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물건에 대한 설렘과 흥미는 1주일을 넘기기 힘들고 애지중지하며 아끼던 것들도 언젠가는 헤져버린다. 좋아하는 음식도 두 번, 세 번 연달아 먹기 힘든 법이고, 아끼던 장난감도 어느 날은 도통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좋아하는 음악은 너무 많이 듣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반짝이는 기분,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형용하기 힘든 공감과 동질감이 가져다주는 안도와 평안,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솟구치는 기쁨의 에너지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 하물며,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도 시간이 흘러 떠날 때는 홀로 떠나지 않던가. 모든 생물과 미생물은 각기 다른 생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어떤 에너지도 영원한 것은 없다. 제아무리 매력적인 것도 에너지는 유한하다.
나의 첫 차, 엑돌이
2015년 초, 아버지로부터 십여 년을 타시던 검은색 그렌저 XG를 물려받았다. 새 차도 아니었고 그 흔한 블루투스 기능 조차 없던 오래된 차였지만 나는 나의 첫차가 생긴다는 설렘과 기쁨으로 한껏 벅차올랐었다. 아버지께서 워낙 관리를 잘 하시기도 했지만, 엑돌이(XG)는 이후 6년 간 단 한 번의 고장과 큰 사고 없이 나와 가족들을 무사히 지켜주었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애정과 정성을 쏟으면 나를 따르고 나의 편이 되어주듯이 물건과 기계에도 애정을 주면 뭐라 설명하기 힘든 유대감이 생긴다. 사실, 이런 유대감은 사람들의 착각이거나 우연의 일치 혹은 편향적인 정보 수집에 따른 결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대감은 곧 애착이 되고 이윽고 ‘나의 가족’과 같은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 시간이 흐르면 낡고, 에너지가 빠지고 기운이 쇠하는 것을 피할 순 없다.
2~3년 전부터 엑돌이의 부품들이 노후화되기 시작했다. 매 6개월마다 사전 점검을 받다보니 오래된 부품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유지비가 많이 들기 시작했고 이는 집안 어른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과 우려로 이어지게 되었다. 요즘엔 16년 된 차를 타는 사람들도 많이 없거니와 너희들은 젊은 부부인데 이제 이참에 너희 나이대에 맞는 차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보라는 것이었다.
정비소에서는 관리가 워낙 잘 되어있어서 엔진도 좋고 전체적인 운행에는 무리가 없다고 했지만 수개월에 한 번씩 고가의 부품을 교체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그렇게 안전과 유지비에 대한 이유로 6년을 함께한 엑돌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전국을 누비며 함께한 시간들이 천천히 마음속에 떠올랐다. 천문대에서 차박을 하며 별과 달을 함께 보던 시간, 강릉과 속초의 바닷가 백사장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해, 부산 태종대를 찾아가며 꼬부랑 언덕길을 헤매던 기억, 매년 명절마다 천 km를 달리며 차가운 새벽 공기를 함께 가르고 교통 체증을 피해 국도길을 달리며 노을에 비친 황금 들판을 보던 시간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더 타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이제 주변에서도 걱정을 하시니 내 마음만 고집할 순 없었다. 그리고 원체 차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때문에 새로운 차에 대한 아주 손톱만 한 기대감도 없지 않아 작용했다. 그렇게 엑돌이를 그만 놓아주고 새 차 같은 중고차를 사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중고차 매도 시세를 알아보니 제일 좋은 가격이 50만 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주변에서 폐차를 하면 돈을 준다는 얘기를 듣고 폐차 가격을 알아봤더니 오히려 폐차를 하면 80만 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순정 배기관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엑돌이의 배기관은 순정 그대로였기에 80만 원에 결국 폐차를 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3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경제적인 조건도 있었지만, 16년간 아버지와 내가 애지중지 아끼고 고치고 청소하면서 탄 차를 어떤 알 수 없는 사람이 가져가서 청소도, 관리도 제대로 안 하고 험하게 타거나, 사고라도 나면 그걸 알리 없는 나지만, 괜히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 곳이 찜찜하고 안 좋았던 것도 한몫 했다.
그렇게 엑돌이와의 마지막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엑돌이의 자동차 정기 점검의 마감 기한 역시 다가오는 중이었다. 정기점검의 마감은 1월까지였고, 그 사이 새 차를 사서 폐차를 할 시간은 충분했다. 상식적으로라면 이제 폐차할 차이고 지금 당장 운행에도 문제가 없으니 점검 비용도 아낄 겸 정기 점검을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은 이미 엑돌이를 위해 마지막 정기점검을 하고 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완전히 굳어 있었다. 10년과 6년간 아버지와 나, 와이프 그리고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우리의 발이 되어준 아이를 그저 폐차를 할 것이라는 핑계로 홀대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현실 속에서는 미물이고 기계일 뿐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 우리에게는 추억과 고마움이 가득한 소중한 차였다. 그리고 나의 이런 마음에 와이프도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엑돌이 생의 마지막 정기점검은 합격이었다. 아직 몇 년도 더 거뜬히 운행할 수 있단다. 이미 폐차를 결정한 뒤였지만 여전히 든든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엑돌이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스팀 수제 내외부 세차도 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수제 세차를 안 한지 반년이나 지나있었다. 그래서 엑돌이를 폐차하기 1~2주 전, 처가댁에 간 김에 엑돌이를 위한 마지막 수제 스팀 내외부 세차를 해줬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비록, 내가 폐차를 결정했지만, 떠나보내는 나의 소중한 것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주고 안전하게 지켜주고 묵묵히 제 일을 해준 나의 큰 애장품인 엑돌이에게 이 정도의 마지막 선물은 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마지막 예의
얼마 안 가 엑돌이는 폐차장 직원의 손에 전달되어 우리를 떠나갔다. 6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엑돌이를 타고 가는 것을 보는 것도 어색했지만, 여전히 경쾌하게 부웅하고 떠나가는 뒷모습이 애잔하고 슬펐다. 유대감, 전우애.. 뭐랄까 딱히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폐차 비용이 들어왔다. 그 돈은 20만원을 더 보태 백만원을 채워서 아버지께 드렸다.
나의 이러한 행동과 감정에 이해를 못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애정을 주고 아끼기로 마음먹은 사람, 물건에 대해서는 항상 마지막 작별까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좀 오버스럽겠지만 오래되어 구멍이 난 양말을 버릴 때도 마음속으로 ‘수고했다’고 전한다. 하하하.
나는 이 모든 사소한 감사와 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은행에 저축된다고 믿는다. 그건 마치 나의 선행이 타인의 선행으로 이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아낌과 보살핌이 축적되어 좀 덜 고장 나고 우리를 좀 더 안전하게 지켜주지 않을까 하는 미신적인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결국, 내 만족, 내 기쁨이겠지만,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예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감사함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