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탄산수, 우유 그리고 커피

그의 기호식품은 조금 다르다

by Rooney Kim


김가장은 불현듯 여러 모임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던 때를 떠올렸다. 여기저기 같이 놀자고 불러주던,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았던 20대 시절의 친구들.


지금은 김가장 주변에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급격히 감소해 몇 안되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을, 제법 다양한 모임에서 만나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군대에서 알게 된 고참, 동기들과도 모임이 생겨 제대 후 만나기도 했고, 20대 때 오래도록 아르바이트했던 패밀리 레스토랑의 모임이라던가 혹은 몇 번의 이직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형성된 '퇴사자 모임' 같은 것들 말이다. 그중 한 퇴사자 모임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모임을 하다 보면 꼭 술자리가 생기게 마련이고 개중에는 술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마, 니는 진짜 말술 같이 생겨가지고 왜 술을 못 마시노?”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늘어. 처음엔 원래 다 그런 거야. 노오력이 부족한 거 아냐?”

“머리 아픈 거? 토하는 거? 나도 원래 그랬담마. 근데 지금은 5병도 마신다. 니가 안 마신 거지.”


김가장은 대학생이 되었던 00년도 이후 ‘그가 술을 못 마시는 것에 대해’ 참, 다양한 의견을,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하나같이 ‘자신의 경험에 편향된 지극히 개인적인 고집’ 일뿐, 그 어떤 말도 김가장의 상황을 100% 이해하지 못했다.


- 제대 후 만난 군대 선임: 진짜, 넌 술만 잘 마셨었어도 나랑 완전 절친되는 건데 너무 아쉽다.

- 김가장: 우리 아직도 절친 아니었냐?


“난 술 안 마셔도 술 마신 사람들이랑 잘 놀아” 그럼 보통 친구들은 ‘에이~ 뭐라카노’ 하고 말지만, 노래방에서 뛰고 솟고 같이 까불고 논 뒤엔 생각이 좀 달라진듯하다. “맞네.”



김가장과 술의 첫 만남은 이랬다.

김가장은 마산의 한 성당의 학생회장 시절, 고3 형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100일 주 파티 (그땐 그런 풍습이 있었는데 대신 사죄드립니다)를 진행하며, 학생들끼리 부어라, 마셔라 하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맥주와 소주를 맛봤다. 술이 약한 게 집안 내력이다 보니, 명절날 친척들이 모여도, 큰아버지와 삼촌께서 서너 잔을 마시고, 아빠도 한두 잔 정도만 마실 뿐, 우리 집안에는 술 마시는 문화가 없을 정도로 술 권하지 않는 집안이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김가장이 그의 가문에서 술을 제일 못 마신다는 걸 몰랐다.


그 날, 김가장은 거의 소주 1병과 맥주 1병을 마셨다. 취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세상이 빙글 뱅글 도는 느낌으로 길을 걸어가 한 성당 친구의 집에서 잔 기억은 지금까지 또렷하다고 하니 믿어주자. 그날 밤, 김가장은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밤새 엄청난 두통에 시달렸으며, 호흡곤란과 비슷한 고통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김가장은 ‘다시는, 평생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대학생이 된 이후 어쩔 수 없이 ‘이 반복된 고통’을 몇 번은 더 치를 수밖에 없었다.


“김ㅇㅇ, 닌 술도 안 마셔, 담배도 안 펴, 무슨 재미로 사노?”

“어후, 내한테 술은 고통이다. 마, 주지 마라. 담배? 입에도 안 댔다.”


하지만 이런 그도 직장생활, 특히, 해외영업 업무를 하던 시절엔 ‘술을 좀 잘 마셨으면’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고 한다. 과거, 말레이시아 출장에서 한상(해외 한인 사업가)들과의 술자리에서 당시, 함께 출장 간 부장이 ‘이 자리에서는 꼭 마셔야 한다’ 고해서 소주를 마셨는데, 소주를 마시는 족족 몰래 화장실로 달려가서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억지로 게워내는 것을 반복하며 그 자리를 무마(?)했지만, 호텔로 돌아와 밤새 두통에 시달린 후, 김가장은 확실히 결심했다.


‘이젠 술을 못하는 게 아니라, 절대 한 잔도 마시면 '안 되는' 컨셉으로 밀고 나가자'


잘 알겠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되고도 강산이 거의 두 번이나 변했는데 술도 담배도 하지않는 그는 도대체 뭘 즐기며 사는걸까?


대부분의 성인은 자기 취향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성인의 취향이라고 하면 보통 ‘기호 식품’을 떠올린다. 가장 대중적인 기호식품은 담배 그리고 주류는 소주 그리고 맥주 그다음이 와인 혹은 위스키로 넘어가는데 김가장에겐 '성인' 기호식품에 대한 취향이 없다. 대신, 김가장은 다른 걸 즐긴다. 조금 더 저렴하고, 구하기 쉬우며, 비교적 건전한 것들 말이다.


탄산수, 우유 그리고 커피


그는 하루에 거의 한 번은 탄산수를 마신다.

신혼초에는 탄산수를 만들어내는 정수기를 사서 쓰기도 했고, 지금은 장 볼 때 꼭 탄산수를 사거나 배송해서 마신다. 탄산수도 국가별, 브랜드별로 탄산의 세기와 향이 모두 다르다. 수원지가 다르면 물맛이 다르듯이 탄산수도 그렇다. 특히, 그가 선호하는 탄산수는 탄산의 강도가 센 즉, 청량감이 넘치는 것인데,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한때 노브랜드의 캔 탄산수가 그랬다. 이후 트레비 등 대중적인 브랜드를 마시다, 최근에는 탄산 강도와 병당 용량이 높은 어느 브랜드를 주문해서 마신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그의 변을 들어보자.


"이건 마치,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과 같아요. 10여 년 전인가? 술도 못 마시는 제가 스트레스도 받고 너무 더운 나머지 시원한 맥주캔을 벌컥벌컥 마셔 본 적이 있거든요. 대체 제가 왜 그랬을까요.. 아시는 분? 암튼, 근데 맥주가 너무 시원하고 상쾌한 거예요. 맥주에도 탄산이 있으니까요. ‘키야, 이 맛에 술 마시는구나. 이제 나도 술 좀 마셔볼까? 껄껄’ 이랬는데, 와.. 그날 밤새도록 두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억지로 전부 토해내고 겨우 잠들었잖아요.”


그런데 탄산수는 청량함에 대한 갈증은 풀어주고 알코올도 당분도 없으니 과연, 김가장이 아낄만하다.


우유.

김가장은 우유도 좋아한다. 특히, 다이제, 오예스, 빅파이와 같은 과자 또는 매머드, 소보로 같은 빵을 먹을 때면 거의 99%의 확률로 우유를 곁들인다. 우유도 브랜드별로 맛, 향, 밀도가 모두 달랐는데 과거, 그가 선호하던 브랜드는 덴마크 우유였지만, 지금은 2팩에 3,000 원하는 PB상품으로만 거의 구입한다고 한다. 그의 장보기 리스트에는 우유가 빠지지 않는다.


“그거 아세요? 우유는 섭씨 2도씨 이하에서만 보관하면 유통기한이 40일까지 지나도 먹을 수 있대요. 물론, 입을 대고 마신 우유팩이라면 상할 수 있죠. 그런데 전 컵에 따라 마시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유통기한이 한 달 정도 지난 것도 마신 적이 있는데, 괜찮았어요. 배탈도 안 났고. 강추합니다.”



마지막으로 커피.


김가장의 주말 아침 일과가 커피를 내려마시는 것일 정도로 김가장에게 커피는 일상의 메이트다. 매일 출근해서 하루 2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물론, 그의 집에는 드립 커피, 캡슐 커피,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있는 (지금은 인테리어 소품이 된) 모카포트 그리고 베트남 커피를 내려먹는 컵처럼 생긴 드립기구가 있다. 원두도 많은데, 과테말라에서 주재원으로 있었던 처형네 덕분에 많이 얻었다. 그리고 또 많이 샀다. 그런데 이 중 가장 간편하게 자주 즐기는 건 과립 형태로 된 커피다. 소위 믹스 커피에 들어있는 인스턴트커피 알갱이만 모아 파는 병에든 커피 말이다.


여기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있지만, 그는 ‘다x도프’를 선호한다. 다x도프 시리즈 중 '에스프레소'는 그 향과 진함이 진짜 에스프레소와 거의 같다고 하니 혹시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서 드셔 보시길.


“여기 술 마신 뒤 숙취가 없는 자가 있다면 김가장에게 돌을 던지라.”


술, 담배, 성인의 기호식품. 이는 김가장에겐 그저 필요 불충분 조건 일 뿐.

그의 삶은 그것들이 아니라도 이미 청소, 빨래, 식물 관리, 글쓰기, 설거지 등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로 넘쳐난다. 오죽하면 집안일 때문에 주말 약속도 없는 그 아닌가.


응? 이건 말하지 말라고? 이미 썼는데? 응? 왜 그랬냐고? 이미 발행했는데?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beer

김가장 직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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