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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Feb 06. 2021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래도 사랑을 잊지 마

상실은 또 다른 얻음의 전초기지니까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스포를 담고 있지만 글을 읽고 영상을 시청해도 무방합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유일한 것이지만, 부모에게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부모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아이가 있기에 새로운 책임과 목표가 생긴다. 삶의 모든 기준이 아이에게 맞춰지고 아이가 잘 클 수 있도록 부모는 각자의 자리에서 더욱 힘을 낸다.


아이의 웃음 한 번에 부모의 가슴은 더욱 굳건해지고, 아이의 칭얼거림 한 번에 가장의 인내는 더욱 견고해진다. 아이 때문에 책임이 늘어난 것 같지만, 사실, 아이 덕분에 삶은 더 풍요로워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수 십 년은 더 잘 살아야 하는 너무나도 명확한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세상의 파괴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부모의 삶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부모는 다시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갈 곳을 잃은 부부에게 남은 건 고통스러운 시간과 풀 곳 없는 원망뿐이다.


아이를 상실한 직후, 부부에게 너무나 행복했던 아이와의 추억은 도리어, 피가 철철 나는 상실의 생채기에 매질이라도 하듯 부모를 더욱 숨 막히게 옥죄고 괴롭힌다. 차라리, 즐거웠던 지난 시간을 떠올릴 수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교내 총기 사고로 갑작스럽게 부모 곁을 떠났지만, 달려가 멱살을 쥐고 흔들며 고함치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고, 다시 살려내라고 목놓아 울며 따질 상대는 없다.


엄마의, 아빠의 잘못도 아니지만 부부는 서로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고,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잃어버린 아픔을 씻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안 곳곳은 여전히 생생하고 따뜻한 아이의 조각으로 가득 차 있다. 아이는 어쩌면 방 안에서 그저 늦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와 자기 방으로 뛰어올라간 뒤 늘 듣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늘어지게 늦잠 자며 게으름을 부릴지도 모른다. 부모는 그저 아이가 잠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따 장 보러 갈 때 같이 가거나, 저녁 먹으러 내려오라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뛰어내려올 것만 같다.


하지만,
아이가 입던 옷은 주인을 잃었고,
아이가 자던 침대는 서늘하게 식었으며,
아이가 놀던 마당에는 무의미한 모래 바람만 스쳐갈 뿐이다.


아이가 사라지고 부모의 삶 또한 상실됐다. 그들의 따뜻한 현재가 무너졌고, 희망찼던 미래가 파괴되었다. 그리고 부부는 멀어져 간다.


극적인 극복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


아이의 죽음은 아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기도 하다. 부모는 항상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무슨 일’은 아이의 일인 동시에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아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사랑을 전달했다. 아이의 상실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겪은 엄마, 아빠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고 이겨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달했다.



부모는 아이를 떠나보낸 고통과 상처로 망각했던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부모는 부모 이전에 부부였다. 아이의 상실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지만, 우주보다 더 큰 아픔도 함께 극복해야 하는 것이 부부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은 것이다.


상실의 회복  



회복은 ‘이전과 동일한 상태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회복은 언제나 성장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육체적 아픔이든, 정신적 아픔이든 이는 적어도 후에, 그 정도의 고통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다시 겪어도 정말 아프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힘 말이다.


회복은 또, 일상으로의 복귀는 물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함을 뜻한다. 과거의 추억은, 여전히 눈물짓는 쓰라림이겠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현실은 변했지만, 변한 현실 때문에 또 다른 중요한 것들을 잃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게 만든다.


그리고 회복은 나의 아픔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아픔까지 인지하고 품어주게 한다. 나 혼자 아팠더라도 사실, 나와 함께하는 가족들도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고, 함께 고통받았다면, 자신의 충격만큼 함께 있는 가족의 충격도 클 것이니 얼른 보듬어주고 함께 극복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살아가는 동안 나의 세계는 수 십 차례 변한다. 그리고 대개, 변화는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결국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고, 생이 끝나는 날까지 무수한 변화와 함께 살아간다. 따라서, 제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모든 것은 회복될 테니, '사랑'을 잊지 말자.


가족의 사랑을 잊지 말고, 부부의 사랑을 잃지 말며, 자신에 대한 사랑을 망각하지 말자. 그렇다면 그 어떤 고통 앞에서도 상대방 탓만 하고, 관계를 저버리거나, 자신의 삶을 끝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혹시 네게 ‘무슨 일’이 생겨도 ‘사랑’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이미지 출처]

콘텐츠 이미지용으로 넷플릭스 영상 직접 촬영

https://www.netflix.com/search?q=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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