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할.. 아직 소천 스님의 복수도 못했는데 이런 잡 요괴에게 잡힌 데다 이젠 왕도깨비까지. 이대로..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선준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대로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십 척 요괴에 붙들리고 왕도깨비까지 나타난 마당에 당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슈와아아악'
찰나라고 할 만큼 짧은 순간이었다. 십 척 요괴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왕도깨비는 갑자기 거대한 오른쪽 주먹을 날려 십 척 요괴의 명치를 정통으로 후려갈기는 게 아닌가.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십 척 요괴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함과 동시에 극심한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대웅전 뒤편으로 넘어졌다. 덕분에 요괴는 손에 쥐고 있던 선준을 놓쳤고, 선준은 이 틈을 타 요괴에게서 벗어나며 일령을 챙겨 얼른 불상이 있던 제단 뒤편으로 숨어 들어갔다. 일령은 끼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선준의 손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왕도깨비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십 척 요괴에게 다가갔다. 십 척 요괴는 마치 거미처럼 기다란 팔을 돈벌레마냥 수십 개를 만들어내더니 왕도깨비의 팔, 어깨, 머리, 다리 등을 감쌌다. 얼핏 보기엔 왕도깨비가 십 척 요괴에게 꼼짝없이 제압당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왕도깨비가 한차례 몸을 비틀며 흔들자 십 척 요괴의 손과 팔들은 아무런 힘도 없이 뚝뚝 끊어지며 마치 먼지처럼 사라졌다. 이에 몹시 당황한 기색을 한 십 척 요괴가 벌떡 일어나 달아나려 하자 왕도깨비는 산만한 덩치와는 다르게 쏜쌀같이 달려가더니 녀석의 어깨를 잡고는 가볍게 들어 올렸다가 산속으로 휙 하고 던져버리는 게 아닌가. 아무런 저항도 못한 십 척 요괴가 떨어진 자리에는 강한 바람이라도 불듯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렸다.
선준은 이 싸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십 척 요괴는 물론이고 왕도깨비까지 나타난 마당에 끼어들어 싸우기는커녕 까딱하단 뼈도 못 추릴 판이었다. 게다가 어디서, 어떻게, 왜 나타났는지 도통 알 길이 없는 왕도깨비가 지금 십 척 요괴를 공격하고 있다고 해서 같은 편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도깨비는 보통 익살스럽고 해학적이지만, 좋은 도깨비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도깨비들은 동네를 망하게 하고 지박령들까지 잡아들여 먹어치우기도 한다는 소문도 횡행했다. 그런데 왕도깨비라니. 말로만 듣던 왕도깨비를 만난 선준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두려움이 들만도 했다.
'쿵. 쿵.'
왕도깨비는 자신이 집어던진 십 척 요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순간, 숲 속에서 까맣고 긴 팔 두 개가 쑤욱하고 튀어나왔다. 그러자 왕도깨비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두 팔을 잡고는 입을 솥뚜껑보다도 더 크게 벌려 으적으적 씹어삽키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으으으아아아아ㅏ아아아아'
숲 속에선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비명소리가 들렸고 팔을 씹던 왕도깨비는 십 척 요괴를 끝장 내러 숲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이후 신귀사는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저 멀리 산 중턱의 숲 속에서는 이따금씩 귀를 찢을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강한 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리며 내는 쏴- 하는 잎사귀들의 소리가 비명소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자야, 자야. 정신 차려보거라. 자야!"
선준은 여전히 대웅전 구석에 쓰러져있던 행장이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의식은 있었지만 행장이의 몸은 식은땀으로 축축했고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행장이의 눈은 기운이 빠져 사경을 헤매는 듯 초점이 없었다.
'오한이야. 이런 얼른 몸을 데워야 해.'
하지만 신귀사엔 화톳불도 없고 땔감을 구해오기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소천 스님의 복수보다 얼른 행장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선준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행장 이를 감싼 뒤 둘러업고 새벽에 왔던 길을 돌아 날듯이 뛰어갔다.
"헉.. 헉.. 계시오. 지금 아이의 목숨이 위중해 송구함을 무릅쓰고 다시 왔소."
시끄러운 소리에 부엌에 있던 여인이 나왔다. 여인은 한 잠도 자지 않고 여전히 지아비를 기다리는 듯 말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침, 사랑방에 불을 때 두었으니 어서 아이를 뉘시지요."
"가, 감사하오."
선준은 가장 따뜻한 아랫목에 행장 이를 눕혔다. 행장에는 더 이상 땀을 흘리지 않았지만 몸은 여전히 몹시 차가웠다.
'마른 옷이 필요하겠어. 이 집에 아이 옷이 있을까'
'덜컥'
선준은 여인이 가져온 것을 보고는 놀라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행장이나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아이 옷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굉장히 오래 보관하기라도 한 듯 좀 낡아 보였지만 깨끗했다. 집을 둘러보면 아이가 있을 법한 곳은 아닌데 어떻게 이걸 가져왔는지 마치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니 선준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고맙소. 내 이 은혜는 꼭 갚으리다."
"그저 고뿔이 온 것이니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네?"
선준은 마치 모든 것을 내다보고 읽고 있는 듯한 여인의 한 마디에 놀라 되물었다. 본디, 구미호인 것을 숨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터라 내색은 안 했지만 혹여, 자신과 행장 이를 홀려 간이라도 빼먹을 작정은 아닌지 덜컥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선준은 웬만한 귀신이나 요괴는 수도 없이 접해본 터다. 게다가 이 여인은 간밤에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나. 선준이 딱히 이 여인을 의심하지 않은 건, 선준 스스로도 악의가 느끼지 지도 않았거니와 악귀에 대해 매우 민감한 일령도 경계를 풀었는지 더 이상 울지 않고 보따리 안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아이 옷을 갈아입히세요. 지금 몸이 차가운 건 너무 많은 식은땀 때문에 옷이 젖어서 그런 것이옵니다. 제가 슬쩍 보기에는 별로 큰 일은 아닌 듯 하니 아이 옷을 갈아입히고 나면 선비님도 아랫목에서 편히 쉬십시오. 아침 상은 반 시진 안으로 준비해서 내어오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두 번이나 신세를 졌는데요. 감사합니다. 제가 어린아이들의 몸상태는 잘 몰라서 아주 큰 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행장이가 깨어나면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여인은 슬며시 미소를 띠고는 사랑채를 나갔다. 선준은 얼른 행장이의 옷을 갈아입히고는 한시름을 놓았다. 이윽고, 신귀사가 떠올라 문을 열서 살짝 밖을 내다보았다. 혹시나 왕도깨비나 십 척 요괴가 따라붙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다가 여인네가 있는 부엌과 주변도 살폈다. 제아무리 친절해도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구미호에게서 분명 악의는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어지간한 인간보다 심성이 좋아 보일 정도야. 하지만 귀신이나 요괴를 완전히 신뢰할 순 없으니..'
“혹여 소천 스님을 찾으시나요?”
부엌쪽을 바라보며 여인네의 동태를 살피던 선준은 마치 자신을 보고있는 것처럼 부엌쪽에서 들려온 여인의 갑작스런 질문에 깜짝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애써 태연한 척하며 응답했다.
“아니, 소천 스님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어찌 아십니까?”
“제가 직접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공덕이 높아 일대에 소문이 자자했답니다. 축사도 많이 하시지 않았습니까. 뵌 적은 없으나 힘없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갖은 애를 쓰신 걸로 알고 있지요. ”
선준은 여인이 그냥 지나가는 말로 소천 스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아닌 걸로 보였다. 필시, 무슨 사연이 있거나 적어도 소천 스님을 해한 악귀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 부엌에서 나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소천 스님이 입적하신 것은 알고 계시겠고.. 혹시, 그 악귀에 대해 아는 것이 있소?”
선준은 한치의 거리낌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반응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꺼낼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행장이가 정신을 차리는대로 밥을 먹고 다시 얼른 떠나야 했다. 여인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뭇대는 눈빛과 살짝 떨리는 입을 보니 무언가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만약, 아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알려주시오. 소천 스님은 거대한 악귀 무리에 대항해 축귀하던 중에 돌아가셨소. 그분은.. 그분은 제게 아버지 같은 분이오. 어미와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세상을 떠돌던 저를 거둬들이시어 먹여주고 재워주셨으며 글도 알려주셨소. 소인이 잠시 절을 떠난 틈에 그 사단이 벌어진 게지요.. 혹시..”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곧 입을 열었다.
“밥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제가 아는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때는 묘시의 중턱이라 여전히 산중은 어두웠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녘이라 어둠의 짙음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전라도 쪽으로 내리 뻗은 지리산 자락 아래에 여러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다양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큰 고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십 수년도 더 전에 윤대감이라는 대지주가 그 고을에 살고 있었지요. 논 만 마지기와 밭 오천 마지기를 가진 지역의 대지주였던 그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자신의 대에 더 불려 인근 고을은 물론 다른 지방 유지들의 모든 재산을 합한 것보다 더 큰 부자였지요. 그리고 어마어마한 재산으로 인한 권력 덕분에 그 고을의 사또는 물론 이웃 고을의 사또들까지 그에게 인사를 하러 올 정도 였답니다. 하지만 막대한 재산에 비해 그의 인품은 가혹하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다지요.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대신해주는 소작 농가들을 노예 부리듯 부리는 것은 예사요. 소작농의 부인들을 여럿 취하고 추행하는 것이 소 일거리였을 정도였답니다.”
“아니, 그런 자가 세상에 존재한단 말이오? 천하의 나쁜 사람이구려. 경을 쳐서 죽여도 시원치 않을 인간이로군요.”
“물론이지요. 더 들어 보시지요.”
선준은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여인으로부터 그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 날, 이웃마을의 한 부부가 다음 년의 논농사 때 논 몇 마지기를 빌려 농사를 할 수 있도록 부탁하러 윤대감을 찾아왔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탁수요, 부인의 이름은 덕빈이었다고 합니다. 윤대감의 땅이 워낙 크고 소작농 인원만 해도 삼백여 명이 넘는 터라 윤대감이 직접 소작농인들을 관리하지 않는데, 소작 농부가 그들의 부인을 데리고 오기라도 하면 꼭 한 번은 독대를 하게 했답니다. 아무래도 여인이 궁금했던 거 겠지요. 윤대감은 그들과 만나자마자 탁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탁수의 아내인 덕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더랍니다. 가령 이런 것이었지요. ‘아이는 있는지, 지금 회임 중인지, 그리고 회임이 가능한지’, 그런 것 말입니다. 이에 몹시 불쾌한 탁수가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자. 윤대감이 이렇게 한마디를 했다지요. ‘일거리를 얻기 싫으냐? 그렇다면 썩 꺼지거라.’ 덕빈은 탁수를 말렸고 결국, 윤대감은 논 열 마지기를 내어 주며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내일 떠나라며 방 한 칸도 비워 줬답니다. 이에, 마음이 누그러진 부부는 윤대감이 소문만큼 심성이 아주 몹쓸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답니다. 게다가 막걸리도 몇 병이나 줬는지 평소에는 술이 없어 못 마시던 탁수가 이미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버렸지요.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남편을 바로 눕히고 상을 치운 뒤 덕빈도 곧 자리에 누웠는데, 호롱불을 끄자마자 별안간 사내들이 들어와 덕빈을 보쌈으로 납치하여 윤대감의 별채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덕빈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와중에도 윤대감을 밀쳐내며 강하게 거부했지만 결국 겁탈을 당하고 말았지요. 탁수가 깨기 전에 다시 돌아온 덕빈은 넋이 나간채로 방구석에 앉아 벌벌 떨며 밤을 지새우고 말았답니다. 이윽고 날이 밝아오고 탁수가 잠에서 깨며 정신을 차립니다. 그리고 방구석에 고개를 떨구고 울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게 되죠. 곧 모든 정황을 파악한 탁수는 치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방을 튀어나가 어디서 짱돌을 하나 구해 윤대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윤대감은 보이지 않았고 격분한 탁수는 안채를 향해 짱돌을 집어던지고 낫을 구해와 행패를 부리며 윤대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더 어이없게도 어느 종놈 하나가 탁수의 보따리를 가져와서는 탁수에게 거짓 누명을 씌웠답니다. 탁수의 보따리는 탁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쌀로 가득 차 있었지요. 그가 잠들고 덕빈이 끌려간 사이에 하인들이 모두 만들어놓은 거짓 증거들이었답니다. 탁수는 관아로 끌려가 볼기짝을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내년부터 일하기로 했던 논도 다시 빼앗기고 말았죠. 무엇보다도 겁탈당한 아내를 보고 있자니 분노가 끓여 당장이라도 달려가 윤대감의 목을 따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오히려 아내가 만류했어요. 자기들은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부부는 분노를 삭이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보름이 지났을 때쯤, 상강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탁수는 야밤에 몰래 윤대감의 집으로 넘어 들어가 곳간에 불을 질렀어요. 곧 하인들이 잠에서 깨고 윤대감의 대궐은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건장한 하인들은 모두 곳간으로 모여 불을 끄느라 정신없었고 그 사이,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대감의 안방으로 몰래 들어간 탁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윤대감의 복부를 칼로 찔렀답니다. 하지만, 이를 본 마님의 비명소리를 들은 하인들이 탁수를 끌고 나갔고 결국, 탁수는 실컷 두들겨 맞고 옥살이를 합니다. 뒤늦게 이를 안 덕빈은 이웃 마을의 포도청으로 가 남편을 만나려 했지만 그 청 마저 거절당했고 얼마 안 가 기가 막힌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탁수가 화병으로 옥에서 죽어버렸다는 것이었죠. 실상은, 볼기짝을 100대도 넘게 맞아 태형으로 죽은 것인데 말입니다. 이를 알게 된 덕빈은 결국 분노가 두려움을 넘어서며 윤대감을 다시 찾아갑니다. 윤대감은 복부에 칼을 맞았지만 용케 살아났지요. 덕빈은 윤대감에게 지아비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척하며 윤대감에게 접근했답니다. 윤대감은 용서를 비는 덕빈에게 자신의 첩이 되면 용서를 하겠다며 그녀를 종용했습니다. 덕빈은 이에 응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또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덕빈의 미모에 빠진 윤대감은 한치의 거리낌도 없이 덕빈을 취하려 했지만, 아뿔싸, 순식간에 커다란 대못이 자신의 목을 관통했고 윤대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음에 이릅니다. 그리고 덕빈은 준비한 비소(사약)를 마시고 지아비를 따라갑니다. 이 시기가 겨울이 시작되는 첫서리가 내리기 전인 상강쯤이었답니다. 눈꽃이 필 무렵이었죠. 그래서 그 이후로 윤대감의 집안에는 첫서리 전에는 중요한 일은 다 제쳐두고 몸가짐을 조심히 하며 억울하게 죽은 넋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고 하지요. 액땜을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윤대감과는 달리 그 후손들은 인성이 올바라 도덕적으로 문제 되는 일은 없었고 자기 가문의 죄에 대해 사함을 받고자 이웃 주민은 물론, 주변 마을까지 땅과 쌀과 비단 등을 나눠주며 전재산의 일 할에 달하는 재산을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죗값을 치르긴 했군요. 여전히 윤대감 때문에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아픔은 가시지 않았겠지만요.”
선준은 어느새 분노와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얼굴로 여인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동이 트려면 아직 일 식경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