진료일에 우리의 고민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양수가 뜨거울 정도로 데워지려면 물 온도가 몇 도 되어야 하는지 아세요?"라며 예비 엄마아빠의 질문에 '허허' 웃으셨다. 




그렇지만 이외에도 '임산부가 이거 하면 몸에(혹은 태아에) 안 좋다'는 것들은 꽤나 많았다. 


어느 날은 회사 동기가 "임산부들 여름철에 수박 못 먹는 거 보면 불쌍해요"라고 말했다. 수박철을 맞아 매일 수박을 먹던 나는 깜짝 놀라 "임산부가 수박 먹으면 안 된대요?"라고 되물었다. 


들어보니 태아 크기가 큰 임산부의 경우 나중에 애 낳기 힘들 것을 생각해서 과일 등을 잘 안 먹는데, 특히 수박같이 당분이 많은 과일은 먹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아가며 버틴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여름을 수박 없이 보낼 수가 있지?!'


양가 어머니께 과거에도 그랬냐고 묻자 "그런 얘기는 난생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또 어떤 날은 옆자리 직원이 "임산부 샴푸 쓰세요? 지금부터 임산부 전용으로 써야지 안 그러면 출산 후에 머리가 우수수 빠진대요"라고 말했다. (어째서 미혼인 직원들이 임산부인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가) 


출산 후에 머리가 빠지는 탈모 현상이 온다는 건 얼핏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임신기간부터 임산부 전용으로 써야 하는지는 몰랐다. 임산부 전용 샴푸를 살까 살짝 고민했지만 집에 쟁여둔 수많은 샴푸들이 아까워 생각을 접었다.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임신 관련해서 이런 세부적인 정보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되기위해 알아야 할 것들은 너무 많다. 그래서 불안한 예비 엄마들은 온라인 카페에 모인다. 나의 이 고민을 잠재우고 누군가에게 확인받기 위해서 말이다. 나보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혹은 조금 더 임신 주수차가 앞서 있는 누군가에게 물어서 답변을 받는 것만으로도 내 위험요소를 일부 제거할 수 있으니까. 


아아, 임산부 동지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매주 불안을 마주하며 살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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