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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Aug 17. 2023

남의집 애랑 놀아주느라 우리 애는 뒷전이어도 되는 건가

다른 집 애랑 놀아주느라 정작 우리집 애는 뒷전인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좀 많이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동육아방에 가끔 아이를 데리고 간다. 공동육아방은 키즈카페처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여럿 비치되어 있어 아기랑 실내에서 놀기에 참 좋다.


내가 사는 동네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에 있는 공동육아방도 이용할 수 있어 부모님댁 근처에 있는 공동육아방을 종종 찾는다.


이날도 무더운 더위를 피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아이와 놀아줄 요량으로 공동육아방을 방문했다.


공동육아방에서 아이랑 단둘이 놀고 있는데 어린이집 하원시간이 지난 4시쯤 왠 아주머니와 남자아이가 왔다. 아주머는 익숙한 듯 "어라, 오늘은 아무도 없네~" 이러면서 바로 벽쪽으로 직진한 뒤 등을 기대고 앉아버렸다.


우리 아이는 말 못하는 20개월, 그집 아이는 말을 술술하는 4~5세의 나이. 당연하게도 상대방 아이는 말 통하는 내게 착 달라붙어서 종알종알 떠든다.


우리 애가 먼저 다가갔는지 아니면 남자아이가 먼저 다가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쩌다보니 같이 놀게 되었다. 과일썰기 놀이를 하고 있는 딸에게로 다가온 남자아이는 찍찍이가 떨어진 과일들을 옆에서 다시 붙여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 과일은 뭘까요?" "이건 무슨 과일인지 저도 모르겠어요"하며 연신 놀이에 동참한다. 나도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그러게, 아줌마도 이건 무슨 과일인지 모르겠네. 외국 과일인가?"하며 반응을 해준다.


남자아이와 같이 온 아주머니는 아이가 노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는 상황. 멀찌감치 벽에 기대어서 잠 들 준비를 하고 계신다.


상황에 떠밀려 내가 보모 아닌 보모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이 입에서 "이 과일은 뭔지 선생님께 여쭤볼게요"하며 아주머니가 있는 벽 쪽으로 달려간다.


'아,,, 친할머니가 아니었구나.'


그 아주머니는 아이를 봐주는 하원도우미였던 것이다. 아마 아이를 하원시키고 매일 이 공동육아방을 방문했을 터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는 공동육아방에 들어오자마자 "오늘은 (익숙한 이가) 아무도 없네"라고 말하곤 바로 등을 기댈 벽으로 향한 것이다.


아주머니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휴식을 취하고 계신데 내가 이 집 애와 놀아주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 저 아주머니는 내가 이 애와 놀아줘서 속이 아주 편할테지.


이미 아이와 말을 터버린 이상 내 성격상 외면할 수도 없다. 이 아이도 누군가와 즐겁게 놀고 싶어서 이렇게 내 앞에서 말을 쫑알쫑알 많이 하며 '자기를 봐달라'고 하는 것일텐데 어떻게 거기다 대고 "미안, 아줌마는 우리애가 먼저야"하고 돌아서는가.


아이의 말에 맞장구쳐주고 반응해주는 사이 정작 우리집 애는 다른 장난감에 관심이 쏠려 저 멀리 가버렸다.


나 지금 누구 애 엄마인거니.. ?!

그 사이 공동육아방에 도착한 엄마들은 다 하나같이 자기애한테 밀착해서 놀아주고 있었다. 모든 애들이 자기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데 우리집 애는 저 멀리서 엄마 없이 혼자 놀고 나는 다른집 애랑 놀아주느라 바쁘다.


등하원 도우미 아주머니는 그 사이에 벌써 잠들었네? (아주머니 정말 너무하시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를 내칠 수 없었던 건 우리애도 언젠가는 등하원 도우미 아주머니 손에 맡겨질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등하원 아주머니에게 맡기는 동안 분명 어디에선가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실 터다. 그런데 믿고 맡긴 등하원 아주머니(심지어 아이가 꼬박꼬박 '선생님'으로 호칭하는)가 본인 아들을 저렇게 방치하는 걸 알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거의 1시간 넘게 우리집 아이는 뒷전이고 이 아이와 놀아주는데 내 기력을 다 써버렸다.


분명 우리 아이도 서운했을테지. 말 못하는 20개월이지만 얼굴에서 왠지 서운한 표정이 엿보이는 거 같았다.

'같이 있는 엄마가 나한테는 신경 안 쓰고 저 오빠랑 계속 쫑알쫑알 떠드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조부모님이 아니면 남의 손에 맡겨서 내 아이를 키워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앞으로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도 정부는 싱가포르처럼 외국인 입주도우미를 데려올테니 계속 남의 손에서 애를 키우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실제로 등하원 아주머니가 내가 직장에 가 있는 사이 어떻게 애를 봐주는지를 눈앞에서 목도해버리니 참으로 암담했다. (모든 등하원 아주머니가 저러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 아이는 뒷전이었지만 내가 전력을 다해 맞장구를 쳐주고 놀아준 남의 집 아이한테는 오늘이 즐거운 하루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 아이가 등하원 아주머니랑 공동육아방에 오는 수많은 날들 중 오늘만큼은 외롭지 않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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