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장에게 그날과 그 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목표했던 꿈이 현실이 되는 문턱에서 거대한 운명의 손가락이 마치 바둑판에서 알까기 하듯 ‘탁’하고 튕겨내는 바람에 일장춘몽에서 깨 허탈한 지경이 되었던 전래 동화 속의 장사치처럼 꿈같던 현실이 연기처럼 흩어진 그날. 아직도 그 순간은 기억 속에 영원처럼 저장되어 있기에.
아쉬운가. 아니.
각설하고. 김가장의 지난 사정을 좀 들여다보겠다. 김가장은 대학교 4학년이던 2007년 여름 방학,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 않은 꿈을 가지게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즉흥적으로 가진 꿈이랄 수도 있지만 나름 자신만의 소신은 있었다. 바로, ‘승무원’, 그것도 ‘외항사 승무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승무원, 하늘의 풍경과 채광에 반한 선택
이유는 거창하진 않았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경치, 구름, 그리고 해 질 녘 기내로 들어오는 채광과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전 세계를 다니며 각국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승무원이 되면 대략 5년 정도는 비행하고 그다음은 국내 항공사로 옮기거나 지상직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너무 쉽게 생각했고, 이후의 장래에 대해서는 뚜렷한 계획 없이 뛰어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나름 명쾌했고 부모님도 쉽게 승낙하셨다.
그렇게 대구 동성로의 한 승무원 학원에 등록한 김가장은 여름 방학 두 달을 정말, 매일같이 학원을 나가 수업을 듣고 공부를 했다. 기내 방송, 몸가짐, 인사법, 발음 교정은 물론, 메이크업 수업까지 받으며 매일매일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꿈을 꿨다. 그중에서 하루도 빼먹지 않고 했던 건 바로 영어 인터뷰 및 영어 토론이었다. 목표로 하는 곳이 외항사였으니 당연히 영어는 기본, 따라서, 영어 인터뷰와 영어 토론 준비는 너무나도 중요했다. 외항사 출신이자 선생님이셨던 분이 팁과 조언도 많이 해주었는데, 그분의 조언을 듣고, 주요 인터뷰 문항을 8~90여 가지를 만들어 달달 외웠고, 수 십 가지 토픽의 영어 토론을 준비했다.
다행히도, 당시 같이 공부했던 같은 팀 친구들은 굉장히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이도 비슷했고 남녀 비율도 적당했다. 매일 같이 밥 먹고 인터뷰하고 토론하는 게 마치 놀이 인양 너무도 즐거웠다. 그렇게 8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고, 두 달을 열심히 준비한 김가장과 친구들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전 세계 항공 노선, 홍콩 베이스인 케세이 퍼시픽에서 7년 만에 한국 승무원 공채를 한다는 것이었다. 김가장에게는 첫 번째 기회였고 최소 6개월에서 수년을 준비한 친구들에게는 중요한 기회였다.
참고로 김가장은 케세이 퍼시픽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다. 2006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던 당시 생애 처음으로 탔던 비행기가 케세이 퍼시픽 항공사였는데, 기내에서 극심한 두통으로 두통약을 요청하자, 한 능숙한 승무원이 친절하게 약을 건네준 뒤 몇 번이고 그에게 가서 괜찮은지 물으며 그를 따뜻하게 케어했고, 장기간 비행이라 그럴 수 있다며 김가장을 안심시키며 다독여줬던 것이다. 그 이후로 김가장에게 케세이 퍼시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항공사가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김가장은 케세이 퍼시픽에 항공 승무원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9월 초 서류 접수가 끝나고 이를 통과한 이들의 첫 면접 일정은 서울 강남이었다. 전국에서 무려,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원했고 그중, 수 백 명에게 면접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김가장의 학원에서도 그를 포함하여 4~5명 남짓이 서류를 통과해 모두 면접을 보러 서울로 올라갔다. 당시, 대학교 때문에 경산에 살던 김가장은 한 손에는 KTX 열차표, 다른 한 손에는 정장 가방을 들고 열차에 올랐다. 서울역 지하철 화장실에서 능숙하게 정장으로 갈아입은 그는 면접 장소였던 리츠칼튼 호텔(현, 르메르디앙 호텔)로 갔다. 부푼 가슴을 안고 첫 면접을 보러 간 김가장, 호텔 안은 이미 수 백 명의 미남미녀로 가득 차 있었다.
얼떨떨한 1차 면접: 단체 영어 토론
1차 면접에서는 각 팀당 총 11~12명 정도가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 다 같이 영어 토론을 했다.
주제는 대략 ‘비행 중, 몸을 불편해하는 승객의 요구사항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던 것 같다.
많은 경쟁자들이 저마다 의견을 뽐냈다. 다들 너무 좋은 의견이라 속으로 맞장구치던 그는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좋은 의견에 동조하고 그 의견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너무 좋은 대안들이 많이 나와서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특히, 김가장의 옆자리에 있던 남자분의 의견이 좋아 그분의 의견에 찬성한다며 칭찬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단다. 당시, 김가장의 머릿속에는 합격이나 탈락보다는 좋은 경험을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각 팀에서 대략 1~3명 정도가 합격했는데, 결과는 토론이 끝나고 나갈 때 면접관이 인사를 하며 건네주는 쪽지의 색깔에 달렸다고 했다. 분홍색이었나, 노란색이었나. 아무튼 특정 색의 쪽지를 받으면 합격이라는 뜻이고 쪽지를 열어보면 그 안에 다음 면접 일정이 나와 있었다. 탈락한 이들은 수고했다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 같다. 토론 후 김가장은 다른 후보자들과 함께 자리에서 나와 쪽지를 받았다. 쪽지 안에는 다음 면접 일정이 있었다.
그 옆에 앉아있던 남자분도 분홍색(노란색?)을 받았다며 흥분하며 신나 했다. 김가장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얼떨떨해하며 축하해줬다. 그분은 꽤 오랫동안 승무원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붙고 싶다며 같이 합격하자는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다음 면접은 약 1주 뒤였다. 합격증을 가지고 대구의 학원으로 간 김가장은 온갖 축하 인사와 함께 큰 환영을 받았다. 학원 내에서 1차 합격을 한 인원은 김가장과 학원 여자 선생님 1명 이렇게 두 명이었다. 여자 선생님은 비밀리에 진행 중이라 모른 척 해줬다. 여하튼, 아직 2차 면접과 신체검사가 남았기에 긴장을 풀기엔 일렀다. 김가장은 승무원을 준비한 지 2개월이 조금 넘었고, 케세이 퍼시픽은 첫 면접이었다. 당시, 학원 원장님이 케세이 퍼시픽 출신이셨는데, 때문에, 김가장에게 2차 면접까지만 잘 보면 된다며 기운을 불어넣어주셨다.
자신감 넘친 2차 면접: 1대 1 개인 면접
다시 서울로 올라온 김가장. 그는 또다시 서울역 화장실 첫 번째 칸에서 정장으로 갈아입고 리츠칼튼 호텔로 향했다. 1주일 만에 서울역 화장실을 다시 찾은 그는 첫 번째 변기 칸에 반가움마저 느꼈다. 2차 면접은 각각 개별 방에서 외국인 여성 면접관과 1대 1로 진행했는데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면접을 봤다. 간단한 자기소개는 물론, 왜 승무원이 되고 싶은지부터 좋아하는 노래는 뭔지 등등 이력서에 있는 내용부터 이력서에는 없는 내용까지 질문했고, 성공했던 기억과 실패했던 기억도 물었던 것 같단다. 퀸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분위기가 좋아서 살짝 불렀더니 면접관이 좋아라 했었다나. 결코, 오버하지는 않았다. 50여 분이 흘러 면접이 끝나자 옆방으로 가라고 해서 가보니 몇몇 후보자들이 줄을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서류 작성 등 마지막 점검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모든 것을 끝내고 나온 김가장에게 면접관 두 명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See you in HongKong.’, ‘네? 정말요? 저 합격인 건가요?’
아직 신체검사가 남았지만 김가장의 가슴은 당장이라도 홍콩으로 떠날 듯 쿵쾅댔다. 신체검사는 9월 말경이었다. 승무원 인터넷 카페에 케세이 퍼시픽 합격자 모임 방이 만들어졌고 전국에 있는 합격자들이 한방에 모였다. 2차 합격자는 총 49명. 김가장은 그렇게 두 달 만에 초고속으로 승무원이 되는 듯 한 기분에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대구의 학원으로 돌아온 김가장은 학원장 및 친구들의 대대적인 환영은 물론, 신체검사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케세이 퍼시픽은 신촌의 연세 세브란스 병원을 신체검사 지정 병원으로 하고 합격생들에 대한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이즈음 추가 합격자가 발생해 합격생은 총 60명이 되었다.
대망의 신체검사
2주 뒤 신체검사를 받으러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한 김가장은 웬 선남선녀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였나 싶을 정도로 뛰어난 미모들을 자랑하는 합격자들을 보며 저절로 겸손해지고 공손해지는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그중 몇몇과는 금세 친해져 온라인과 문자 메시지로 우정을 다지기도 했다.
드디어, 김가장의 차례.
다른 검사는 모두 문제없이 마쳤는데 혈압이 자꾸만 높게 나왔다. 수축기 혈압이 거의 140~150 사이로 나왔던 것 같다. 간호사가 신체검사를 거의 마칠 무렵, 다시 재자고 해서 쟀지만 여전히 140대 후반으로 나왔다. 그러자 간호사는 집으로 돌아가서 동네에서 다시 혈압을 잰 뒤, 세브란스로 보내달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김가장은 짐을 싸서 서둘러 경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대구의 한 작은 병원에서 혈압을 쟀고 수축기 혈압은 120대가 나왔다. 김가장은 안도했고 기쁜 마음에 같은 학원의 합격자 선생님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 선생님도 김가장의 합격과 홍콩에서 같이 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는지 이후에 자신의 영어 과외 건을 그에게 넘겨주기도 하는 등 상당히 친해졌다.
김가장은 수축기 혈압이 120대로 나온 문서를 세브란스에 팩스로 보냈다. 그렇게 김가장의 신체검사는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 신체검사 후 이견이 없으면 무조건 받게 되는 ‘입사 일정’에 대한 이메일, 바로, 그 이메일이 합격자 개개인에게 발송되는 10월 말 경의 마지막 발표날을 기다리는 피 말리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