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삼키며

by 여름

울면서 일한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울면서 일하고 있었다.


혹여 누구에게 들킬까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꺽꺽,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기도 했다.


어째서인지 그 사람들에게 나의 노력은 늘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잠시만 쉬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물어뜯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서 쉬지 못했더니 그냥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려와서 청소해.'

'이것 좀 설거지해놔.'

'강아지랑 좀 놀아줘.'


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이름'만으로 불리곤 했다.

경비 정산할 것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온 회사를 뛰어다녀야 했다.


'냉장고 문이 안 닫혀요.'

'캐비닛 문이 삐뚤어졌어요.'

'에어컨이 안 돼요.'


나는 사무직으로 들어왔던 것 같은데 어느새 사다리를 잡고 있었다.

일과 시간 내내 그렇게 시달리니 정작 내 일을 할 시간은 없어서 야근이 일상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나는 게으르고, 요령 피우고, 노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어진다. 나를 향한 것이 아니어도. 그런 순간들 속에 자꾸만 노출되다 보니 제정신으로 있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떠나지 않으면 내가 언제고 죽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곳에서 오래오래 일하고 싶었다. 숨 쉬는 것을 잊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공허로 가득 찬 마음에 외로움만 남았지만, 그래도 남고 싶었다. 괴로운 일도 많았고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나를 응원해 주고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나는 남고 싶었다. 그래서 끝을 알리는 나에게 왜냐고 묻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것 같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 힘든 순간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부질없다고 해도, 그렇게 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라는 말로 서운함과 무력감을 덮었다.

그렇게 의식하기 시작하면 나는 금방 무너질 테니까.


나는 그냥 그렇게라도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내 스스로가 내 삶의 이유가 되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나는 타인을 삶의 지표로 삼았다. 그래서 이별은 늘 고통이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결국 두려움에 삼켜져 숨게 만드는 고통. 나는 그렇게 매번 삶의 지표를 잃었다. 마음은 가난해졌고, 가난은 채울 수 없는 허기를 가져왔다.


여전히, 울음을 삼키는 순간들이 온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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