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며, 운동하며
김가장의 멘탈 관리 비법, 1부에 이어 계속해서 같이 알아보자.
직장을 다니고 집안일을 하는 등 일상의 주름에 끼여 살다 보면 노래방은커녕 노래 부를 시간 조차 없다. 요즘엔 홈 노래방도 잘 되어있고 김가장의 집에도 홈 마이크가 있지만, 아파트라는 한계 때문에 마음껏 목청 높여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글 쓰는 것 역시 많은 시간과 여유를 필요로 하기에 일을 해야 하는 이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에는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오늘은 김가장의 멘탈 관리를 위해 노래를 부르거나 글을 쓰는 것 외의 시간을 채워주는 것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TV에 나오는 부부의 모습 중 마치 짜 놓은 장면인 양 클리쉐처럼 되풀이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아이가 있든 없든 주말만 되면 외출하려는 아내와 그저 방구석이나 소파에 앉아 쉬기를 원하는 남편의 투닥거림, 이는 이제 TV 광고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김가장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집안의 여기저기를 손보고 허드레 일하는 걸 즐기는 김가장이긴 하지만 그는 외출을 사랑한다.
김가장은 어린 시절부터 심부름을 좋아해 크고 작은 장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딱히 살 것이 없어도 쇼핑몰이나 번화가(시내)를 나가는 것도 좋아한다. 과거, 김가장은 휴대폰을 바꾸거나 옷을 살 때가 되면 날을 정하고 혼자 시내로 나갔다. 피쳐폰 시절에는 보통 휴대폰 매장을 10곳을 돌아다니며 비교 분석한 뒤 휴대폰을 바꾸었고 옷을 살 때도 백화점, 몰, 시내에 있는 매장 등 김가장의 스타일에 맞으면서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옷이 있는지 모두 확인한 후 옷을 샀다. 무턱대고 보이는 대로 샀다간 여느 몰에서 특가로 1~2만 원이나 더 저렴하게 옷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마련이고 김가장은 그런 손해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런 쇼핑몰이 있고, 그런 매장이 있으며, 그런 매장에 저렴하게 옷을 판매하는 매대 혹은 장소 (보통 초특가 세일로 클리어런스 하는 곳)가 있다는 것조차도 많이 다녀봐야 아는 법. 보통 남자들은 장 보러 가거나,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서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며 윈도쇼핑 (아이쇼핑의 바른말)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가장은 다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외출을 좋아하는 남자다.
김가장에게 장을 보러 마트를 방문한 것은 뭐랄까, 크고 작은 세상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환상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에는 어떤 물건이 신상으로 나왔나?’, ‘그 과자는 바닐라 맛 외에 초코맛은 출시 안 되었나?’ 등등 특정 제품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것을 보는 것은 굉장히 즐거웠고 이를 맛보는 것은 더 황홀하다. 게다가 마트에는 먹을 것만 있지 않다. 녹색 잎사귀 뽐내는 화분도 둘러보고, 신상 랩탑과 휴대폰 등으로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전자기기 코너도 둘러보고 스툴, 의자 등 홈 파츠도 구경하고 다양한 미니카와 드론에서 레고까지 가득 쌓인 장난감 코너를 둘러보는 재미도 굉장히 쏠쏠하다.
본격적으로 쇼핑에 들어가면 상황음 좀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오리온에서는 무슨 과자를 새로 내놓았고, 오뚜기에서는 또 어떤 간편식을 내놓았는지, 이번 시즌의 롯데의 반값 할인 제품은 무엇이고, 또 어떤 회사의 콘칩이 크라운 콘칩의 아성에 도전하는지 등등 확인하고 볼 것은 천지에 널렸다. 기본적으로 이런 신상 과자를 구경하는 것부터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폭탄 세일하는 식료품을 얻을 수 있는 득템 코너는 장 보러 갈 때 굳이 계획하지 않아도 매번 둘러보는 단골 코스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재고 떨이나 유통기한 임박품을 처분하기 위함이 대부분이라, 야심 차게 세상에 몸을 던졌지만 제 몫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특가 할인 코너'에 앉아있는 녀석들을 보자면 조금 짠한 마음이 들어 개중에 몇 개는 손에 짚게 마련이다. 물론, 김가장이 이런 식료품을 고르는데도 기준은 있다. 쓸모가 있을 것, 맛있을 것. 그런데 이렇게 저렴하게 고른 제품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는 매번 깨닫는다.
‘흥행과 완판에는 이유가 있구나.’
장 보거나 쇼핑을 하는 것 외에도 김가장은 걷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지역을 놀러 가면 그 지역 동네의 골목이나 큰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어쩌면 생애 다시는 보지 못할 그 지역만의 평범한 풍경과 건물들을 눈에 담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장소나 분위기를 발견하면 얼른 카메라를 켜서 사진을 찍는다. 김가장은 이런 계획되지 않은 외출과 낯선 곳의 탐방을 통해 머릿속의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가슴에 침잠되어 있는 짜증 섞인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외출을 통해 일종의 버림과 갈아치움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한 작은 카타르시스의 효과는 꽤 며칠을 간다. 날씨마저 좋아 구름, 햇살, 산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기가 막히면 수개월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김가장에게 외출은 이렇게나 효과적이다.
김가장은 운동하는데 돈을 써본 적이 거의 없다. 어린 시절에도 주산, 피아노, 컴퓨터 학원을 로테이션하며 평일을 보낸 적은 있었지만 운동과 관련된 것은 없었다. 굳이 태권도를 다니지 않아도 활동량도 많고 매일 나가 온 동네방네 뛰어놀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가 돈을 주고 운동을 해본건 딱 두 번이다. 대학생 때 한 달 정도 헬스를 간 것과 3년 전 10여 개월 정도 복싱을 배운 것. 김가장은 운동에 돈을 안 썼을 뿐, 운동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게다가 운동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중요한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다. 하지만 운동 비용에 대해서는 스크루지 같은 그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어떤 운동을 하는 걸까?
2004년이었다. 군대에서 막 제대한 그는 꾸준한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몸을 키우기보다는 나이가 들어도 유지되는 체력과 근력을 기르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마음을 먹은 직후 그는 집 앞 놀이터에 있던 철봉에서 무작정 턱걸이를 시작했다. 군대에서도 1세트에 18개 정도를 했기에 20개까지는 금방 늘었다. 턱걸이는 전신운동에 속하는 맨손 운동으로 어깨는 물론, 삼두, 이두 그리고 복근과 허리까지 턱걸이 한 번에 모두 관리할 수 있는 효율이 매우 뛰어난 운동방법이다. 따라서 철봉을 평생 운동으로 정한 그에게 동네마다 찾을 수 있는 맨손체조 공원과 학교 운동장마다 설치되어있는 철봉과 평행봉을 보노라면, 굳이 돈을 쓰면서 운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의 운동법은 매년 조금씩 달라졌다. 이사를 간 동네에 조깅 코스가 있으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조깅을 포함시켰고, 몇 년 간은 줄넘기 천 회를 기본 운동으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루틴 운동법이 다양하게 교체되는 와중에도 턱걸이는 빠지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일주일에 서너 번 하던 빈도는 한 번으로 바뀌었지만 지금은 1세트에 41~50개를 하며 근력을 유지하고 있다.
김가장은 현재 3년째 실내에서 운동을 한다. 헬스장이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온동을 한다. 기본적인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하체 발차기 후 복싱장에서 배웠던 '원투', '원투+어퍼컷 세트', '훅 100회 한 세트'로 몸을 풀고 약 4분 동안(원래 1라운드는 3분) 폭풍 같은 쉐도우 복싱을 한다. 이 때 쉐도우 복싱은 단순히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게 아닌 위생봉투 1쌍을 유리테이프로 방문 입구에 붙여놓고 이를 샌드백 인양 무빙을 섞어 펀치를 날린다. 이때 운동량이 상당해 한 세트를 마치면 한 겨울에도 땀이 날 정도로 매우 효과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 이후, 손가락을 구부린 세트를 포함한 팔 굽혀 펴기 및 고무 밴드를 이용한 양팔 & 손목 근력 운동 등 약 1,000회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 운동 세트는 이틀에 한 번씩 실시한다.
운동광이나 헬창들이 보기엔 귀여운 운동일 수 있겠지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춥든 덥든 지속할 수 있는 김가장이 만든 홈트레이닝에는 장점이 많다. 첫째, 무료다. 둘째, 운동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운동하러 나가기'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셋째, 실제로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많이 푼다. 회사에서 이 일, 저 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은 퇴근하기 전까지 운동을 기다릴 정도다. 위생봉투에 누군가의 얼굴을 주입해 펀치를 날리면 운동효과와 스트레스 해소는 배가된다.
주먹 하나에 얼굴 하나. 오늘 나를 짜증과 분노로 가득한
속 좁은 아이로 만든 얼굴들이 위생봉투에 오버랩된다.
'휙, 휙', '칙, 칙' 이는 김가장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봉지에서 나는 소리다.
이외에도 그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많지만 2주간에 걸쳐 발행된 김가장의 멘탈 관리 비법 4가지는 꽤 오랫동안 김가장의 멘탈을 저렴한 비용에 합리적으로 관리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더 이상 김가장의 주변 사람들이 김가장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넌 그렇게 심심하게 살아서 뭘로 스트레스 푸냐?’
오늘도 김가장의 복싱 위생봉투는 초당 10번을 왕복하는 그의 주먹을 받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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