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승무원의 꿈 그리고 현실 2부

김가장의 잔혹 취업 생존기 시리즈 1-2

by 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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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기다림

기다림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알 테다. 기다리는 동안은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혈압 측정 결과를 세브란스로 보낸 뒤 조금 긴장이 풀린 김가장은 다시 학원을 나갔다. 김가장은 친구들로부터 1차 합격 때보다 더 큰 환대를 받았다. 그렇다. 김가장은 그 학원의 영웅이자 레전드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김과장과 함께 승무원을 준비하던 친구들도 평균 1년 이상을 준비한 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2개월을 준비하고 첫 면접에, 그렇게 큰 항공사에 합격을 한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몇몇의 눈빛은 선망과 감탄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일부는 축하의 환호 뒤편으로 숨긴 씁쓸함과 부러움의 그늘이 느껴져 김가장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단다.


아무튼 김가장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원장님은 이제 합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학원을 매일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 하셨다. 하지만 김가장은 꾸준히 공부하러 나갔다. 친구들은 ‘합격했는데 왜 나왔어? 흥.’이라고 하면서도 인터뷰랑 토론에 잘도 참여시켜줬다. 그와 함께 캐세이 퍼시픽에 합격했던 학원의 선생님도 학원에 나와 수업을 하며, 출국 전까지는 학원생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학원으로서는 겹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원장님은 플래카드를 만드신다고 난리였단다.


아까 말했듯이 김가장은 전국의 합격자 친구들과 안부를 묻고 지냈다. 최종 합격 안내와 일정 발표는 10월 초부터 개별 이메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미 면접은 모두 합격한 김가장이었지만 9월 말부터 최종 결과가 담긴 이메일이 온 10월 말까지 김가장은 매일매일 이메일을 확인하며 피 말리는 한 달을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 식욕도 없어 살이 쏙쏙 빠졌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아 집 주변을 배회하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친구들은 취업 때문에 공채에, 지원에 바쁜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김가장은 나름 합격을 한 상황이라 취업 준비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최종 이메일이 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만약 나쁜 소식이라면.. 김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합격 릴레이


10월 초중순경부터 많은 사람들이 최종 통지 및 일정 이메일을 받았다면서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김가장은 그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왜 자기에게는 아직 안 올까’하며 궁금하고 긴장돼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중에도 컴퓨터실로 가서 수시로 이메일을 확인했고 입맛이 없어 학식을 남기기 일쑤였다. 학교 친구들은 김가장이 밥을 남기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의아해했다. 그 친구들도 취업 준비로 입맛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어느 날 오후, 합격자 중 친하게 지내던 한 아이로부터 합격 이메일이 왔다며 좋아서 펄펄 날뛰었다는 문자가 왔다. 김가장도 덩달아 기쁜 마음으로 신나게 축하해줬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 친구는 김가장에게도 곧 이메일이 갈거니 너무 걱정 말고 홍콩에서 재밌게 일하자며 그를 다독였다. 10월 중순이 되자 안부를 묻던 친구들도 모두 하나 둘 이메일을 받았고, 김가장처럼 합격 소식이 너무 늦게 와서 전전긍긍하며 끙끙 앓던 친구도 10월 중순을 넘어 말경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합격 소식이 와서 또 김가장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 친구는 기뻐 죽겠다는데 김가장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먼저 합격 연락이 온 친구들은 이제 승무원이 되기 전 주변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느라 바쁜 반면, 김가장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느라 바빴다

김가장의 속은 타들어가다 못해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며칠만 지나면 10월도 끝이 났다. 그런데 여전히 총 합격자 60여 명 중 김가장을 포함해 5명은 이메일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김가장은 입맛 자체가 없어져서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사실, 10월 중순부터는 혹시나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단다. 친구들은 불길한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말라며 그의 그런 생각을 무마시켰지만, 김가장은 이미 합격한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다리다 지친 그는 홍콩의 캐세이퍼시픽 본사에 직접 전화를 해서 문의도 했지만 똑같은 대답만 날아들 뿐이었다.


‘모든 합격 소식은 이메일로 갈 겁니다.’


때문에, 김가장은 집에서 혼자 이메일을 확인하고, 승무원 카페에 들어가서 합격자들의 준비 소식을 보면서 다시 꿈을 키우다가도, 금새 현실로 돌아와 캐세이 합격자 관련 인터넷 검색을 하는 등 답이 없는 무한 루프만 행하다 너무나도 답답하고 막연한 심정에 하루는 침대에 엎드려 혼자 훌쩍이고 있었다. 답답한 심정에 이런저런 현실적인 생각이 들더니 저절로 눈물이 났다.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강아지(밤비)가 김가장에게 다가와 흐느끼는 김가장의 등을 대고 같이 누워 위로해줬는데, 그는 그날 밤비의 작고 따뜻한 등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김가장, 결과를 받아들이다


드디어, 10월의 거의 마지막 무렵, 캐세이 퍼시픽에서 이메일 한 통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항상 99% 적중한다고 했나. 김가장은 아직도 이메일을 열기 직전의 감정을 기억하고 있단다.


‘불합격이구나. 그래, 어쩌면 다른 기회를 찾으라는 신호일지도, 이 길은 내 길이 아닐지도 몰라.’

김가장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클릭’


이메일에는 단 두 줄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대략, 지원해줘서 감사하다. 하지만 다음 기회에 도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단 두 줄, 그 두 줄을 받으려고 한 달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굶다시피 하며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낸 김가장은 갑자기 온몸을 감싸고 있던 불안의 감정이 손끝을 타고 모두 빠져나가는듯한 후련한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끙끙 앓던 걱정이 현실이 됐음에 망연자실한 기분 또한 들었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래서 단 두 줄의 이메일을 읽은 김가장은 멍하니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시계의 초침은 째깍째깍 흘러 30여 초가 흘렀다. 김가장은 곧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에잇, 캐세이는 내 길이 아니구나. 됐어.’


김가장은 오히려 이렇게라도 답이 온 게 너무 좋았다고 한다. 아무런 소식 없이 결정의 날을 기다리는 동안 초긴장된 상태로 밥도 못 먹고 불면증에 시달린 한 달 반을 보내고 나니, 비록 불합격이지만 너무나도 홀가분하고 개운한 마음이 되어 눈물은커녕 아무런 감정의 기복이 생기지 않았단다. 깔끔하게 잊고, 같은 합격자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로 결심한 김가장은 곧바로 캐세이 퍼시픽 합격자 모임 카페에 접속해 이런 글을 남겼다.


‘저는 아무래도 같이 홍콩으로 못 갈 것 같아요. 합격하신 분들 정말 축하드리고 열심히 제 몫까지 비행해주세요. 언젠가 각자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좋은 모습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2007년 캐세이 퍼시픽 공채는 최종 55명 합격, 5명 불합격으로 막을 내렸다. 김가장을 포함한 총 5명, 저마다 사유는 다를 수 있겠지만 신체검사 결과가 꽤나 혹독했던 것 같다. 김가장은 자신을 제외한 4명의 소식을 들을 순 없었지만 같이 불합격한 동지로서 멀리서나마 랜선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안개는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아직 긴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김가장은 다시 인터뷰와 토론 준비를 하기 위해 학원으로 나갔다. 지난여름 함께 열정을 불살랐던 친구들은 김가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술렁였다. 합격자가 왜 학원에 나오냐며 놀리지 말고 꺼지라는 둥 친구들은 그를 조롱하고 멸시했다. 물론, 장난이다.


‘나, 떨어졌어.’


순간, 정적이 흘렀고 다들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에 김가장은 차분하게 설명했고, 친구들은 그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와 손을 잡고 위로했다. 어떤 친구는 울상이 될 정도로 걱정해주었는데 김가장은 이런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면접을 준비하는 일상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그의 현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친구 중 몇몇은 그에게 다가가 뜻밖의 고백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나 네가 캐세이 합격했다고 했을 때, 너무 부러워서 질투 났었어. 난 3년을 준비 중인데 넌 두 달만에 됐잖아. 질투 났었는데 그래도 네가 거기 가서 또 좋기도 했어. 널 보니까 나도 곧 갈 것만 같고.. 그런데 이렇게 돼서 괜히 내가 미안하네..’


곧 원장님이 오셔서 김가장을 달랬다. 하지만 김가장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왜 떨어졌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하지만 캐세이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더 이상 캐세이 퍼시픽에 집착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김가장의 친구들은 대부분 공채를 통해 여기저기서 취직 소식을 알려왔고 김가장은 모든 공채 시기를 놓친 후였다.


꿈은 또 다른 꿈으로


11월과 12월에 아시아나 항공을 포함해서 두세 곳의 면접을 봤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김가장은 캐세이 하나만 기다리다 4학년 2학기를 통으로 보내버렸기에 마음은 두배 세배 급해졌다. 게다가 수개월을 항공사만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일반 기업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여전히 학원을 다니는 중이었고 다른 친구들의 항공사 합격 소식 또한 하나둘 전해오기 시작했다.


빈 강의실에 앉아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던 김가장. 그때 부원장님(원장님의 남편 분)이 빈 강의실로 들어왔다. 그에게 응원의 말을 하며 앞으로 어떻게 준비 중인지 묻던 부원장님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김가장은 ‘힘 내’라는 부원장님의 한 마디에 무너져 그만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캐세이가 그렇게 돼서 너무 서러웠고, 다른 항공사들도 모두 불합격이고, 일반기업에는 아무런 취업 준비가 안 되어있는 현실이 너무 답답히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몇 분을 흐느끼던 김가장은 금세 울음을 그치고는 죄송하다고 했다. 부원장님은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며 위로해주셨다. 김가장은 그저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을 뿐 해결책을 바란 건 아니었기에 그 말씀만으로도 감사했다.


괜찮아. 김가장은 꿈이 많으니까


이듬해 봄, 학원의 유일한 최종 합격자인 선생님은 홍콩으로 훌쩍 떠났고 몇 개월 후 김가장은 서울의 몹시 작은 통번역 회사에 취업했다. 그리고 2008년 하반기쯤, 김가장은 그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김가장과 함께 비행하기를 고대했던 그분도 김가장의 불합격 사유가 너무 궁금해 수개월을 기다린 후 인사과를 통해 김가장의 면접 인사 기록을 확인했단다.


결과는, ‘고혈압으로 인한 건강상의 사유로 불합격 처리.’


즉, 세브란스 병원의 공식 검사 기록이 아닌 타 병원의 혈압 기록은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한 김가장. 어쩌면 승무원의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니었다는 걸 빨리 인정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지 않냐며 현실을 더 채찍질했다. 김가장은 그 선생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승무원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이유인즉, 2008년의 김가장은 또 다른 즐거운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ajunews.com/view/20191205142324757

https://unsplash.com/s/photo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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