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주말 루틴 오총사

빨래, 청소, 요리, 식물 물 주기 그리고 설거지

by Rooney Kim

스크린샷 2020-10-05 오전 12.10.54.jpg


그녀가 요통으로 힘들지 않았던 과거에는 가사 분담의 비율이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맞벌이에 아이는 없으니 집안일이 그렇게 많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김가장 네는 의외로 외식이나 배달 주문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직접 해 먹는 편이라 장도 자주 봤고 따라서 설거지가 적은 편은 아니었다.




요일 오전 07시 30분 즈음.

김가장은 눈을 떴다. 굳이 알람을 맞춘 것도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시각에 일어난다. 그녀가 깰세라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온 김가장은 화장실을 다녀온 뒤, 다시 한번 집안의 동태를 살핀다. 고요하다. 동향의 아파트지만 주변 빌딩 때문에 채광이 들어오는 시간이 시간 별로 정해져 있는데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대략 6시 50여분부터 8시가 되기 전까지 햇살이 들어온다. 그다음 채광 시간은 9시에서 10시 30분 사이다.


김가장은 냉장고를 열어 간단하게 때울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아본다. 하지만 아침은 왜인지 귀차니즘이 극에 달해 바로 뜯어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면 손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결국 고개를 돌린다. 오예스나 다이제 초코, 빅파이 등등 이 친구들은 먹기에 간편한 김가장의 최애 간식 중 하나다. 이전 화를 읽었다면 알겠지만, 과자와 곁들일 우유를 꺼내 컵에 따른다. 그리고 곧장 전기 물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잠시, 의자에 앉아 과자를 씹으며 멍하니 생각에 잠긴 김가장. 집안으로 들어온 채광과 맑은 하늘이 잠들어있던 감성의 버튼을 다시 올려놓는다.


'우선 8시 30분쯤에 1차 빨래(색깔 있는 의류)를 먼저 돌리고, 그 사이에 글 하나를 완성 한 뒤에, 빨래가 다 되면, 기존 마른 옷들을 걷고, 빨래를 널고, 2차 빨래를 돌리고, 나오면서 식물 친구들을 화장실로 데려가서 물을 먹이고, 환풍구를 틀어 건조시켜주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다른 글을 쓰면 되겠군'


김가장에 식탁에 앉아 안방을 잠시 들여다본다. 그녀도 컨디션이 좋은 날엔 9시~10시쯤에 기상하지만, 요통이 심한 날엔 피로도 겹쳐 11시 혹은 오후 1시에 나올 때도 있다. 물론, 김가장도 그녀의 컨디션이 항상 좋길 바란다. 그래서 예전처럼 집안 일도 좀 더 나누고 덕분에 시간을 더 벌 수 있고 뭐 그런 일상적인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는 현실을 제법 빨리 잘 받아들이는 편이라 이런 생활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김가장은 두번째로 돌린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 보통 새로운 글쓰기에 매진한다. 그는 약 5개월이 넘게 연재한 '분재 사장과 너무 유명한 친구들' 시리즈는 잠시 연재를 중단하고, 다른 것들을 시도하려 한다. 독자들이 어떤 콘텐츠를 좋아할지 몰라 다작을 할 수밖에 없다.


'부스럭'

'엇..'


갑자기 안방에서 그녀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지금 시각이 10시가 조금 안 되었으니 제법 일찍 신호가 왔다.


"자기야~" (김가장네는 원래 자기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서로 간의 특별 호칭이 있지만 여기서 쓰긴 민망하니 편의상 자기라고 한다)


김가장은 쓰던 글을 멈추고 안방을 살짝 들여다봤다. 그녀의 다리가 아직 이불속에 있는 걸로 보아, 80%의 확률로 좀 더 잘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응~ 더 자~ 나 집안일하고 이떠~"


김가장은 최대치의 다정함을 끌어낸 목소리로 그녀에게 조금의 휴식을 더 주기로 마음먹었다. 웬일인지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미동 없이 다시 조용해졌다.


‘ㅇㅋ. 1차 방어 완료..’


AI스피커에서는 감미로운 뉴에이지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고, 아침 햇살이 앞 빌딩에 가리면서 약간 어두운, 마치 새벽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채광이 주방에 은은하게 퍼질 때쯤, 식탁에 있는 스탠드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다.


"헤이 클로바, 식탁 불 켜줘”

‘탁’


아, 이 시원하고 아늑한 분위기. 실로, 가장 완벽한 글쓰기 환경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1차 방어 이후 평화의 시간은 30분을 채 넘기기 힘들다. 이유인즉, 그녀의 일요일 알람이 '방구석 1열'의 본방이 시작되는 10:30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녀의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그녀는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아침도 먹고 같이 집안일을 한다. 이런 날은 단순 루틴인 청소, 빨래, 설거지, 식물 물 주기 외에도 베갯잇 및 이불 교체, 안 쓰는 이불 압축팩에 정리, 분갈이 등 비정기적인 큰 일도 함께하는 등 남편과 아내가 서로 정겹게 돕고 케어하는 너무너무 행복하고 바람직한 한 가정의 모습이지만, 정작, 그런 날엔 그녀가 낮잠을 자러들어가는 시간 외엔 글을 쓸 시간은 아예 없다. 물론, 그녀에게 따로 요청을 해서 밤늦게 자신만의 글쓰기 시간을 가질 순 있지만, 따로 서재나 책상이 없는 김가장에게 식탁에서의 창작활동은 수많은 유혹 및 방해 요소로부터의 견딤과 집중을 뜻 했고, 이는 실로 쉬운 일은 아니다. 글을 쓰다가도 TV의 BTS를 봐달라는 랜덤 한 그녀의 요청에 감히 정면으로 반박할 순 없기에.


김가장이 먹던 레몬의 씨앗을 여러 개 발아시켜 화분에 심었는데 그중 하나가 엄청 자라 꽃을 피웠다. 너무 감격한 김가장은 그만.. 자세한 얘기는 다음 에피로 만나요.

곧, 세탁기가 2차 빨래가 완성되었음을 명랑한 알람으로 김가장의 주의를 끌었다.

'5분 뒤에 가서 널어야지’

하지만 곧 그녀의 알람도 같이 울린다. 안방은 갑작스레 부스럭거리는 소리로 요란해지고, '나 이제 곧 일어나니 TV 켜고 '방구석 1열'을 같이 시청할 준비를 하라'는 그녀의 웅얼거림이 새벽의 햇살 같던 채광으로 가득한 거실의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이건 진짜다. 곧 기상하겠어!'


곧 그녀가 침대에서 나와 거실로 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자긔야아- 벌써 일어났어? 그거(방구석 1열) 볼 거야?"
"응, 같이 보자. 뭐 먹을 거 있어? 일찍 일어났네? 나 안 깨우고 뭐했어?"
"아니.. 뭐 집안일하고.. 글.. 과자? 과자 먹을까?"
“ㅇㅋ"


그렇게 그녀는 과자를 들고 소파로 직행했고, 김가장은 호다닥 베란다로 달려가 빨래를 널고는 소파로 복귀했다. 더운 날에 빨래를 빨리 빨래통에서 빼내 널지않으면 단번에 옷에서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방구석 1열은 굉장히 유익하고 재밌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김가장도 좋아한다. 김가장이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 그리고 유튜브가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한 지금에도 TV를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첫째, 자신이 고민하지 않고 주어지는 것 중에서 골라 볼 수 있다. TV에 길들여지는 것 같은 고민을 뒤로하고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둘째, 가장 절제되고 정제된 프로그램이 여전히 가장 많다. 검열이랄수도 있지만, 그것도 고민을 덜어준다.
셋째, 유튜브는 곁가지가 너무 많고 넷플릭스는 아직 신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몇 프로그램들은 김가장 감성을 자극하고 영감을 주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 그와 그녀가 TV를 애청하는 이유다.


그렇게 '방구석 1열'이 끝났다. 여전히 허기진 둘은 콩국수나 비빔면을 해먹을 때도 있고, 찌개류나 만둣국을 끓여먹기도 하며, 귀찮을 때는 라면에 야채를 좀 넣어서 먹기도 한다. 그렇게 주말의 아점이 지나간다.


"다 먹었다-"


배를 채운 둘은 식곤증 인양 피로감을 느꼈다. 그녀는 연신 하품을 하며 다시 침실로 갈 기미를 보였고, 김가장 역시 졸음을 느꼈지만 그 와중에, 또다시 새로운 시그널을 읽었다.


'2차 글쓰기 시간?'


낮잠은 같이 자야 한다며 그녀가 칭얼거렸지만, 김가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겐 낮잠보단 글 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좀 더 자요- 난 청소도 해야 하고 또..'

'그 담엔?'

'아니 뭐 글도 좀 쓰고. 빨래도 널고, 청소기도 돌리고 또-’


김가장은 무선 청소기를 빼들고 안방부터 슥슥- 밀어대며 청소를 시작했다. 김가장은 방을 빠져나가며 (둘의 불문율대로) 문을 조금만 열어두고는 옷방, 부엌, 거실 등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김가장의 청소는 의외로 단순하다. 매주 물티슈 청소포로 바닥을 청소하진 않는다. 보통, L사에서 나온 무선 진공청소기로 온 바닥을 밀고 다닌다. 침대 아래와 소파 아래의 먼지도 모두 빨아들인다. 그럼 청소 끝. 매주 물청소를 안 한다고 그를 나무랄 순 없다. 왜냐하면 매주 그가 선택하는 청소 방법과 범위는 그 날의 컨디션에 달려있기에. (물청소까지 매번하기엔 일이 너무 많잖아)


어느새 김가장은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매주하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끝이 없지만, 혹시 집안일, 이거 나의 에너지 원천이 아닐까’


무언가 루틴이 되면 이는 꼭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김가장. 어쩌면 그는 집안일을 하는 동안, 중간중간, 그리고 마침내 집안일을 다 끝낸 뒤에 쓰는 글의 상쾌함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금요일 저녁만 되면, 주말에 할 집안일 배분을 머릿속에 그리며 잠자리에 드는 그이기에.


그렇게 곧, 김가장의 일요일 2차 글쓰기 시간이 시작되었다. 은은한 채광과 조명, 평화로운 뉴에이지 피아노 소리 그리고 공간 구석구석을 메우는 타이핑 소리가 김가장의 일요일 오후를 장식하고 있다.


김가장은 지금 햄볶하다.




[이미지 출처]

김가장 제작 및 직찍

keyword
이전 03화#2 탄산수, 우유 그리고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