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에서 보내는 수요일 아침
아침 8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과감히 끄고, 침낭 속을 파고 든다(집주인에게 받은 이불이 낡고 먼지가 많아 한국에서 챙겨 온 침낭을 덮고 잔다). 그리고는 전기장판에서 올라오는 느긋한 온기를 폭 감싸 안는다.
오늘은 수요일,
출근하지 않는 날,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않는 날이다.
임지 생활 초반엔 언제 잠이 들어도 아침 6시면 눈이 떠졌는데, 언제부터인지 늦잠도 곧 잘 잔다. 이곳에서 맞이했던 모든 것들을 잘 소화하고 있다는 내 몸의 소심한 표현인 듯하다. 몸이 원하는 만큼 푹 자고 눈을 뜨면, 어느새 시간은 9시 반이다. 평소 같으면 벌떡 일어나 씻을 준비를 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날. 내가 원하는 만큼 오롯이 내 시간을 누려도 되는 날이다.
밤새 웅크렸던 몸을 하나씩 펼치며 침낭 밖으로 엄지발가락을 빼꼼 꺼내 오전의 공기를 간 본다. 일어날까 말까, 혼자 바쁘게 침대와의 밀당을 마치면 재빨리 침낭 밖으로 몸을 꺼낸다. 처음부터 부지런히 일어나려던 사람처럼 호다닥. 그리고는 꾸역꾸역 주방으로 발길을 옮겨 커피포트에 물을 담고, 서서히 가열되는 물의 리듬에 따라 찬찬히 집안을 살핀다. 쥐똥을 찾는 것이다. 이사 온 다음 날 쥐와의 새벽 추격전을 펼치고 그와의 동거 사실을 알아챘을 때부터 매일 아침 쥐똥을 찾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쥐는 괄약근이 없어 그가 지나간 곳에는 배설 흔적이 남는다는 초록 창 선생님의 말에, 아침마다 쥐똥을 찾으며 또 다른 세입자의 활보를 살핀다.
그의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면, 그때부터 진짜 아침이 시작된다. 뜨뜻하게 끓인 물에 레몬 한 피스를 우려 조금씩 평화로운 오전을 삼키면서. 초조하고 바쁘게 돌아갔던 한국에서의 아침과는 달리, 이곳의 아침은 여유롭고 평온하다. 인자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정신없이 달리는 시간의 등을 토닥이고, 소들의 풀잎섞인 묵직한 배설 향이 바짝 날 선 아침 고유의 긴장감을 나슨히 쓰다듬는다.
이렇게 오롯한 나의 아침이 온몸에 흡수될 때면, 지난 일주일 동안 내 마음을 켜켜이 짓눌렀던 것들을 하나씩 덜어낸다. 매번 마주하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감, 물리적 소외감으로 인한 두려움, 스스로 만든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하나씩 덜어낸다. 그리고는 따땃한 햇살 아래서 멍을 때리며 마음의 긴장을 푼다. 빠알간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 만든 떡볶이를 먹으며 꽈악 뭉친 마음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날씨에 어울리는 음악을 이것저것 돌려 들으며 마음 스트레칭도 해준다. 그렇게 나의 오롯한 아침을 양껏 누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근육도 말랑말랑해진다.
오늘은 수요일,
출근하지 않는 날,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날,
오롯한 나의 아침을 누리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