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복
“경진아, 너네는 그래도 서울에 아파트도 있고, 너 제부랑 이혼할 때 제부가 재산 다 포기하고 나간 거잖아. 그럼 그거 다 네 건데 뭘 더 바래. 나는 지금 집도 아직 전세고.. 우리 애들, 수민이는 이제 대학 4학년이고 희수는 얘, 내년에 결혼할지도 몰라. 그럼 뭐 혼수라도 제대로 해줘야 하잖아. 언니 형편을 봐서, 응? 그냥 엄마, 아빠 재산 분할은 그렇게 넘어가자.”
“아, 언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 집은 우리가 과감하게 은행 융자 내서 산거고 그리고 이거 말고 나도 뭐가 더 있다고. 아니, 이거랑 부모님 재산 분할이랑 무슨 상관이냐구. 정말 가족 끼리 왜 이래 섭섭하게.”
“너 그거 제부가 투자해서 사기 맞은 1억. 그거 우리 곗돈이잖아.”
“언니!”
정민이 엄마는 참다못해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빽하고 지르고 말었어. 꿈에서 형을 만나 위로받고 코인 얘기까지 들은 정환이 들뜬 마음에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가던 중 엄마의 심각한 통화 내용을 듣고는 다시 거실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지.
“언니.. 그래서 그 돈은 우리가 재산 분할에서 뺐잖아. 그럼 얼마야 19억이 남지? 그럼 언니, 오빠, 나 이렇게 삼등분을 해야 하는 게 판례인데, 언니가 엄마, 아빠를 끝까지 모셨으니 난 언니가 10억 정도는 가져가도 된다고 생각해. 오빠야 해외에 워낙 오래 있었고 본인도 재산 분할하고 남는 걸 달라고 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지만 난 남은 9억은 오빠랑 반반 나눌 의향이 있단 말이야. 아니 오빠한테 5억 주려고 했어. 근데..”
“경진아. 너무 욕심부리지 마. 요즘 서울 집값이 얼마인데.. 우리 집도 그렇지만 희수가 혼수만 오천 만원은 들 거고, 걔들 서울에서 집 산다고 하면 5억은 해줘야 융자받고 해서 8억짜리 한 동 짜리 아파트라도 들어가 살지. 난 우리 얘들이 나처럼 고생하는 거 싫다.. 응? 조카들 봐서라도..”
“그래서 그럼 우리는 하나도 안 주겠다는 거야? 내가 엄마, 아빠 생전에 가전, 가구 전부 바꿔드리고 요양원 가셨을 때도 3년 치 비용 다 내고 매주 찾아가고 그런 거 몰라? 그리고..”
“경진아, 어차피 20억 이거 상속세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어. 암튼, 형부 집에 왔다. 다시 얘기 해. 끊어.”
집 안은 다시 적막에 싸였어. 정환이는 지금이 정민이 형 얘기를 할 좋은 타이밍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다시 방으로 돌아들어갈 참이었어. 그때 엄마가 거실로 나왔지
“어머, 정환아. 어쩐 일로 나왔어? 배고파? 밥 차려줄까?”
정환이는 방금 전까지 이모와 다투고 격앙되어 잔뜩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거실로 나오자마자 자신을 보고는 다시 상냥하게 대해주는 엄마를 보며 새삼 너무 죄송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어.. 응, 네 밥 주세요.”
정환이가 어렵게 한 마디를 꺼내자. 엄마는 두 눈이 똥그래져서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갔어. 언뜻 본 엄마의 모습에 활기가 가득했지. 그도 그럴만한 게 정환이가 엄마에게 대답을 한 것도 수년 만이지만 밥을 달라고 말을 한건 그날 그 사건 이후 거의 처음이었거든.
“엄마.. 그런데 이모랑 왜 그래? 재산.. 때문이야?”
“어.. 아니야. 신경 안 써도 돼. 어른들이 좀 그럴 때가 있어.. 고기 더 줄까? 밥은?”
엄마는 자신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그저 정환이가 자기 앞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듯이 연신 정환이를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어.
“괜찮아.. 아 그리고..”
“응. 왜 그래? 뭐 필요해?”
엄마는 정환이가 계속해서 말을 하자 마치 아기가 옹알이를 하며 입을 열 때 부모님들이 신기해하듯 정환이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
“아니. 꿈에.. 정민이 형.. 형이 나왔어.”
정민이의 이름을 들은 엄마는 다시 조금 슬픈 얼굴이 되었어. 하지만, 정민이에 대한 슬픔 때문에 겨우 입을 다시 열기 시작한 정환이의 변화가 묻히길 바라지 않는 얼굴이었지. 마치 쏟아질 뻔한 눈물을 겨우겨우 삼키는 것 같았어.
“어.. 정민이가.. 그래, 정민이가 우리 정환이 보고 싶어서 보고 갔구나..”
“응. 그런데..”
“그래 정민이가 꿈에서 뭐라고 했어? 인사하고 간 거야?”
순간, 정환이는 형의 500억 재산에 대해서 말을 할지 말에 대해 고민이 되기 시작했어. 사실, 그건 꿈이었고, 다행히 꿈에서 알려준 아이디와 비번은 꿈에서 깨자마자 적어뒀지만 아직 로그인은커녕 형의 휴대폰을 켜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지. 적어도 정말 그만큼의 재산이 있는 건지, 그게 사실인지 확인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응. 형이 엄마한테 안부 전해 달래. 자기는 잘 있다고..”
그러자 엄마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어. 차마 정환이 앞에서 더 울 수 없었는지. 다시 방으로 가셔서 한 동안 나오지 않으셨지. 정환이는 괜한 얘기를 꺼낸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
“엄마.. 미안해. 내가 괜히..”
엄마는 얼마 안 가 다시 방에서 나왔어.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지만 그대로 정환이를 꼬옥 안아주었지.
“정환아. 엄마는 정민이가 그렇게 가서 너무 슬프지만, 네가 이렇게 엄마랑 대화도 하고 밥도 달라고 해서 오늘 너무 기뻐.”
“… 미…ㅇ”
“응?”
정환이가 입을 열자 엄마는 또다시 귀를 기울였어. 몇 년 만에 듣는 막내의 목소리를 하나도 놓칠 수 없었던 거지.
“미.. 미안했어. 엄마..”
엄마는 정환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어.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그렁그렁 댔지. 먼저 떠나보낸 정민이가 너무 그리웠지만, 정민이가 정환이 꿈에 나타난 덕분인지 지금 엄마 앞에서 입을 열고 거기에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는 정환이를 보는 게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뭐가 미안하니.. 엄마가 널 더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에 많이 혼냈잖아. 나중에 들었어.. 엄마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민이에게 들었어.. 그래서 더 모른 척한 거야. 정환아. 그거 정말 네 잘못 아니야. 엄마였어도.. 엄마였어도 정환이처럼 했을 거야. 음주 운전으로 과속한 그놈 잘못이지. 그래.. 은정이도 참 불쌍하지. 그래서 엄마는 아직도 너랑 은정이를 위해서 기도해.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말을 해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정환이는 누나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기 전까지 두 시간도 넘게 얘기를 나눴어. 그날 그 사건부터 죄책감으로 힘들었던 순간들 그리고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친구는 있는지 등등 정말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어.
“정환아 누나 전화 왔다. 내일이 주말이라 오늘 아마 집에 올 거야. 우리 내일은 다 같이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할까?”
엄마의 표정은 근 몇 년 만에 처음 보는 환한 얼굴이었어. 어린 시절 가족끼리 외식할 때, 주말에 산책을 나갈 때, 여름에 캠핑을 갈 때 봤던, 정환이의 어린 시절 기억에 각인된 ‘행복’이라는 글자로 엄마를 생각할 때 단번에 떠오르는 얼굴이었지.
그리고 정민이가 방 한쪽 귀퉁이에 서서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있었어. 이모와 다투는 엄마의 모습도, 꿈에서 자길 만나 반가운 마음에 엄마에게 말하러 달려 나온 정환이도,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고 펑펑 울며 관계가 회복되어가는 엄마와 정환이의 오랜 대화도 모두 보았지.
‘아.. 씨.. 죽어도 슬픈 감정이 들잖아. 산거나 똑같네.. 암튼.. 정환아 잘했다. 자식, 그래도 말 안 하는 동안 마음은 많이 컸네. 다행이다.’
누나와 통화하는 엄마를 두고 정환이는 방으로 돌아와 정민이의 휴대폰을 켰어. 오래된 케이스가 왠지 더 짠하게 느껴졌지. 그리고 꿈에서 형이 말한 거래소들에 하나씩 로그인을 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정민이가 뒤에서 또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지. 혹시나 정환이가 로그인을 하지 못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말이야.
‘있.. 있어. 정말이었어. 형 말이 정말..이었어..!’
정민이가 거래 중이던 다섯 거래소 중 하나인 고비트에 로그인한 뒤 거래소 지갑을 열어본 정환이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어.
‘헉.. 뭐.. 뭐야.. 150억이잖아..!? 형이 거래소당 100억이라고 했는데..’
정민이가 죽은 후 자신도 여기저기 꿈을 쫓아다니느라 신경을 못쓰는 2~3주 사이에 비트코인과 주요 코인들의 가격이 오르며 재산이 불었던 거야.