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김가장의 멘탈 관리 비법 1부

글 쓰며, 노래하며

by 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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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원래 그래, 스트레스는 디폴트(default) 값


김가장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기호식품이나 취향을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삶은 일반 대중의 평균 특히, 같은 남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조금 심심하다. 그의 사적인 삶을 보더라도 보통 성인 남성이라면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음주가무를 곁들인 건전한 유흥 조차도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가장은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그리고 삼십 대의 막바지인 지금까지도 그 약속은 깨지지 않았다. 여러 그룹의 친구들과 자주 만나던 젊었던 시절에도 김 가장은 아예 술을 마시지 않았다. 친구 중에는 술을 꽤 마시거나 적당히 한두 잔 정도 하는 애들도 있었는데 고맙게도 김가장과 만날 땐 '밥+커피 패턴'의 모임에 흔쾌히 동조해주었다. 그때쯤 친구들도 서서히 술을 줄여나가고 있었다. 20대의 패기로 마시는 술을 30대의 육체가 감당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당연히 술자리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럴 때 김가장은 스프라이트를 시키거나 물을 마셨다. 하지만 술 마시는 친구보다 안주를 더 먹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술은 술을 부르지만 스프라이트는 치킨을 부르니까.


게다가 올해 들어선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과의 외부 일정이 거의 전무해진 사회적인 상황도 이에 일조했다. 하지만 유흥에 관한 한 그의 삶의 패턴은 코로나 이전에도 비슷했다. 무서울게 없이 찬란히 밝았던 20대와 삶에 자신감이 붙은 30대 초반이 지나자 그 많던 모임과 친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썰물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소문난 잔치 후의 텅 빈 공터처럼 허전했다. 마치 해무가 지나간 뒤 남겨진 뻘 위의 투명한 공허함 같았다. 하지만 이내 뻘 아래 웅크리고 있던 게와 조개들이 밖으로 나오며 광활한 뻘밭을 온통 활력으로 채웠다. 김가장의 삶은 그렇게 완전히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 포기하지 않으면 삶은 언제나 ‘생각지 못한 것들’로 채워진다. 처음엔 그 시간들을 활용할 방법을 몰라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도 했지만 그 낭비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김가장은 낭비를 싫어하니까. 아, 낭비가 비효율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는 환경적응력이 꽤 빠른 편이다. 오죽하면 군 시절 어느 선임이 '넌 군대에서도 뭐가 그리 재밌냐. 군대를 즐기는 것 같다. 못 박을래?’라는 말을 했을까.


하지만 제아무리 자신의 삶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해도 학창 시절이나 사회생활에서 일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이나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고 이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되어 삶의 걸림돌이 된다. 영혼의 성장을 위한 수양이랄 수도 있겠지만 이는 후행적인 관점에서의 긍정적인 피드백일 뿐, 현실을 돌파 중인 이들의 귀엔 쇠귀에 경 읽는 정도의 조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건 일종의 소화이자 배설 행위다. 풀고, 털어내고, 비운다는 말이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크게 두 가지 패턴이 있다. 첫째, ‘스트레스의 주원인이 되는 어떤 것 혹은 어떤 이’와 이를 해결하는 것. 하지만 사회 속의 관계 문제는 '너네 둘이 싸웠지? 싸움은 나쁜 거야. 화해 해.'처럼 단순하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둘째, 스트레스의 원인을 떠나 완전히 다른 것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해소일뿐 적극적이고 확실한 해결 방법은 아니다.


여전히 스트레스의 주원인이 저기 어디쯤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후, 그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날 정도다.’ 만약, 이렇게 느낀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이미 사회에 기여 중인 진정한 성인이다.


사회에는 저마다 다른 성격, 기준, 방법 그리고 취향을 가진 이들로 넘쳐나기에 이를 테트리스처럼 끼워 맞춰 한 칸씩 날려버리며 지워나갈 순 없다. 따라서 보통은 두 번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음주, 끽연, 맛집, 여행, 운동 등으로 이를 해결하게 마련이다. 김가장은 음주도 끽연도 하지 않지만, 맛집, 여행, 운동은 좋아한다. 그런데 단순히 이를 행한다고 스트레스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많던 싱아'는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갔지만,
김가장의 스트레스는 어디로 간 걸까?


콘텐츠 기획과 생산의 기쁨


이게 무슨 모회사 콘텐츠팀 분기별 기획 보고서 쓰는 것 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김가장은 학창 시절부터 무언가 쓰고 그리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아주 짧은 단편 글이나 장르물에 가까운 글 따위를 쓰거나 짧은 만화를 그려 형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아주 체계적이거나 엮어 책으로 만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마 그 시절부터 콘텐츠 생산 즉, 글쓰기의 기쁨을 알았나 보다.



그의 본격적인 글쓰기는 직장생활이 시작된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요즘엔 트위터나 인스타에는 짧은 글귀나 시를 써서 올리는 사람이 굉장히 많지만 김가장이 글을쓰던 당시에는 페이스북에 시나 깨달음에 관한 짧은 글을 써서 올리는 이들은 드물었다. 따라서 그는 이를 모아 당시 유행하던 전자출판을 하기도 했었다. 김가장은 또 다큐와 자연, 동식물에 관심이 많아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코리아의 제안으로 2년간 공식 블로거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가 시간에 할 일이 생기니 지루할 틈이 없었고 자신이 생산한 콘텐츠가 노출되고 소량이지만 팔리기까지 하니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콘텐츠 제작은 머릿속 얽힌 스트레스의 실타래를 풀어내 돌돌 감아 다시 온전한 한 뭉치로 만드는 것과 같았다. 가뜩이나 회사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데 집에서도 일을 해야 하냐면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김가장은 오히려 이 과정이 좋았다. 원하는 대로 쓰고 발행하면 그만이니까. 즉,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제맘대로' 콘텐츠에 실어 날려버리는거다.


한 번은 ‘매력적인 여자 또는 남자가 되는 법’이라는 컨셉의 글을 올렸다.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소소한 생활의 팁에 대한 그의 뇌피셜을 쓴 글인데 사람들의 반응이 꽤 괜찮아 '매력적인 여자가 되는 법', '매력적인 남자가 되는 법'이라는 전자책으로 엮고 그 외 시, 짧은 글귀를 모아 총 7권의 책을 만들어 500권 정도를 팔기도 했다.(권당 1천 원) 하지만 김가장은 궁극적으로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자신이 만든 세계관에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오고 이에 공감하며 자신의 세계관에 들어온 독자들과 상호작용하며 세계관을 키워나가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드는 꿈을 지금까지도 꾸고 있으니 말 다했다.


그런 김가장은 2012년 어느 날 갑자기 현대 판타지물인 ‘The Plan’을 쓰기 시작했다. The Plan은 천사와 악마의 대립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평범한 대학생인 ‘경주’가 겪는 모험을 다룬 소설인데 이는 당시 신생 소설 콘텐츠 플랫폼이었던 북팔의 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무려 첫 고료(5만 원)를 받고 무료 연재를 시작했다. 이후 플랫폼을 문피아로 옮긴 김가장은 인류와 로봇이 공생하는 미래에 대한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은 미래 SF 소설인 'A Human Mission'을 연재 완료했고 아직도 무료로 볼 수 있다.


'A Human Mission (휴먼 미션)' 보러가기

http://mm.munpia.com/?menu=novel&id=36168&renewal2=TRUE



그리고 지금도 뭔가 쓰고 있는데.. 쓰고 있다. 계속.


노래, 짧지만 강력한 스트레스 해소법


김가장은 노래를 좋아한다. 아니,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이 더 맞겠다. 하긴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재밌는 건 김가장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본인이 노래를 얼마나 어떻게 부를 수 있는지 자신의 노래 스타일이나 고음 등의 한계를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그러다 김가장 본인의 노래 레벨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당시 다니던 성당 친구들과 거의 매주 노래방엘 갔었는데, 이는, 초 6 때 부모님과 부모님 친구네 가족과 처음으로 노래방을 가서 '옹달샘'을 부른 이후로 처음으로 간 노래방이었다. 가요를 부른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떤 노래를 불러도 다 불러지는 게 아닌가. 심지어 여자 노래도. (자랑이 아닌 어디까지나 김가장의 주장)



이후 노래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며 이를 즐기기 시작한 김가장은 어쩌면 가수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아주 짧게 락밴드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친구들끼리 수능을 치르고 나면 밴드를 결성해서 축제에서 공연을 한 뒤 졸업하자던 약속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당시, 일렉 기타 1을 맡은 친구는 이미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베이스를 담당하던 친구도 교회에서 단련한 솜씨로 꽤나 잘 쳤으며, 건반을 담당한 친구는 학교를 다닐 땐 너무 조용해서 존재감이 미미했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건반 실력에 다들 놀랐다. 그리고 드럼을 담당한 친구는 2학년 때만 해도 드럼을 배우는 꿈만 키우던 아이였는데 수개월간 드럼 학원을 다니며 속성으로 공연을 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마지막으로 김가장이 보컬을 맡았다. 그렇게 ‘만세 밴드’가 결성되었다. 만세 밴드라는 밴드명은 베이스를 치던 친구가 지었는데 ‘만원 지폐와 세종대왕’의 줄임말로 한글을 창제한 민족 최고 위인인 세종대왕의 얼굴을 가진 만원 지폐가 대한민국의 얼굴을 담당하는 정치인들의 검은돈으로 쓰이는 세태를 풍자하는 의미를 지닌 밴드명이었다.


김가장이 속한 만세 밴드는, 한 번의 실수(마산시 청소년 가요제에서의 김가장의 가사 절임)를 자양분 삼아 학교 축제를 목표로 2주 동안 넘게 매일같이 연습하고 준비했다. 당시 불렀던 노래는 퀸의 ‘We are the champions’, 정경화의 ‘나에게로의 초대’, The Wonders의 ‘That thing you do’였다. 그리고 마침내 학교 축제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반 친구들의 열렬한 응원, 축제에 놀러 온 여중고생의 우레와 같은 함성은 김가장의 가슴속 추억의 앨범에서 여전히 아-주 가끔씩 재생되곤 한다.

그래서 김가장은 가수의 꿈을 꾸었을까? 아니.


스트레스는 해결이 아닌 관리가 필요하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7시간이 넘는 연습시간, 수능이 끝났음에도 개인의 자유 시간을 찾을 수 없는 빡빡한 스케줄을 경험한 김가장은 ‘개인의 삶’이 보장되지 않은 가수의 길은 어쩌면 자신의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고3까지 12년 간의 꽉 막힌 공교육을 버텨왔는데 또다시 빈틈없는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던 것이다. 그래서 대학을 가서는 밴드는 하지 않았다. 대신 학교 축제에 나가 수상을 하기도 했는데 본선 무대에서는 자신의 다음 무대에 김경호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종종 그녀와 코인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가던 20대 때와는 달리 어떤 해에는 노래방을 한 번도 갈 일이 없을 만큼 유흥과는 먼 삶을 살다 보니 다시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 억지로 노래방을 찾게 되었다. 확실히 노래를 부르며 뱉어내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도 문제를 이겨내거나 우회로를 찾을 수 있는 에너지를 얻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김가장은 생각했다. 삶의 문제는 어쩌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사람들은 저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있고 취향에 따라 대안을 선택한다. 따라서, 김가장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만의 방법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을 때가 많다. 물론, 매번 통하는 건 아니지만.


김가장의 멘탈 관리 비법, 아직 두 개 더 남았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지니 나머지 두 개는 다음 주에 확인해보자.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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