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문제는 탁수와 덕빈 부부와 윤대감이 죽은 후부터였답니다. 이후, 윤대감의 마을과 그 부부가 살던 마을에는 한 밤중에 소작농 부부가 논과 밭에서 일하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이 돌기도 하고 윤대감이 대궐 안방이나 곳간 등 여기저기에서 보였다는 등 귀신 소동이 끊이지 않았다지요. 게다가 헛것을 봤다는 목격담이 들고나면 꼭 그 고을의 한 사람이 사고로 죽거나 병이 나는 등 이상 현상이 일어났고, 특히, 백중 이후 상강(첫서리가 내리는 시기. 입동 전) 전 그런 일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해당 지역에서는 ‘눈꽃이 필 즈음에는 밤 외출을 삼가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백중 이후 이승에 남아있는 귀신들이 더 날뛰는 것도 한몫했겠지요. 더 문제는 그때부터였어요. 윤대감의 악귀는 점점 인근의 지박령과 다른 악귀를 흡수하며 커져갔어요. 작은 마을 사람들 전체를 홀려 미치게 만들어 서로 죽이거나, 흉년이 들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마음을 품게 이끌어, 이웃마을을 공격하고 살육하여 식량과 아녀자를 빼앗는 등 지역의 큰 문제를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이에, 윤대감의 후손들과 관아에서는 팔도의 유명한 무당을 불러 굿도 하고 살풀이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답니다. 어떤 무당은 작두 위에서 꼬꾸라져 죽을뻔했다지요. 이때 법력이 높았던 여러 스님들이 찾아왔지만 두드리지도 않은 목탁이 터져버리고, 부적이 저절로 불타오르는 등 구병 시식은커녕 목탁 한 번 두드리지도 못하고 쫓겨나기 일쑤였답니다. 그렇게 강산이 네댓 번도 넘게 바뀌는 시간이 흘렀지요.”
“반면, 탁수와 덕빈 부부의 원혼은 수십 년째 백중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며, 죽어서도 윤대감을 저지하며 이들에 대적했지만, 너무 커진 윤대감의 세력에 죽어서도 원수를 갚지 못하는 신세가 될 지경이 되었답니다. 좋은 혼령은 이미 백중 전에 저승으로 가거나, 대부분 백중에 이승의 모든 한과 미련을 풀고 떠나기에 탁수와 덕빈 부부를 도울 혼령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들의 한은 결국 소천 스님께 당도했습니다.”
"윤대감의 악령이 이끄는 악귀 무리는 곧 지리산을 넘어 전라도의 한 작은 산골 마을을 덮쳤답니다. 집 없는 떠돌이와 배고픈 산적 몇몇을 홀린 이들은 평화로운 산골 마을로 쳐들어가 성인 남성들을 무차별로 죽였고, 또 마을 사람 몇몇을 홀려 서로 죽여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사건은 삽시간 벌어졌지요.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윤대감의 혼령은 악의 화신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사이좋던 작은 산골 마을은 순식간에 살육을 벌이는 피바다가 되었고, 모두가 미쳐 날뛰며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던 때, 귀신의 꾐에 넘어가지 않은 유일한 한 가족이 있었지요. 마을에서 주막을 하던 이들은 깊은 밤에 마을이 소란스럽자 불을 끄고 조심스레 동태를 살폈다지요. 별채에 외지객도 하나 머물고 있던 터라 더욱 신중했습니다. 그때 동네 주민 하나가 밖에서 부부를 불렀지요. 큰일이 났으니 빨리 나오라며 말이죠. 이에 놀라 밖으로 나간 부부는 그 주민의 낯빛과 눈빛이 평소와는 완전히 달라져있는 모습에 수상한 낌새를 느꼈습니다. 동네 주민은 동공이 풀린 눈으로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고 했지요. 아이의 기운이 보통이 아니니 얼른 데려가서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섬뜩한고 요상한 얘기를 하면서 말입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을 느낀 부부는 긴장하기 시작했고, 그 주민이 낫을 꺼내들자마자. 남편은 그 주민의 목덜미를 잡아 번쩍 들어서는 대문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 사이 아내는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와 위협하기 시작했지요. 아마도 별채에 있던 외지객은 이때부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횃불을 든 마을 주민들이 달려와 이를 뒤에서 목격하고는 큰 소리로 외쳤답니다.”
“여기, 행장이네도 미쳤다. 역병이다! 모조리 죽여라!”
“영문을 모르고 있던 주막 부부는 혼신을 다해 초가집의 입구를 막았습니다. 누가 귀신에 씌고 누가 제정신인지 모르는 마을 주민들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서로 모조리 죽이고 있었죠. 공포가 마을 사람들을 장악한 것입니다. 입구에서 낫과 식칼로 몸싸움을 벌이던 이들을 뒤로하고 곧 누군가가 지붕에 불을 붙였고 이때 놀란 부부가 안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구하러 몸을 돌린 사이에 미쳐버린 마을 주민들의 창과 낫에 찔려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상황이 심각해졌음을 인지한 별채의 손님은 곧바로 별채에서 튀어나와 발광하는 검으로 귀신에 씐 주민들을 하나하나 처치해나갔습니다. 검술의 솜씨는 매우 놀라웠다고 전해졌지요. 하지만 귀신 씐 주민들은 하나둘씩 계속해서 주막으로 달려왔고 곧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 손님은 아주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고 합니다. 지금 이 난리통은 분명 악령이 행하는 것이 맞지만 저 중 몇몇은 공포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것이고, 몇몇은 진즉에 귀신에 씌었기에, 이 어두운 밤에 저들을 다 처치한다면 억울하게 죽는 이들도 있을 것 또한 명백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차라리 아이를 빨리 구해 그 자리를 떠야겠다고 마음먹고 돌아서는 순간, 안방에서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왔고 그 손님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쓰러지며 의식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윽고, 그 손님은 정신을 차렸고 주민들이 모두 쓰러진 틈을 타 아이를 구해 마을을 빠져나왔다죠. 그리고 그 후, 반년이 지난 무렵, 소천 스님의 타계 소식을 전해 듣게 되고, 충청도의 어느 깊은 산속 절에 악령들이 소천 스님의 유골과 유물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 들었답니다.”
“여보시오.. 지금 이 얘기는..”
“네, 그쪽이시지요. 그리고 살아남은 아이가 바로 저 방에 있는 아이구요.”
선준은 너무나도 놀라 당황한 기색을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어인 영문인지는 몰라도 구미호 여인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준은 삽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썼다.
“아니, 그럼 야밤에 우리가 여기를 지나 신귀사로 갈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오?.. 당최, 부인의 정체는 무엇이오..”
하지만 여인은 얼굴에 옅은 미소만 띤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선준은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것 마냥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자신과 소천 스님의 일대기를 훤히 내다보기라도 한 듯한 그녀의 이야기에 조금 오싹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악의나 살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침, 밥이 다 되었네요. 뜸만 조금만 들이면 될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곧 밥상을 내오겠습니다.”
여인은 아무런 대답도 않은 채 곧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선준이 여전히 멍하니 방 앞에 서 있었다.
'부스럭'
일각이 조금 지났을 무렵 행장이가 잠에서 깨어나려는 듯 몸을 뒤척였다. 선준은 행장이의 기척을 듣고는 안도하는 마음이 들어 후다닥 행장이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행장이의 혈색이 돌아와 낯빛이 발그스름하게 건강한 분홍빛을 띄었다.
"자야, 정신을 차리거라. 몸은 괜찮은 거냐?"
"흐아아아암. 아재, 여기가 어딘교? 우리 절에서 잔 거 아닌교?"
행장이는 마치 아까 있었던 일을 완전히 기억하지는 못하는 듯이 말했다.
"아까 자다가 깬 건 기억이 나는데, 큰 절에서 다시 잠이 든 뒤로는 기억이 없는디.."
"괜찮다. 별 일 없었으니. 네가 건강해져서 다행이구나."
"지가 아팠는교? 어라리, 그러고 보니 이 옷은 내 옷이 아닌디??"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바깥에서 밥상을 차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여인은 아침 참을 먹으라며 둘을 불렀다.
"아재, 우리가 우짜다가 다시 여기로 왔는교? 구미호 아지매 집 아인교?”
행장이는 호기심과 긴장감이 어린 눈으로 선준에게 물었다.
"쉿, 자야. 새벽에 절에서 네가 정신을 잃어서 내가 여기로 데려왔단다. 지금은 괜찮고 저 여인네도 나쁜 구미호는 아닌 듯하니 일단 나가서 밥을 먹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하자꾸나."
"오매, 밥도 주시는교? 아지매 겁내 착하시구마요이."
때는 가을이 깊어가는 절기로 사랑채를 나선 둘은 몸에 한기가 들 정도로 이른 아침의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밥은 안채로 보이는 부엌과 붙은 방에 차려져 있었다. 선준은 방으로 들어가기 전 헛기침을 해 여인에게 자신들이 들어갈 것을 알렸다.
"워매, 아재 이게 다 뭐잉교. 닭백숙에 돼지고기에, 이거 잔칫상 아잉교? 우와."
안채에 들어선 행장이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진 아침상을 보고는 기분이 몹시 좋아져서는 들떴다. 선준은 구미호임을 숨기고 자신들에게 이렇게까지 과하게 친절을 베푸는 여인에게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까 해준 이야기가 아직도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소천 스님의 유골과 유물 행방에 대해서도 저 여인이 다 알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앙."
"잠깐."
선준은 혹시나 누가 들을세라 매우 낮은 목소리로 행장이를 멈췄다.
"와그라는교?"
"기다려봐."
선준은 숟가락을 들어 백숙의 국물을 떠서는 먼저 삼켜보았다. 혹시라도 음식에 문제가 있거나 독이라도 있는 게 느껴지면 바로 뱉을 심산이었다. 그러자 곧이어 부엌에서 여인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비님, 걱정 말고 드십시오. 하오나 급히 드셔야 할 것입니다. 진시를 넘기기 전에 곧 그들이 여길 찾아낼지도 모르옵니다. 그리고.. 소천 대사님의 유골은 신귀사에 없습니다.."
선준은 며칠은 굶은 것처럼 아침상을 와구와구 퍼먹는 행장이를 뒤로하고 부엌으로 통하는 쪽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
하지만 부엌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준은 여인이 진시 안으로 산속 깊은 굴이나 땅 속의 어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구미호였기에 마지막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 것이라 생각했다. 선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에게는 아버지와 다름없는 소천 스님의 유골함은 신귀사에 있다고 전해졌고 소천 스님을 타계에 이르게 한 악귀 또한 신귀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온 것인데 소천 스님의 유골함도 악귀도 여기에 없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야 복수를 하며, 이 한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도대체 소천 스님의 유골함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복수를 할 악귀는 어디에 있다는 것이냐..’
선준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새벽에 마주한 잡귀들과 십 척 요괴는 그가 찾던 악귀가 아니었고 왕도깨비는 더더욱 아니었다. 제 아무리 지랄 맞은 장난을 치는 도깨비라도 승려를 죽이는 법은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도깨비들은 승려들을 도와 악령을 처치 하는데 일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 선준은 서간처럼 보이는 것이 밥솥 옆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선준은 곧장 서간을 펼쳐 보았다. 이윽고, 선준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한 식경 동안 미동도 없이 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재, 아재요. 밥 식는디 안 자시요? 그라고 우리 밥먹고 이제 어디로 간다요?”
“동쪽, 자야. 동쪽으로 가자. 서두르자꾸나.”
“아재는 밥은 안 드시는교?”
“괜찮다. 시간이 없구나.”
여인은 집 뒤편의 대숲 중턱쯤 바위틈에 앉아 선준과 행장이가 고개를 넘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부랴부랴 달려가는 것을 보니 자신이 남긴 글을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둘의 모습이 울창한 숲에 가려 사라진 뒤에도 한참 동안 서서 둘이 남긴 잔상을 곱씹어보다 이윽고, 해가 완연히 떠오르자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선준과 행장이는 동이 터 오는 동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