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장은 아주 오랜만에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는 중이다. 시간은 벌써 새벽 1시를 넘어 2시에 더 가까워졌지만, 오랜만에 느낀 기대와 흥분에 마치 소풍 가기 전날의 기분과 비슷한 유년기 시절의 감성에 가까워졌다.
‘드디어 그 날이야’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등 국내 유수의 대형마트를 모두 섭렵하고 각종 생필품들의 평균 가격과 마트별 차이점까지 간파한 그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코스트코는 아직 미지의 세계였다. 미지의 세계는 모험, 머나먼 여정 그리고 그 안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미션들과 함께 불 타오로는 모험욕을 불러일으키지 않나. 따라서, 코스트코는 김가장에게 대모험의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 들어는 봤을 게임인 스타 크래프트는 초반, 게임의 맵 상에는 자신의 위치 외엔 모든 곳이 검은색으로 가려져있다. 물론, 해당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스캔 등의 기술을 사용하면 그 지역의 지도가 밝아지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즉, 아직 볼 수 없는 지역은 직접 가지 않는 이상 끝까지 어둠의 영역으로 남아있는데, 김가장에게 코스트코는 그런 미확인의 영역이었다.
코스트코: 모험의 서막
연회비, 삼성(지금은 현대) 카드 only 그리고 전 세계 매출 1위로 코스트코 회장을 울린다는 ‘양재 코스트코의 유명세’는 김가장에겐 반드시 경험하고 달성해야 하는 대형마트계의 ‘리니지’와 같았다. 그에게 유료 멤버십 비용을 내고 마트를 이용한다는 건 그전까지는 돈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사치 정도로 생각했기에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 1위 양재 코스트코의 위용
그에게 이는 마치, 동네 슈퍼를 방문할 때마다 방문 비용으로 500원씩 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사실, 유료 회원제인 코스트코에서 장을 본다는 것은 결혼 전에는 감히 꿈도 꾸지 않았던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다. 그런데 이제 그 성벽을 허물러 가는 것이다. 바로 내일 아침.
양재 코스트코의 주차 전쟁은 유명하다. 여느 코스트코가 주차하기가 쉽겠냐만도, 양재 코스트코는 전 세계 1위 매출을 자랑하는 것만큼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 7시에 기상해서 8시 오픈 전까지 가더라도 양재 코스트코의 건물을 빙 둘러 ‘미음자’ 모양으로로 줄 서는 일명, ‘ㅁ’ 자 지옥에 줄을 서야 한다. 그 줄에 합류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차량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자들과의 엄청난 기싸움, 하지만 클락션을 빵빵거리거나 도저히 끼어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냉철함 속에서도 창을 내리고 인상 쓰거나 험하고 무서운 말을 하는 광경은 이 날로부터 4~5년이 지난 지금도 본 적이 없다. (코스트코 쇼퍼 클라쓰) 아무튼, 주말 아침부터 그럴 용기와 체력이 없다면 김 가장이 체득해서 얻은 황금 시간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단, 이는 가변적이며, 황금시간대도 언제든지 지옥의 공성전이 벌어지는 전장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름, 코스트코 방문 황금 시간
- 금요일을 포함한 평일 밤 9시 이후: 밤 10시가 종료 시간이지만, 10시 전에 입장했다면 잠시 동안은 쇼핑을 할 순 있다. 마감 눈치는 양심껏. 이외에는 안타깝게도 없다.
그녀와 함께 처음으로 방문하는 코스트코로 향하는 김가장의 가슴은 두근댔다. 그는 곧 악명 높은 코스트코 주차 줄에 편승 후 지루한 기다림을 이겨내고 마침내 코스트코에 입성했다. 지옥의 주차 줄에서 수 십 분을 기다릴 때만 해도 알카트라즈 같이 느껴지던 이 사각의 거대한 요새도 마침내 입성하고 나니, 끝없는 모험이 펼쳐진 신대륙 같았다. 초대형 창고 같은 아주아주 높은 천 장고, 저걸 어떻게 꺼낼까 싶을 정도로 높은 빌딩처럼 쌓여있는 공산품들, 마치, 외국의 마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안내 문구와 표지판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마다 배치되어 쇼퍼들의 안전을 돕는 안전요원들.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모험을 세계에 들어온 김가장에겐 모든 것이 모험과 탐구의 대상이었다.
코스트코 안에는 이미 장 보러 온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카트를 끌며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마치 파자마를 입고 온 듯 편한 복장으로 마트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연회비를 내고 왔다고 생각하니 그런 옷차림에서도 삶의 여유와 부의 향기가 느껴졌다.
입구부터 국내 마트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1층: 던전 입구
그래서 일까. 코스트코 양재점의 1층에는 명품이 있다. 대형 마트에 명품이라니. 김가장과 그녀는 코스트코의 상징인 대형 카트를 끌고 명품 시계와 가방이 진열되어있는 장소로 서둘러 구경을 갔다. 그냥 구경만. 그의 쇼핑 목록에 명품은 없었으니까. 다행히, 그녀도 명품에 집착하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그래도 사주면 좋..
둘은 곧 가전 코너를 슬쩍 둘러보고는 의류 코너로 이동했다. 코스트코에서는 본 매장에서 사기엔 조금 비싼 브랜드의 옷을 저렴하게 판다. 비싼 가격 때문에 본 매장에서는 구경만 하는 폴 x나 스포츠 브랜드지만 결코 저렴하지 않은 나이x 후드 집업 등등. 가격도 괜찮고, 큰 사이즈도 많아, 이후 의류 코너는 김가장네가 코스트코를 올 때마다 꼭 방문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심지어 옷만 사고 간 적도 있으니.
김가장은 생수를 찾기 시작했다. 워낙 방대하게 큰 곳이고, 처음 보는 낯선 분류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라, 첫 방문이라면 당황할만하다. 알고 보니 생수는 1층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세제, 화장품, 작은 가구 등 다양한 제품을 지나치고 나서야 제 위치를 드러낸다. 생수만을 사러 온 쇼퍼들에게 다양한 물건들을 보여주며 현혹시켜 쇼핑 목록에 없는 물건을 사게 만드는 고도의 전략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며 멀티 무드등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집 안 어딘가에 있을 텐데 보이질 않는다.
'자 그럼 이건 일단 한 묶음만 하고'
김가장이 생수 한 묶음을 번쩍 들었다가 카트에 내려놓았다. 비로소 (멀티 무드등 외에) 코스트코에서의 첫 물건이 카트에 담긴 것이다. 식료품은 모두 지하 1층에 있어, 거기로 가는 길을 찾던 김가장은 에스컬레이터를 발견하곤 그녀와 함께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물건 배열도 대충 알겠고. 코스트코도 별다를 건 없군. 이젠 여기도 식은 죽 먹기’
어깨에 한 껏 여유를 부리며 카트를 끌고 이동하던 김가장은, 다른 쇼퍼들의 이동 동선에서 뭔가 미심쩍은 행동 패턴을 발견했다. 분명, 지하 1층은 에스컬러이터로 이동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와 반대 방향으로 카트를 끌고 가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옆으로 곧 기다란 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타임세일 같은 행사인가?'
마침내 에스컬레이터에 다다른 김가장과 그녀는 에스컬레이터 옆으로 70여 미터 넘게 늘어선 기다란 행렬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뿔싸, 코스트코에서는 장을 보러 온 쇼퍼들이 몰린 시각에는 일부 통로를 차단하고 줄을 서서 지하로 내려가야 하는 걸 몰랐던 것이다. 김가장은 마음이 급해졌다. 아까 생수를 가져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줄을 서야 한다는 것에 당황스러움과 얼른 가지 않으면 줄이 100미터도 넘게 길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에 부랴부랴 다시 이동했다.
다행히,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간혹 그처럼 이곳의 시스템을 몰라 중간에 끼어드려는 사람도 있었고, 잠시 한 눈을 팔아 앞사람 카트와 간격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사이로 마치 칼치기하듯 모른 척 비집고 들어오는 이도 있었다. 명심하라. 냉혹한 정글에서는 누가 내 목덜미를 물지 모르니 휴대폰을 보며 한 눈을 파는 행위는 피하길.
지하 1층 삼대장: 고기, 회 그리고 제철 과일
하지만 그의 혼란스러운 감정은 이내 잦아들었다. 지하 1층의 조리된 식품 및 냉장 고기 코너의 훌륭한 품질과 저렴한 가격이 칼치기로 불편해졌던 그의 마음을 삽시간에 풀어줬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파는 닭고기보다 3배는 더 커 보이는 통닭구이를 7천 원 정도에 살 수 있고, 성인 일곱 명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는 갈빗살도 3~4만 원이면 살 수 있는 곳. 이곳이 코스트코다. 나중에는 연어 등의 회초밥과 사시미는 물론, 장어와 전복도 자주 사 먹었는데 식당에서 사 먹는 비용과 비교해보니 두세 배는 저렴했다.
그리고 김가장에겐 고기, 회 외에도 코스트코를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코스트코의 첫 방문 이후, 김가장이 코코(코스트코)를 갈 때마다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사는 것, 이는 바로 제철 과일이다. 코스트코의 과일은 양이 많고 당도가 매우 우수하며 단가를 따지더라도 외부 일반 마트보다 대부분 싼 경우가 많기에 김가장은 계절마다 과일 사서 먹는데 특히, 명절 선물용으로는 꼭 코스트코 과일을 이용했다.
주로 그가 쇼핑하는 과일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체리, 수박, 멜론, 자두, 레몬, 자몽, 귤, 오렌지, 포도, 샤인 머스캣 등등
과일마다 좋은 상품을 고르는 특성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김가장이 발견한 몇 가지 공통적인 불문율이 있다. 단, 모든 과일에 적용되는 건 아니다.
1) 껍질이 단단할 것: 이는 설익어서 단단한 것과는 다르다. 너무 익으면 약간 물렁하고, 아직 수확시기가 아니면 굉장히 딱딱한데, 그 중간의 단단함이면 좋다.
2) 제 색을 띠되 광채가 있을 것: 물론 광채가 없이 매트한 과일도 있다. 하지만 좋은 열매는 스스로 빛을 낸다. ‘여기야, 여기! 나 잘 익었으니 제발 따가서 잡숴봐.’ 보통 이러고 있다는 말이다.
3) 과즙이 흐른 자국이 없을 것(또는 박스에 과즙으로 젖은 부분이 없어야 함): 이는 과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유통 과정 상의 문제인데, 제 아무리 좋은 과일도 보관 및 운송에서 문제가 생기면 상품성이 떨어진다. 즉, 선물용으로 가치가 낮아진다는 뜻이다.
4) 향이 진할 것: 좋은 과일은 아주 달달하고 진한 향이 난다. 이런 향은 KF94도 쉽사리 뚫고 들어온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좋은 과일의 특성은 모두 다르다. 가령, 수박의 경우, 줄기가 굵고 새파란 것, 아래쪽 똥x 부분의 원형이 작은 것 등의 과일마다 다른 개별적인 특성도 있지만 대충 위 4가지가 김가장이 과일을 고르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한 때 자주 해 먹던 마늘빵. 준비물: 코코 모닝롤, 꿀, 다진 마늘 그리고 광파 오븐
그리고 마침내, 그 유명한 제과 코너에 당도했다. 대가족이 먹을 사이즈에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는 케이크부터 베이글, 모닝빵 등등 김가장은 이날 이후 지난 수년간 다양한 빵을 즐겨먹었다. 모닝빵으로는 ‘꿀+다진 마늘’로 광파 오븐을 이용해 ‘파리바 x뜨’의 마늘빵보다 5배는 진한 마늘빵도 만들어 먹었고, 한동안은 초콜릿 머핀 등 코코 머핀에 빠져 사 먹다가, 최근에는 마스카포네 치즈가 들어간 롤케이크를 자주 먹었는데, 외부에서 파는 비싼 크림 롤 케이크보다 3배 저렴하고, 3배 이상 양이 많으니 참고하시길.
마지막으로 김가장이 주로 육포, 수입 초콜릿, 커피 등을 구매하는 가공식품 코너로 갔다. 육포는 그녀의 최애 간식으로 매번 한 두 개를 구매했다. 그리고 초콜릿 역시 벌크로 판매하기 때문에 한 번 구매하면 몇 개월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봉지 과자류는 종류가 많지는 않다. 해외에서 많이 먹었을 레이스 감자칩이나 치토스 치즈볼 같은 수입 과자 외에 국내 봉지 과자는 몇 개 없다. 따라서, 김가장은 봉지 과자류는 일반 국내 마트에서 구매한다. 어차피 코코는 매달 가는 게 아니라 분기에 한두 번 정도 가기에 이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드디어 결제의 시간.
김가장은 계산대에서 다시 한번 냉혹한 현실과 직면했다. 코코 회원카드를 보여주고 계산을 기다리던 그는, 꼭 필요한 것만 (벌크로) 카트에 넣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40만 원이 훌쩍 넘는 계산서에 눈을 의심했다. 일반 마트에서는 장을 봐도 10만 원대 혹은 그 미만이었는데, 이곳은 레벨이 달랐다. ‘역시, 연회비내는 부자들이 오는 마트라..’
“일시불로 해주세요.(훗)”
40만 원어치의 장을 단번에 결제하는 김가장의 어깨는 평소보다 더 넓고 당당했고, 카드를 꼽고 사인하는 그의 손놀림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여유로웠지만 그 이후, 단 한번도 일시불 결제를 하지않았다. 참고로, 코코에서는 계산 후 영수증 검사를 한다. 그러니 만약 코코에서 장을 본다면 ‘영수증은 됐어요’와 같은 여유는 넣어두길.
참고로, 코코의 후반전은 쇼핑 후에 시작된다.
그 유명한 코코 핫도그와 치킨 베이크 그리고 피자.
특히, 코코 핫도그는 한때, 양파 거지와 최근, 음료수 거지라는 민폐 쇼퍼를 양산하기도 했을 만큼 핫하다. 이들의 존재를 알고 나면, 일부러 이들을 먹으러 코코를 가게 될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김가장의 코코 쇼핑 목록에 코코 핫도그와 치킨 베이크는 기본 옵션이다. 지난달에도 핫도그와 치킨베이크를 먹었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