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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Aug 14. 2022

무한경쟁 속에서 너와 내가 공존하는 법

얼마 전 놀라운 통계를 보았다. 어느 국제 조사기관에서 설문한 결과였는데, 질문은 단순했다. “대부분 사람은 믿을 수 있다”에 동의하느냐는 것이었다. 한국, 미국, 중국 등 10개국의 약 30여 년간의 통계치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수치는 최하위였다. 또한, 1980년대 38%였던 수치가 2010년대에 들어서는 27%로 11% 하락했다.      


이런 결과를 통해 미뤄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런 각박한 현실에서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 답을 잠시나마 생각해보았다.     


논어 7편 술이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공자 왈, 진리에 뜻을 두고(志於道), 곧은 마음을 간직하고(據於德), 사람답도록 애쓰며(依於仁), 예술을 즐겨야 하느니라(遊於藝).

논어 속에서 공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바는 어질 인(仁)이다. 한자의 의미로 해석해본다면, 사람(人) 2명(二) 이상이 모였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인간의 행동규범을 의미한다.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 속에서는 반드시 인간들 사이의 마찰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전쟁, 범죄, 가난, 속임수 등 거의 모든 사회 문제는 인간에 의해 야기된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일찍이 현상계에는 고통만 존재한다고 설했고, 이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행복해지는 길이라 했다. 이에 반해 공자는 예(禮)를 통해 현상계 속 인간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마찰을 줄여보고자 노력한 이들 중 한 명이다.      


서두에 언급한 ‘진리에 뜻을 두고, 곧은 마음을 간직하고, 사람답도록 애쓰며, 예술을 즐기라’는 공자의 이야기가 그 뜻을 담고 있다.      

진리에 뜻을 둔다는 것은 정신세계와 현상계 모두를 아우르는 불변의 지혜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진리는 현상계에 이르게 되면, 인간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진리에 뜻을 두고, 그것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곧은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 자체는 선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싯다르타는 본래 청정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 세상살이 속에서 때를 입게 되어 그 청정한 마음이 가려진다고 했다. 깨달음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원래 깨끗한 거울에 묻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면 그뿐이라 했다. 공자가 이야기하는 곧은 마음도 이와 같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람답도록 애쓰라는 것이 바로 인간으로 야기되는 모든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예의를 지키고, 서로를 배려하라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라는 것이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타인과 나를 바라본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 문제들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을 즐기라고 하였는데, 예술이란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y=ax+b 와 같은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학문 분야가 아닌, 답이 정해져 있지 않고 창발적이고 무작위에 의한 방향으로 문제와 답이 혼재된 것, 그런데도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예술의 특징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아름다운 예술작품은 자연이라고 생각된다. 고도의 연결망으로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고, 그 순환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뤄져, 항시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자연은 예술의 시작과 끝이다. 음악, 미술, 무용 등과 같이 예술로 분류되는 것들도 결국은 자연을 흉내 내기 위한 인간의 노력 중 일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힌두교에서 표현하는 아슈바타(Ashvattha) 나무는 그 뿌리를 하늘에 두고 땅으로 자라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땅을 밟고 살아가는 인간은 아슈바타 나무와는 반대의 경우가 더 익숙할 것이다.      

왜냐면 인간은 땅에서 자라는 음식을 섭취하며 육체를 보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에서 비롯되는 질서와 규칙이 더욱 가깝게 느껴질 것이고, 보다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땅에서 비롯되는 것들, 땅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그 수량이 제한되어 있기에 땅에서 비롯되는 것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 문제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소개한 논어 제7편 술이편 속 공자의 가르침을 나름의 준거로 해석을 해본다면,     

지향점인 진리의 뿌리를 하늘에 두고, 모든 인간은 공존을 위한 불변의 진리를 본래 지녔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하며, 그 청정함을 잃지 않도록 사회 속에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예의를 지킨다면, 가장 고귀한 예술작품인 자연 속에서 더불어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배려하고 사양하고 걱정하는 유교의 예의는 욕심으로 가득한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이 하늘의 뜻, 진리를 추구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유기적이고 효과적인 장치이다. 이를 시대에 뒤떨어진 미덕으로 치부한다면 인간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열쇠 하나를 강물에 냅다 집어던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무한경쟁 속 너와 내가 공존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타인을 나처럼 여기고, 남이 나를 대해주길 원하는 방식으로 남을 대하는 예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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